실언·지원금·공정 논란…‘지뢰’ 밟는 사람들 [신율의 정치 읽기]
‘1인당 25만원 지급’ 공약도 역풍 우려 커져
총선 야당 우세해 보여도 위험 요소 관리 변수
예측 가능한 출렁임의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실언(失言)이다.
정치판에서 실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총선의 특이한 점은 여론 분위기상 우위를 점한 더불어민주당 대표 입에서 실언이 드물지 않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3월 21일 전북 군산 유세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광주에서 온 사람들 잘 들어. 너희 옛날에 대검으로, M-16으로 총 쏘고 죽이는 거 봤지. 너 몽둥이로 뒤통수 때려 대가리 깨진 거 봤지. 조심해, 농담이야. 농담이야”라고 말하고, “여러분 이게 농담입니까. 생선회칼로 기자 허벅지를 찔러대는 것이 농담입니까. 겁박한 것 아닙니까”라고 외치며 현 정권을 비판했다. 이 발언은 곧바로 5·18 광주민주항쟁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로 5·18 당시 신군부의 시민 학살을 묘사했다. 황 전 수석 발언을 비판하기 위한 비유였다고 하더라도, 그 표현과 태도가 참담하다”며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표는 당분간 강경한 목소리를 계속 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판세에서 불리하지 않은 정당 구성원이 실언할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유리한 선거 지형을 유지하기 위해 실언이 나오지 않도록 ‘관리’함과 동시에 지지층의 외연 확장을 위해 지나친 강성 발언은 삼가는 것이 선거 전략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다르다. 민주당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을 떠올리면 난감함이 사라진다. 조국혁신당은 호남에서도 약진하고 있는데, 단순한 ‘약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3월 22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3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4.3%,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나타난 광주·전라 지역의 비례정당 지지율은 조국혁신당이 32%, 더불어민주연합은 35%였다. 이는 민주당을 당황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호남은 민주당에 단순한 지역 기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정통성’을 제공해주는 지역이다. 호남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이 조국혁신당과 비슷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민주당의 정통성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더구나 조국 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잠재적 대권 경쟁자라고 할 때, 이재명 대표는 더더욱 조국혁신당에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선명성의 강조를 선택한 것 같다. 조국혁신당과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는 의미다. 선명성을 강조하다 보니 발언 강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고, 강성 발언을 쏟아내다 보면 실언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실언의 반복이나 지나친 선명성 강조는 중도층을 멀어지게 만든다.
실언은 아니지만 민주당에 대한 중도층 지지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요소가 등장했다. 바로 1인당 25만원 지급에 관한 문제다.
3월 24일 이재명 대표는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한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차상위 등 취약계층의 경우 1인당 10만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원금 지급에 필요한 재원 규모에 대해선 “13조원”이라며 “윤석열 정권이 그동안 퍼준 부자 감세와 민생 없는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기만적 선심 공약 이행에 드는 900조~1000조원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 손톱 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중도층이 이런 공약에 대해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 심화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계속 고물가를 공격하고 있는데, 만일 이 대표 공약처럼 돈을 풀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면 그때는 물가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주요한 공격 소재를, 스스로 더욱 악화시키는 모양새다.
2020년 6월 8일 리얼미터가 YTN ‘더뉴스’의 의뢰로 기본소득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2020년 6월 5일 하루 동안 18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를 보면,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48.6%,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세금이 늘어 반대한다’는 응답이 42.8%로 집계됐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8.6%였다. 즉, 기본소득 실시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다는 것인데, 이런 국민을 대상으로 또다시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주장하면 역풍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공감’ 측면에서 보면, 역풍이 아니라 순풍이 불 수도 있다. 현금 지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만큼 서민 생활고에 공감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해당 공약을 이해하면, 이는 여론 호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판을 흔들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공정’ 문제다.
결국 귀국하기는 했지만, 국민들이 이종섭 주호주 대사에 분노했던 이유는 해당 사안이 ‘공정’과 관련 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사 대상에 취해진 출국 금지를 해제해줬다는 사실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국민 대다수는 생각한 셈이다. 해당 사안이 보여준 것은, 우리 국민은 아직도 ‘공정’ 관련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에서, 조국혁신당의 20대 지지율이 2%에 불과하다는 점도, ‘공정’에 관한 문제에 대한 여론의 민감성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도 이런 ‘공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대장동 재판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는 “현실적으로 이번 총선(4월 10일)까지는 (출석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재명 대표 측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 역시 ‘공정’에 대한 문제다. 개인적 일정 때문이든 정치적 일정 때문이든, 일반 시민은 재판부가 출석하라고 하면 출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월 26일 열린 재판에 이 대표가 출석한 것이다. 만일 앞으로 또다시 불출석 문제가 불거진다면, 그때는 ‘불공정’ 문제가 더욱 거세질 수 있을 테다.
선거일은 다가오는데, 선거판은 안갯속이다. 현재 시점에서는 야당이 우세한 것 같지만, 앞서 언급한 위험 요소를 민주당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판세는 한순간 뒤집어질 수도 있다. 도처에 깔린 지뢰를 터트리지 않는 쪽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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