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 뚫고 돌아온 화웨이…통신·스마트폰·반도체 모두 질주

이희권 2024. 3. 3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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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4’에 마련된 화웨이 부스가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중국의 기술 굴기를 상징하는 기업 화웨이가 미국의 고강도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1년 만에 2배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부진에서 벗어났다. 31일 2023년 화웨이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7042억 위안(약 130조8000억원), 순이익 870억 위안(약 16조16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9.6%, 순이익은 무려 144.5%나 늘어나 대중 제재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화웨이가 2006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성장을 해냈다”고 전했다.

업계는 단순히 매출이 늘어난 것을 넘어 거의 모든 사업영역에서 빠른 발전을 이뤄낸 데 주목했다.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통신 장비와 중국 내수시장에서 애플 아이폰의 빈자리를 차지한 스마트폰, 7㎚(나노미터·10억분의 1m)를 넘어 5㎚ 공정에 도전 중인 칩 설계분야 등이다. 이에 화웨이를 두고 대중(對中)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첨단기술 자립속도를 높인 대표적인 ‘역효과 사례’의 상징이 될 것이란 분석마저 나온다.


美 견제에도 굳건한 통신 장비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과 중국 화웨이가 출시한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 모습이 합성된 가짜 광고.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세계 통신 장비 시장 점유율 31.3%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견제 속에서도 선두 자리를 지켰다. 화웨이 전체 매출의 절반이 통신 장비에서 나온다. 중국 내수시장 외에도 중남미와 아프리카·동남아 시장을 장악했다.

백도어(인증 없이 통신망에 침투할 수 있는 장치) 등 보안 문제가 불거지며 미국과 유럽·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화웨이 퇴출 움직임이 있었지만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품질을 내세워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여전히 상당수 유럽·아시아 통신사들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주요 국가들이 화웨이를 통신망에서 퇴출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정작 지난해 화웨이의 유럽 및 중동·아프리카(EMEA) 지역 매출은 2.6% 줄어드는 데 그쳤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떼어놓고 성능만 살펴봐도 화웨이가 가장 앞서는 게 사실”이라며 “오히려 보안 문제와 제재 이슈가 없었다면 화웨이 점유율이 더 높았을 것”이라 말했다.


스마트폰, 삼성 넘어 애플 정조준


신재민 기자
무엇보다 스마트폰의 성장이 눈부셨다. 지난해 화웨이의 소비자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17.3% 늘며 주요 사업 중 가장 크게 성장했다. 화웨이가 출시한 신형 스마트폰은 중국 소비자들 사이 궈차오(國潮·애국주의 소비) 열풍을 일으키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를 보면 올해 1월 애플 아이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전년(19%)보다 하락한 15.7%를 기록하며 2위에서 4위로 내려앉은 사이 화웨이가 2위(16.5%) 자리를 꿰찼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화웨이의 연간 시장 점유율은 15%를 돌파하며 애플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이 유력하다.

수출 제재로 반도체 등 공급망을 자체 확보한 덕분에 기술 자립과 수익성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습이다. 당초 화웨이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칩인 AP 설계·생산을 해외 기업에 의존했지만, 제재 이후 한동안 스마트폰 판매를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자체 칩 설계에 매달렸다. 지난해 8월 출시된 메이트60 시리즈엔 7㎚ 공정이 적용된 칩을 사용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해는 5㎚ 칩 설계에 도전한다. 글로벌 선두권 기업들은 대부분 주력 AP로 4㎚ 칩을 쓴다.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지난해 4분기 AP 칩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5121% 폭증했다. 같은 기간 삼성의 출하량은 48% 하락했다.


미래 먹거리까지 챙겼다


화웨이는 중국 주요 자동차 기업들과 협력해 스마트커넥티드카(ICV) 등 지능형 자동차 솔루션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제24회 충칭 국제 오토쇼에서 첫 선을 보인 화웨이 솔루션이 적용된 SUV 모델. 배터리 부문에선 글로벌 1위 배터리 기업 CATL이 손을 잡았다. 사진 아웨이타
클라우드 컴퓨팅·지능형 자동차 솔루션 등 미래 먹거리 사업 관련 매출도 크게 늘었다. 대중 제재로 인해 내수시장에서 적수가 사라진 것이 오히려 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화웨이 매출 약 60%는 중국에서 발생했다.

벌어들인 돈은 모두 연구·개발(R&D)에 쏟아붓는다. 화웨이는 지난해 R&D에 역대 최대 수준인 1647억 위안(약 30조6000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회사 연간 매출의 23.4%에 달한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R&D 투자(28조3400억원)를 집행했지만 화웨이를 넘지는 못했다.

화웨이 전체 직원의 50% 이상이 R&D 관련 인력으로 분류된다. 이에 지난해 7년 연속 전 세계 특허출원인 1위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2위는 삼성전자였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결국 언젠가는 국내 기업과 통신 장비·AI·반도체 패권을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도 미래 기술 주도권 싸움에 보다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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