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내일부터 근무 축소…"4월 진료, 9월로" 환자는 한숨
“약을 1년 치 미리 타와야 하나요.”
31일 환자들의 인터넷 카페 등에는 이런 걱정이 담긴 글이 이어졌다. 최근 의료 공백 상황에 이어 전날(30일) 의대 교수들이 진료 축소를 발표한 데 따른 반응이다. 환자 카페나 맘 카페에서는 “몇 개월 기다려 4월에 진료받기로 했는데 9월로 진료가 연기됐다. 위로해달라” “5월 진료 취소 문자를 받았는데 환자만 피해를 보고 있어 너무 화난다” 등의 글이 잇따랐다. 진료를 받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의정 두 고래 싸움에 국민 새우 등만 터진다”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환자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는 건 전국 20개 의대·수련병원 비상대책위원회가 모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이하 의대 교수 비대위)가 30일 “4월 1일부터 24시간 연속으로 근무한 뒤에는 다음 날 주간 근무를 쉰다”는 입장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방재승 비대위원장은 이날 의대 교수 비대위 2차 성명서에서 “비대위 소속 한 대학병원 설문 결과 교수들의 근무시간은 주 60~98시간에 이르렀다. 현 의료사태로 고통을 겪는 국민 불편이 커지게 돼 송구스럽지만, (근무시간 단축은) 환자와 의료진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임을 양해해달라”며 근무 축소 결정 경위를 밝혔다. 의대 교수 비대위에는 서울대·연세대(세브란스)·성균관대(삼성서울)·울산대(서울아산) 등 주요 대형병원이 소속돼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교수 비대위의 결정에 대해 31일 “교수들의 진료 축소 상황에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진료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조규홍 장관은 “의료계에 대화 참여를 제안했음에도 이에 응하지 않아 안타깝다”며 “의료계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당분간 의대 교수 비대위가 내건 ‘24시간 근무 뒤 다음날 주간 오프(휴무)’ 조건에 따라 외래·수술 일정이 조정될 전망이다. 빅5 병원의 한 외과 교수는 “(전공의 부재에 따라) 종일 외래에 이어 야간 당직과 다음 날 수술까지 이어지면 36시간 연속 근무가 빈번했는데, 앞으로는 조절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진료 축소를 진행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교수 비대위는 ▶의대 정원 배정 철회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 언론대응 제외 ▶대화의 장 마련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국 39개 의대가 모인 전국의대 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4월 1일부터 외래 진료를 최소화하겠다”고 예고했다. 전의교협은 3월 25일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시작했다. 충북대병원은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5일부터 금요일 외래 진료를 중단한다고 밝힌 상태다. 전의교협 관계자(의대 교수)는 “업무 과중이 심해지면서 비응급·중증 환자 진료를 줄이고, 응급·중증 환자의 진료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장인 박익성 부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교수들이 근무 시간에 상관없이 환자 발생에 따라 책임졌던 일을 이제는 안 한다는 뜻”이라면서도 “주 90시간 이상 일하고 있지만, 해왔던 대로 응급·중증 뇌혈관 환자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전공의 사태 후) 의료 현장에선 진료 축소가 조금씩 이뤄져 왔다. 응급의학과는 의료 현장을 계속 지키겠지만, 교수 6명이 24시간씩 근무하는 병원이 있을 정도로 다들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함께하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3월 25일 “우리의 목숨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희생되어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해당 단체에는 “신장 요관 제거 수술 무기한 연기 통보” “기스트(GIST) 암 판정받았으나 예약 불가”와 같은 환자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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