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모스크바 테러' 부른 푸틴의 중동 개입…포기 못하는 이유

이현우 2024. 3. 3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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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서방을 배후로 몰고가는 푸틴
400년 이상 지속된 러시아 중동개입
러 중동집착의 원인, '산유국 경제구조'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러시아에서 최근 발생한 모스크바 테러가 전세계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국제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가 자신들이 벌인 테러라고 밝히면서 러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반이슬람 정서가 퍼지고 있는데요.

정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정부에서는 IS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모든 테러의 배후에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있다며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자칫 반이슬람 정서가 러시아 내 2000만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도들의 반발은 물론 푸틴 정권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공들여온 중동정책에 걸림돌이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죠.

19세기 초부터 본격화 된 러시아의 중동개입 정책은 단순한 패권경쟁이 아닌 러시아가 사활을 걸어야하는 국책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그 배후에는 대러제재 속에서도 러시아 경제를 버티게 하는 힘인 '석유'가 도사리고 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이처럼 뗄레야 뗄 수 없게 된 러시아와 중동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모스크바 테러, 우크라·서방이 배후" 몰고가는 푸틴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먼저 뉴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모스크바 테러사건의 조사를 맡은 러시아 조사위원회가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와 연계된 증거가 발견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조사위는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로부터 상당한 금액의 현금과 암호화폐를 지원받았다"고 밝혔죠. 하지만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진 않았습니다.

앞서 푸틴 대통령도 모스크바 테러의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요.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왜 우크라이나로 도피하려고 했는지, 그곳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아야한다"며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 정말 러시아를 공격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많은 의문에 답을 얻어야한다"며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강하게 제기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이 테러의 배후라고까지 주장하면서 미국 정부도 정면 반박하는 성명을 냈는데요.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소통보좌관은 28일 언론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관리들은 우크라이나와 미국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고 하지만 IS가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 공격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정작 테러 직후부터 동영상까지 공개하며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한 IS-K는 러시아 측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요. 실제 IS와 러시아는 조지아, 시리아, 이라크 내전 등 중동 전역에서 충돌하며 상호 악감정이 깊어졌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7세기 초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중동남하정책…400년 넘게 개입
제4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1804~1813) 당시 러시아군의 진군모습을 그린 삽화.

결과적으로 이번 테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러시아의 중동 확장정책에 따른 IS와의 충돌이 불러온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것이죠. 사실 러시아는 19세기 초부터 오늘날 이란인 페르시아를 비롯해 중동 전역의 정치와 내전 등에 깊이 개입했고 소련에 이어 오늘날 현대 러시아도 중동 내전 문제에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러시아가 중동 지역 국가들과 직접 충돌하기 시작한 것은 16~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약 400여년 전부터 중동국가들과 겨뤄온 셈인데요. 오늘날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이란의 전신인 페르시아 제국과 흑해 연안과 조지아 지역 등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분쟁을 벌여왔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와는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전쟁이 이어졌는데요. 제 1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1651년~1653년)부터 2차(1722년~1723년), 3차(1796년), 4차(1804년~1813년), 5차(1826년~1828년)까지 3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전쟁을 지속했습니다. 이들은 상호 싸우고 화해하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도 겨루면서 글자 그대로 '흑해판 삼국지'를 벌였는데요.

19세기까지 주로 영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면서 얼지 않는 부동항을 얻기 위한 남하정책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 러시아는 거의 사활을 걸고 중동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게 됩니다. 바로 러시아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석유 공급을 중동국가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소련 이후 고착화된 '산유국' 경제구조…중동정세가 생명줄
[이미지출처=TASS연합뉴스]

러시아는 사실 구소련 시절부터 완벽한 산유국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러제재 이전에도 석유와 가스산업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출의 50%, 재정의 30% 이상을 지탱하고 있었죠.

1991년 소련 붕괴의 서막도 1985년 국제유가 급락과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을 정도입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1985년 11월부터 1986년 7월까지 8개월간 배럴당 30.73달러에서 11.6달러로 62% 하락했고 이때 소련경제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중동국가들을 움직여 경쟁적인 증산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죠.

현재는 대러제재로 석유와 가스수출 이외에 거의 대부분의 러시아 산업이 멈춰버리면서 석유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사우디나 다른 중동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배럴당 70달러선이 무너지면 재정수지를 맞출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 이렇게 석유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진만큼, 앞으로 러시아의 중동 정책은 더욱 과격화되고 이에 비례해 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들의 러시아 활동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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