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요일日문화] 꽃가루 피해 휴가…숙박비는 기업이 지원
국민 절반 앓는 국민병…경제적 손실까지 일으켜
요즘 봄철 꽃구경하러 일본 여행 계획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준비 없이 가셨다가 좋지 않은 추억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3월과 4월은 꽃가루 알레르기의 계절이기 때문이죠.
벌써 NHK에서는 도쿄를 포함한 관동지방 꽃가루 알레르기 예보를 시작했고요, 이번에도 꽃가루 줄이기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예 꽃가루 날리는 시즌에 꽃가루 없는 지역으로 휴가를 지원하는 회사까지 생겼는데요. 오늘은 일본 국민 절반이 앓고 있다는 꽃가루 알레르기, '화분증(花粉症·카훈쇼)'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NHK는 지난 27일 올해 관동지역 꽃가루 상황을 발표했습니다. 도쿄, 요코하마 등 관동지방은 27일 이후 삼나무와 편백 꽃가루 비산량이 증가하는 날이 많아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일본기상협회는 매년 꽃가루가 얼마나 심하게 날릴지를 예측하는 '꽃가루 비산 예측'을 내놓습니다. 관동지방은 29일 금요일을 제외하고 다음 달 1일 월요일까지 '매우 많다'고 예보됐네요.
특히 일본은 어떤 나무 꽃가루가 날릴지 그 종류도 같이 예보하는데요. 사람에 따라 특히 심한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에 따라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도 조금씩 다른데요. 일단 도쿄의 삼나무 꽃가루는 3월 초부터 하순까지 절정일 것으로 보이고, 그 뒤에는 편백이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절정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꽃가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가 나서서 꽃가루를 줄일 방안을 공표할 정도죠. 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이 봄철 꽃가루로 고통을 받아 카훈쇼를 '국민병'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에 꽃가루로 인한 생산성 저하 등으로 벌어지는 경제손실만 해도 하루 2340억엔(2조856억원)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이렇게 국민 질환이 된 배경에는 일본의 패전 역사가 있습니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 이후 건물을 복구하고, 새로운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건축자재가 필요해 삼나무와 편백을 적극적으로 심게 되는데요. 당시 약 450만㏊에 달하는 삼나무 숲이 조성됐다고 합니다.
문제는 나무가 30~50년은 돼야 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나무들이 성장을 마칠 때쯤 다른 나라의 저렴한 목재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싼 수입 목재를 사면 되니 이미 심은 삼나무는 베어낼 필요가 없고,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꽃가루가 흩날리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꽃가루 알레르기가 급증하기 시작한 1970년은 삼나무가 성장을 끝낸 시기와 맞물립니다.
여하튼 이 꽃가루 때문에 봄철 호캉스나 휴가 홍보가 잇따르는데요. 꽃가루가 상대적으로 날리지 않는 홋카이도 등지에서 '꽃가루를 피하는 호캉스' 등 관광상품을 홍보하고, 꽃가루를 피했다가 오라는 워케이션을 쓰라고 장려하는 회사까지 생겨났죠.
최근 일본의 스타트업 아이작은 매년 2~4월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 '트로피컬 이스케이프'라는 휴가 제도를 도입해 주목받았는데요. 꽃가루 알레르기 시즌은 몸과 마음도 지치고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꽃가루가 없는 곳으로 떠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자는 취지입니다. 직원들이 꽃가루가 없다고 판단한 오키나와 등의 지역에 머물겠다고 선언하면 이 기간 숙박비 등 최대 20만엔(178만원)을 보조하는 것인데요.
실제로 사원들의 평가는 좋다고 합니다. "두통으로 업무 퍼포먼스가 떨어지던 차에 오키나와로 가서 일 처리가 빨라졌다"는 후기부터 "평일에는 집중해서 일하고 휴일에는 꽃가루 없는 곳에서 관광하면서 최고 계약 수 달성을 이뤘다"는 성과까지 나왔죠.
한편 이 꽃가루 알레르기는 기후 위기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꽃눈이 만들어지기 전 해 여름 기상 조건이 꽃가루 양을 결정한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언제 날릴지는 겨울 추위 이후 꽃이 피는 시기가 얼마나 따뜻한지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겨울이 지나고 3월 최고기온이 15~20도 정도 되면 꽃가루 양이 많아진다는 보고도 있다는데요. 점점 지구 온난화로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는 예측보다 빨라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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