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배상 분기점' 시중은행 일제 '자율배상' 결의…전담 조직 신설
외부전문가 참여하는 자율조정협의회·내부 지원조직 가동·신설
하나은행서 첫 자율 배상 사례 나와
금감원, 4월 분조위·판매사 제재 절차 예정
우리은행이 가장 먼저 결정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의 자율배상에 NH농협증권, SC제일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이 잇달아 동참한다. 주요 시중은행이 모두 금융감독원이 앞서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안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이들은 내부에 전담조직과 외부 전문가 조직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자율배상 절차에 돌입할 방침이다. 이미 하나은행에서는 ELS 손실 고객에게 첫 자율 배상을 실시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일 KB국민은행을 마지막으로 우리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신한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홍콩ELS 자율배상을 결정하는 임시 이사회를 마무리하고 배상절차에 들어간다. 우리은행이 지난 22일 자율배상 결의를 위한 첫 이사회를 개최한 이후 일주일 만에 주요 시중은행이 서둘러 임시 이사회를 열고 공식적으로 동참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간 은행권의 관심은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이 어떤 결정을 할지에 집중됐었다. 우리은행은 ELS 판매채널을 선제적으로 제한해 자율배상 부담이 가장 적었던 반면, KB국민은행은 지난해까지도 홍콩ELS 판매를 이어갈 정도로 가장 적극적으로 판매를 해왔던 탓에 배상 부담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홍콩ELS 판매규모는 KB국민은행이 가장 많은 7조8000억원,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이 각각 2조4000억원, 2조2000억원이다. 이어 하나은행은 1조4000억원, SC제일은행은 1조200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우리은행은 가장 적은 400억원 수준이다. 4월 금감원의 분쟁조정위원회 가동과 판매사 제재절차를 코앞에 두고 모든 시중은행은 우리은행과 대동소이한 방향으로 자율배상을 결정했다.
하나은행에서 첫 자율 배상사례가 나온 가운데 각 시중은행은 내부 실무조직과 자문·검토를 담당할 외부전문가 조직을 보완하거나 신설해 배상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29일 오전 1시간이 넘는 임시이사회를 통해 주요 시중은행 중 가장 늦게 금감원의 분쟁조정 기준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KB국민은행은 '자율조정협의회'를 설치해 기존 고객보호 전담부서와 함께 투자자 배상 처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앞서 KB국민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판매 규모가 큰 만큼 200명이 넘는 직원을 투입해 전수조사를 벌여왔다.
신설되는 '자율조정협의회'에는 관련 법령과 소비자보호 분야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외부 전문가 위원들은 투자자별 판매 과정상의 사실관계와 개별 요소를 면밀하게 파악해 배상금액 산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손실이 확정된 사례부터 순차적으로 신속한 배상 절차를 이행하고 투자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신한은행도 30여분 간 이어진 이사회를 통해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키로 하고 투자자들에 대한 자율배상을 결정했다. 신한은행은 소비자보호그룹 내 금융상품지식, 소비자보호 정책 및 법령 등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들이 포함된 '자율조정협의회'를 설치해 배상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이미 지난해 6월부터 홍콩ELS 관련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왔고 이사회를 앞두고 17명의 인원이 최근까지 각종 배상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손실 고객에 대한 배상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검사 지적 사항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기업 시민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은 28일 오후 이사회를 개최하고 자율배상 결정을 했다. 두 은행 모두 외부전문가를 포함하는 자율조정협의회 또는 위원회를 구성해 손실 고객을 대상으로 조정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이들 두 은행은 지난해 8~9월 홍콩ELS TF를 꾸리고 대규모 손실 사태에 대비해왔다.
지난 27일 이사회에서 자율배상을 결정한 하나은행은 소비자보호그룹 내 '홍콩H지수 ELS 자율배상위원회'와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지원팀'을 신설해 손해배상 처리에 나섰다. 자율배상위원회는 외부전문가 3명을 포함해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하나은행은 이사회 결정에 따라 28일 개최된 자율배상위원회에 상정된 개별 자율배상안을 심의ㆍ의결하고, 일부 투자자들과의 합의를 거쳐 배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투자자들과 원만한 소통과 배상을 이뤄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자율배상위원회를 통해 투자자별 개별 요소와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금감원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공정한 배상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가장 먼저 자율배상을 결정한 우리은행은 신탁부를 중심으로 소비자보호와 관련 법령 등을 검토할 2~3명 규모의 조직을 구성해 자율배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의 자율조정 대상 홍콩ELS 금액은 415억원 수준으로 총 배상액은 10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손실이 확정된 투자자를 대상으로 본격 조정 절차에 돌입한다"면서 "투자자와 협의를 마치면 일주일 이내로 배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2021년 1∼7월에 판매된 홍콩ELS 상품을 중심으로 손실·배상 규모를 따져본 결과 은행권의 배상 규모는 적어도 2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은행권의 올해 1∼7월 H지수 ELS 만기 도래 규모가 10조원에 달하고, 확정 손실을 50%로 가정할 경우 평균 40%를 배상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시중은행은 대부분 이 배상 추정액을 올해 1분기 충당부채로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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