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 유전자 뛰어나서 아프리카 정복했다? 천만에"

김창우 2024. 3.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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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2 '총, 균, 쇠'(1997) 제레드 다이아몬드

▶세줄 요약

출간 25주년 기념 뉴에디션

-"역사가 종족마다 다르게 진행된 이유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지, 종족 간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은 신대륙보다 먼저 군사력(총), 전염병(균), 과학기술(쇠)을 갖췄기에 근대 이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는 동서로 뻗은 유라시아 대륙이 식물(밀, 쌀), 동물(대형 가축), 교류라는 측면에서 남북으로 긴 아메리카 대륙보다 유리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핵심 내용

"역사가 종족마다 다르게 진행된 이유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지, 종족 간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서문에 쓴 이 문장이야말로 『총, 균, 쇠』의 알파요 오메가다. 800페이지에 가까운 본문 내용은 이 환경의 차이가 어떻게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지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를 통해 설명할 뿐이다. 구대륙에 속하는 유라시아, 그 가운데서도 유럽은 군사력과 과학기술, 그리고 전염병을 앞세워 아프리카와 신대륙이 원주민을 정복했다. 이같은 총, 균,쇠의 우위를 누리게 된 것은 유럽인이 인종적, 유전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식용 작물, 대형 가축을 찾기 쉬웠던 지리적 특성 덕에 뛰어난 기술과 면역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농업혁명을 불러 온 식량작물부터 보자. 구대륙은 동서로 길고 넓어 식물의 종류가 풍부했고, 밀, 보리, 쌀 같은 식량 작물을 찾기도 쉬웠다. 일단 농업이 시작되면 비슷한 위도에 걸쳐진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좌우로 빠르게 기술이 전파됐다. 농업의 발전은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고, 그만큼 과학과 기술 발달에도 유리하다. 반면 신대륙은 상대적으로 옥수수를 발견한 시기가 늦었고, 그나마도 세로로 긴 지리적 여건 때문에 전파되기 어려웠다. 멕시코에서 발견된 옥수수가 페루까지 전해지려면 적도를 지나 아마존의 대 정글을 건너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도 남북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도로가 없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사진 UCLA

충분한 단백질의 공급원이 되는 대형 가축도 사정이 비슷하다. 유라시아에서는 말, 소, 양, 돼지 등의 가축을 키워 농업에 활용하고, 이동수단으로 썼으며 고기와 알, 젖은 단백질 보충에 필수적이었다.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이 없었다. 아메리카에서는 1만2000년 전의 소빙하기에 소와 말의 조상이 전멸하는 바람에 잉카 문명에서 길들인 라마를 제외하고는 대형 가축을 찾기 어려웠다. 가축은 문명 발달에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다. 바퀴와 결합해 물동량을 늘리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가축은 전염병과도 연관이 깊다. 농업 발달로 늘어난 인구가 좁은 마을에 모여 살며 가축과도 빈번하게 접촉하다보니 세균도 종간 장벽을 넘나들며 진화했다. 탄저병이나 페스트처럼 일부 세균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쪽으로 진화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불러왔지만, 그만큼 면역도 가지게 됐다. 이런 과정을 겪지 못한 신대륙에 천연두 등의 세균을 가진 구대륙의 인간이 도착하면서 재앙이 벌어졌다. 15세기 스페인의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점령한 이후 신대륙 원주민의 절반에서 최대 90%가 구대륙에서 건너온 세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월한 농업 생산량을 바탕으로 무기, 항해술, 철기, 그리고 면역력까지 갖춘 구대륙 인류는 빠르게 아프리카와 신대륙을 정복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폴리네시아 사회를 통해 큰 섬일수록 더 많은 농업 생산량과 그에 따른 문명 발전이 이뤄지는 것을, 2부와 3부에서는 피사로 원정대의 잉카 정복을 통해 인구와 생산규모가 점차 커질수록 이를 관리하는 정치체계도 갈수록 발달하면서 강력한 국가와 제국이 정복자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4부는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중국, 아프리카, 일본 등에서 환경, 지리, 기후가 어떤 식으로 문명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유라시아 내부에서 유럽이 승리한 이유에 대한 다이아몬드의 추측을 내놓는다. 중앙아시아는 비가 적어 대규모 농업 발전이 어려웠고, 중국은 생산력은 충분했지만 동서로 길게 흐르는 황하와 양쯔강을 통해 교류가 손쉬웠기 때문에 일찍부터 중앙집권 국가가 성립하면서 혁신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복잡한 지형으로 쪼개진 유럽은 대륙을 통합하는 제국이 등장하기 어려워 내적 경쟁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결국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요약할 수 있다. "식량 생산을 먼저 시작한 이점을 누린 지역의 종족들은 총과 균과 쇠를 향해서도 먼저 달려가며 우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는 역사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기나긴 충돌이었다."


▶TMI

다이아몬드는 인종이나 문명의 차이에 따른 지능의 차이는 없다고 본다. 현대인이 원시 부족에 가면 제 손으로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하는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고, 원시 부족 출신이라도 어려서부터 서구식 교육을 받는다면 현대인과 다를 바 없이 현대문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추정하듯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서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정복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지리적 우연과 생물지리학적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2022년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국제컨퍼런스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사진 오른쪽 위) UCLA대학 교수.

미국의 지리, 인류학자인 다이아몬드가 이 책을 처음 내놓은 것은 1997년으로 거의 30년 전이다. 그래서 유럽 문명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그 이유를 끼워 맞췄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유럽의 우월성을 주장할 때 빠지지 않는 그리스-로마 문화나 기독교 사상의 우월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대륙의 크기와 지형 같은 환경적 요인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이같은 비판은 근거가 부족하다.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들은 인격 형성기를 함께한 쌍둥이 형제와 같다. 양국이 과거의 유대 관계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일본 문화는 1만 년 동안 지속된 조몬 시대(기원전 1만3000년~기원전 300년)보다 이후 700년의 야요이 시대에 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한국보다 따뜻한 데다 습지가 많아 쌀농사를 짓기에 유리한 규슈 지역은 한국 농민에게는 천국처럼 보였을 것이다. 야요이 시대에 수백만 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했다는 가설이 맞는다면, 현대 일본인은 한국인 이주자들의 후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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