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불가능한 사람들
미국 성인 80%가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여긴다는 조사(미 퓨리서치센터) 결과가 이달 중순 나왔다. 해당 항목을 조사한 이래 최고치인데 ‘기독교 국가’로 불리는 미국임을 감안하면 기독교의 힘이 쇠퇴한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1990년대만 해도 미국인 90% 가까이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밝혔다. 2007년 조사에선 78%로 줄더니 2020년대 이후 60%대로 떨어졌다. 2070년쯤 되면 비기독교 인구가 기독교 인구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독교 영향력이 밀려난 자리에는 소위 ‘진보적 세속주의’가 차지하고 있다는 게 사회문화 비평가인 오스 기니스의 분석이다. 기독교 변증가이기도 한 그는 ‘저항’ 등 여러 저서를 통해 개인과 자유를 중시하는 세태 속에서 다원주의·상대주의와 함께 세속문화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보적 세속주의 시대의 특징은 대략 이렇다. 성 개방성이 갈수록 확산되고 간음(간통)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며 이혼율이 높아지는가 하면 동성애 문화 또한 만연해진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 속에서 함께 추구해왔던 성과 사랑, 결혼·출산·양육이 각각 따로 떼내어지면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국내외 뉴스 속에서도 접할 수 있다.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선수 때문에 공정성과 여성 역차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미디어 분야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의 활동 반경이 점점 넓어지는 추세다. ‘성혁명’으로 불리는 이같은 문화는 더이상 양성(남녀)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가능한 갖가지 성별을 고를 수 있다고 부지불식 중에 받아들이게끔 무언의 강요로 다가온다.
트랜스젠더 이슈가 진보적 세속주의의 상징이라고 꼽을만한 이유는 ‘이것도 저것도 가능하다’는 인식에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제기되는 가장 큰 위험 또한 이것도 저것도 다 가능하다고 받아들이는 타협주의적 관용이라고 기니스는 지적한다. 신자가 선명한 복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과 형편에 따라 이것도 저것도 가능하다는 식의 양다리 신앙의 위험성을 간파한 것이다.
점점 더 다양해지고 다원화되는 사회 속에서 단단한 믿음을 고수하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법·제도와 문화 등이 기독교식으로 수렴되던 기독교 시대의 재현은 더이상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기니스는 1000년 전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사 피터 다미안(1007~1073)을 소환한다.
교회 개혁가로 유명한 다미안은 당시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는 데 헌신적이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성직 매매를 비롯해 교회와 성직자의 부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는데 훗날 가톨릭교회는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하나님을 향한 투철한 신앙의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다미안은 불의와의 타협을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위에서 ‘조종이 불가능한 사람’ ‘뇌물이 안 통하는 사람’ ‘도무지 말릴 수 없는 사람’으로 통했다. (내 편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요컨대 세속 문화로 물들이기가 쉽지 않은 사람, 호락호락하지 않는 사람으로 봐도 되겠다.
이런 인물들은 성경에서도 만날 수 있다. 풀무 불에 던져질지언정 우상에 절하는 걸 거부한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렇고, 사자 밥이 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초대교회 성도들, 거대한 종교 권력에 반기를 들고 종교개혁의 가시밭길에 나선 마틴 루터, 히틀러에 맞서다가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그런 부류다. 세상이 그들을 온전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게 도무지 통하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기니스는 지금 이 시대야말로 세상 풍조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사람들이 절실한 때라고 말한다. 세상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는 것, 내일 부활절에 다짐해보자.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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