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궁지로 몰아라…‘꾀’가 사라진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2024. 3.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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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라미스 해전과 도덕적 해이의 극복

이번 호부터 월 1회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을 연재합니다. 한순구 교수는 서울대 경제 학사를 받은 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전략을 연구하는 게임이론으로 경제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4년간 일본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한 후 연세대 경제학부에서 20년 넘게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게임이론과 법경제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 ‘당신의 경제 IQ를 높여라’ ‘대한민국이 묻고 노벨 경제학자가 답하다’ 등이 있습니다.

“퇴로가 없다” 깨달은 그리스 해군 결사적인 항전 벌여
자신과 조직을 위기에 몰아붙여 단합 이끌어내는 전략 유효
테미스토클레스는 조직을 궁지로 몰아, 도덕적해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진은 영화 300의 한 장면.
영화 ‘300’을 본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라는 대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작은 도시 국가 연합체인 그리스를 정복하기 위해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이야기다.

300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전투는 그리스로 들어오는 좁은 협곡 테르모필레에서 벌어졌는데, 스파르타 정예 300명이 용감히 싸우며 페르시아 대군을 막아내다 한 그리스인의 배신으로 지름길을 알게 된 페르시아군이 측면에서 공격하는 바람에 레오니다스 왕을 포함한 스파르타인 300명이 모두 전사한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냈다.

그래서 그 이후 그리스는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됐을까.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승리한 쪽은 페르시아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육군은 테르모필레에서 패배했고, 그래서 페르시아군은 그리스 국경 안으로 진격해 아테네마저 함락시킨다. 하지만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해군이 살라미스섬에서 몇 배에 달하는 페르시아 해군을 맞아 싸워 크게 승리함으로써 페르시아군은 본토에서 군량미를 배로 조달하기 어려워졌고 할 수 없이 그리스 정복을 포기하고 철수한다. 이것이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살아남은 그리스의 영향은 로마 제국으로 이어졌고 현재 유럽 문명의 기반이 됐다. 그런데 살라미스 해전이 일어나기 전 그리스 연합 해군이 페르시아의 막강한 해군을 상대로 승리할 것이라고는, 심지어 그리스 해군 지휘관들조차 믿지 않았던 듯하다. 물론 거대한 제국을 이루고 있었던 페르시아는 해군 규모가 그리스 해군의 몇 배가 될 정도로 숫자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 해군이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극히 작았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페르시아는 크세르크세스라는 절대권력을 가진 왕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군사 조직을 갖고 있었던 반면, 수십 개 도시 국가의 연합인 그리스 연합군은 군사 조직 또한 민주 조직이라서 살라미스섬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울 것인지 아니면 후퇴해서 다른 곳에서 싸울 것인지를 놓고 끝까지 갑론을박을 했다고 한다.

아테네 도시가 이미 페르시아군에 점령당한 아테네 해군은 당장 살라미스섬에서 전투를 원했지만 아직 자신의 도시가 함락당하지 않은 대다수 다른 도시들은 아테네를 포기하고 살라미스섬에서 후퇴해 다시 전열을 가다듬자고 주장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이때 아테네 해군 수장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는 다른 도시 국가들의 “후퇴해서 전열을 가다듬고 싸우자”는 주장이 말만 그럴듯할 뿐,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살라미스섬에서 후퇴하면 절반 이상 도시가 다시 모이기는커녕 페르시아 쪽에 항복하고 자신의 안전만 도모할 것임을 꿰뚫어 봤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팀에서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in teams)’라고 부른다. 201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핀란드 경제학자 벵트 홈스트롬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팀에서의 도덕적 해이를 피아노 운반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5명의 친구들이 동업을 해서 피아노를 운반하는 사업을 한다고 해보자. 피아노를 운반하는 것은 민감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므로 동시에 5명이 보조를 맞춰 피아노를 들고 옮겨야 한다. 하지만 그중 한 친구가 꾀를 피워 힘든 표정만 짓고 피아노를 들 때 힘을 쏟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꾀를 피우는 한 친구를 제외한 4명의 친구들은 갑자기 피아노의 무게가 20%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며 피아노를 한 번 옮길 때마다 이전에 비해 큰 피로가 쌓이게 될 것이다. 물론 4명의 친구들은 누군가가 실제로 힘을 주지 않고 꾀를 피운다고 의심은 들겠지만 5명 중 꾀를 피우는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한 명이 꾀를 피우는 것을 방치하면 또 다른 친구가 꾀를 피우게 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를 팀에서의 도덕적 해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시 살라미스섬에 있는 그리스 연합 해군의 상황이 그러했다고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은 판단했다. 하지만 뛰어난 지략가였던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도덕적 해이를 극복할 획기적인 방안을 찾아냈고 결국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테미스토클레스에게는 자신의 자식들 교육을 맡았던 시킨노스(Sicinnus)라는 노예가 있었는데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지기 하루 전 이 시킨노스를 몰래 페르시아 왕에게 보냈다. 적장인 테미스토클레스가 가장 신뢰하는 노예를 보내자 궁금해진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이 노예는 “이미 전세가 페르시아로 기울었고 내 조국인 아테네도 함락당했는데 아테네 해군이 더 이상 싸울 의미가 없으므로 내일 페르시아의 해군이 살라미스섬을 공격하면 아테네 해군은 안에서 내분을 일으켜서 페르시아군을 돕겠다”고 제안했다.

이미 테르모필레에서 그리스인의 배신으로 스파르타군 300명을 섬멸했던 크세르크세스 왕은 이렇게 사분오열돼 서로 배신하는 그리스인을 비웃으면서도 테미스토클레스의 제안을 믿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페르시아 해군은 바로 출동해 살라미스섬을 포위했고, 전날 회의에서 후퇴하기로 결의하고 짐을 싸던 그리스 다른 도시의 해군들은 어느새 페르시아 해군이 섬을 포위했기에 후퇴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할 수 없이 아테네 테미스토클레스의 작전을 받아들여서 결사적인 항전을 벌였다는 스토리다.

다행히 유리한 지형인 살라미스섬에 주둔하고 있던 그리스 해군은 지형의 불리함을 무릅쓰고 (아테네가 그리스를 배신한다는 말만 믿고) 쳐들어온 페르시아 해군을 상대로 승리해 그리스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노예인 시킨노스를 이용한 이 기가 막힌 전략은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음으로써 조직 내에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단합을 이끌어내는 전략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벵트 홈스트롬 교수팀에서의 도덕적 해이 해결 방법이 근본적으로 테미스토클레스 장군과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피아노를 운반하는 친구들이 다음과 같이 약속함으로써 팀에서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홈스트롬 교수는 말한다.

5명의 친구들이 100% 전력을 다했을 때 피아노를 하루에 10대 옮길 수 있다고 해보자. 만일 어떤 날에 피아노를 10대 옮기지 못하고 9대밖에 옮기지 못했다면 그날 피아노를 옮겨 얻은 수입 전액을 고아원에 기부하고 5명의 친구는 빈손으로 귀가하자고 계약을 맺는 것이다. 몰래 꾀를 부리던 친구 입장에서는 힘은 쓰지 않지만 피아노 9대를 옮긴 돈의 5분의 1을 받아 가는 재미를 얻지 못하고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꾀를 부리는 의미가 없어지므로 아무도 꾀를 부리지 않고 하루에 10대의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하게 된다는 논리다.

자신과 조직을 스스로 궁지에 몰아넣어 조직의 단합을 이끌어내어 승리하는 살라미스 해전의 전략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으면, 언젠가 조직에 위험이 닥쳤을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2호 (2024.03.27~2024.04.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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