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폐업했는데 죄 지은 기분입니다

박순우 2024. 3. 2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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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도 영향을 미치는 자영업의 낮은 생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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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우 기자]

카페를 폐업했다. 10년 동안 이어온 생업을 끝내기로 결정한 건, 내 삶의 중심이 카페보다 글로 옮겨간 때문이었다. 더 늦기 전에 글방을 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해 보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바라는 길로 간다지만, 10년 동안 해온 일을 관두는 게 쉬울 리 없다. 고민만 꼬박 1년을 했고, 결정을 내리면서도 수십 수백 번 곱씹고 뒤돌아봐야 했다. 어렵게 결정한 폐업이기에 카페 문을 닫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허전할 것 같았다. 혼자 질질 울지는 않을까 염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내 예상은 단 하루 만에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짐 정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새롭게 공간을 꾸미자니 기존 살림살이를 하루빨리 정리해야 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그동안 쓰던 물건의 향후 거처를 정해야 했다.

더 쓸 물건인가, 버릴 물건인가. 버린다면 재활용이 되느냐 안 되느냐. 구석구석 박힌 10년의 살림살이를 모조리 꺼내니 양이 만만치 않았다. 이 모든 살림의 거처를 정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주에서 10년을 이어온 카페를 이제 접으려 한다.
ⓒ 박순우
 
보자마자 단번에 판단이 내려지는 물건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물건들도 많았다. 어제까지 쓸모 있던 물건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쓰레기로 변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의 선택이 다량의 쓰레기를 생산하는 것이었다니. 아쉬움에 울기는커녕 눈앞의 황당한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일회용품에 마음이 불편했는데, 접고 나니 또다른 문제를 맞닥뜨릴 줄이야. 카페 살림 중에는 그릇이나 컵이 많은데, 이런 물건의 경우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유리든 사기든 마찬가지. 나눌 수 있는 물건은 중고마켓을 이용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었지만,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거나 나눌 정도의 상태가 아닌 물건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놔두자니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고, 보관한다 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리바리 짐을 싸서 갖다 버리면서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생산한 죄를 어떻게 씻을 수 있을까.

불편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보니 한국 사회에 넘쳐 흐르는 자영업자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관련 통계를 찾으니, 2021년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3.9%로 OECD 30개국 평균인 17.0%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들의 생존율이 지극히 낮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 기업 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숙박·음식점업의 5년 생존율은 22.8%에 불과하다. 호기롭게 창업을 해도 10곳 중 8곳은 5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낮은 자영업 생존율 속에서 폐업 때마다 발생하는 쓰레기량은 얼마나 될까. 관련 통계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중고시장에 매물로 나온 물건이 쌓여간다는 보도만 난무할 뿐이다. 개중에는 판매가 불가하거나 나눔조차 어려운 물건도 많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며 구입하고 구비한 많은 물건들이 수 년 안에 쓰레기로 변모한다는 사실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용하던 물건들만 버려지는 게 아니다. 인테리어에 사용한 내장재나 외장재도 뜯겨 나간다. 자영업의 흥망성쇠가 빠를수록 인테리어업 종사자들만 배를 불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가게든 시작하려면 어느 정도 공간을 손봐야 한다. 콘셉트에 맞게, 유행에 맞게,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있도록. 이 과정에서 나무, 타일, 벽돌 등 수많은 자재들이 교체되면서 다량의 쓰레기가 발생한다.

자영업의 처참한 생존율이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직접 폐업하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10년을 장사하면서 수없는 위기에 부딪혔다. 경기는 대체 언제 좋아지는 건지. 신상 카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서고, 내가 선택한 물건과 인테리어는 세월보다 빠른 속도로 낡아갔다. 임대료나 인건비가 나가지 않아 간신히 10년을 버텼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역시 5년 안에 폐업의 길을 갔을지 모른다. 만일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큰 죄책감 속에 가게를 정리해야 했을까.

장사를 접어야 했던 이유 중 하나는 10년이 지나니 다시 구입해야 하는 비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문 하나는 망가진 지 오래였고, 제빙기는 세 번의 수리 끝에 운명을 달리했다. 로스터기는 오늘내일하고 빙삭기도 노후화가 심해 교체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이 결정을 더 재촉한 게 사실이다.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물건의 수명은 여전히 짧기만 하다.

모든 물건은 잠재적인 쓰레기다. 아무리 비싸고 질이 좋은 물건이라 해도 수십 년이 지나면 결국 쓰레기가 된다. 저렴한 물건은 어떨까. 비용 절감에만 목표를 맞춰 생산한 물건은 그만큼 수명도 짧다. 싸게 구입했으니 버리는 마음도 가볍다. 평소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식자재나 생필품들만 신경을 썼는데, 가게 정리를 하다 보니 오래 두고 쓰는 물건이더라도 버릴 때를 꼭 염두에 두고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며칠에 걸쳐 진행한 지난한 정리의 과정을 마쳤다. 새롭게 공간을 꾸리자니 예쁘고 빛나는 것들이 자꾸 눈에 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매끈한 가전제품들, 수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과 살림살이들. 마음이 동할수록 지난 며칠 동안 갖다 버린 쓰레기를 의도적으로 떠올린다.

꼭 필요한 것만 들인 공간에서 간소하게 살고 싶다. 이불을 펴면 잠자리고 상을 펴면 식탁이나 공부방이 되는 작지만 다채로웠던 한옥의 쓰임새처럼, 내 살림살이도 하나의 물건이 단 하나의 역할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구에 덜 미안해 하면서, 소비는 줄이고 나눔은 늘리는 삶이라면 좋겠다. 이미 충분히 가졌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내가 버린 수많은 쓰레기들이 당장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지구 어딘가에는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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