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라덕연 막아야 하는데…잠자는 법안들[주가조작과의 전쟁]
여전히 '소관위 심사' 상태
솜방망이 처벌에 불공정거래 재범율 20%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 이후 증권 범죄 근절을 위해 불공정거래 행위 제재 내역을 공개하거나 거래제한 조치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소관위원회 심사조차 통과 못 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들은 여야의 극심한 정쟁으로 정책 입법 논의가 중단된 상황이어서 21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불공정행위 근절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관련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지부진한 관련 법안 처리
29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자본시장법)'은 여전히 소관위 심사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불공정거래 행위자를 자본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도록 배제하는 것이다. 주가 조작범은 최대 10년간 자본시장 내 모든 금융투자상품의 신규 거래와 계좌 개설이 제한된다. 이 같은 거래제한 조치는 영국 등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도입해 시행 중이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제한 조치는) 고발이나 수사기관의 통보와는 별개로 금융당국의 독자적 판단으로 자본시장의 거래를 제한하는 불이익처분을 부과하는 것"이라며 "투자자를 보호하고 불공정거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 이후 반짝 관심을 모았던 불공정거래 관련 법안은 지난해 말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겨우 논의가 진전됐으나 민주화유공자법 등 여야 충돌 법안에 밀려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자의 자본시장 거래와 상장사 임원 선임을 최대 10년간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불공정거래 행위자 처벌 강화 법안도 정무위에 계류됐다.
윤창현 의원실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윤창현 의원의 주력 법안으로 금융위원회 검토까지 마친 법안"이라며 "지난해 말 정무위에서 깊이 있게 논의됐지만 민주화유공자법 이슈에 밀려 결국 소관위 심사도 못 한 채 계류 중"이라고 전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주가조작 행위 시 최대 10년간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제한하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시 주권상장법인의 임원 자격도 상실토록 규정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소관위 심사 중으로 여전히 답보 상태다. 게다가 강 의원은 최근 서울 은평을 경선에서 탈락해 사실상 법안 통과를 이끌 동력을 상실했다.
재범 방지할 규제 강화 필요
현행 처벌 수위는 현저히 낮아 금융시장 내 불공정거래 재범이 근절되기 어려운 구조라, 재범 방지를 위한 불공정거래 규제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최근 5년간(2017~2021년)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의결된 불공정거래 사건 274건 중 행정조치 없이 고발·통보 조치만 된 경우는 93.6%나 된다. 2016~2020년 내 고발·통보된 사건 중 불기소된 비율도 55.8%다. 미약한 처벌을 방증하듯 최근 3년간 3대 불공정거래 재범률은 20%를 넘겼다. 2021년 기준으로 전체 사범 99명 중 21명이 재범행을 시도한 셈이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제한 조치는 자본시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 소득을 원천 차단해서 불공정거래를 다시 일삼는 유인을 저하시킨다"면서 "이들의 자본시장 접근 자체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관련 법 통과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재산권 침해 논란을 피하기 위해 권익 보호 등에 대한 내용을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래제한은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시장 참여를 어렵게 해 재발을 막는 효과가 크지만, 일종의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일회성 제재가 아닌 장기에 걸친 제재라는 점에서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의 행사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해 현재 발의된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되, 거래제한 대상과 조치예정자의 권익 보호 등에 대한 내용을 시행령이나 고시가 아닌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편집자주 - 주가조작 관련 범죄 중 역대 가장 큰 규모(부당이득 합계 7305억원)의 '라덕연 게이트'가 발생한 지 1년(2023년 4월24일)이 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 시장에 실효성 있는 피해자 방안은 없습니다. 소송밖에는 답이 없으나 비용 부담과 피해입증 어려움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라덕연 게이트'로 형사처벌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실효성 높은 금전적 제재를 도입한 자본시장법 개정은 의미가 크지만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서 증가하는 증권 범죄를 근절하려면 이를 효율적으로 적발·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속·엄정한 제재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경제 증권자본시장부 특별취재팀은 해외 자본시장 선진국의 제도를 살펴보고, 증권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시장의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봅니다. 또한 지능적·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만큼 투자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시세조종, 보고의무 위반 등 각종 불공정 거래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할 예정입니다. 자본 시장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lsa@asiae.co.kr)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황윤주 차민영 김대현 기자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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