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들

김유나 2024. 3. 2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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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하지만 우리는 이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안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절규는 숫자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대한의사협회는 이 모든 결정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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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가장 최근인 지난 20일 병원을 떠난 전공의 수치를 공개했다. 정부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탈한 전공의 수치를 마지막으로 공개한 지난 8일(92.9%)보다 높은 수치다. 정확히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 비율이 ‘3.1%(308명)’라고 밝혔다. 일주일 전인 11일 기준 근무 인원이 303명이었는데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숫자다.

‘97%’. 보건복지부는 28일 기준 응급실 408곳 중 97%인 395곳이 병상 축소 없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종합병원 중환자실 입원환자 수도 평시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도 정부의 비상진료체계는 잘 작동하고 있고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말했다.

의사단체와 정부가 내민 두 개의 숫자는 공교롭다. 한쪽에서는 의사 집단행동의 위력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이 숫자에서 안도감을, 또 누군가는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안다. 떠난 전공의를 대신해 병원을 지키는 3%가 동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디며 환자를 지켜내고 있는 것. 또 병상 축소를 맞은 3% 응급실에선 ‘오늘은 위급한 환자가 오지 않게 해 달라’는 현장 의료진의 기도가 현실을 위태롭게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절규는 숫자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의정 갈등이 시작된 지 40일이 지났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에 이어 이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 행렬에 나서고 있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대한의사협회는 이 모든 결정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을 완수하면 결국 의료비 부담과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져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의사 집단행동 그 자체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만약 의사 집단행동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한 명의 환자라도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어떨까. ‘전국의 의료 시스템상 아마도 0.001%, 아주 작은 숫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돌아가시는 분(환자)이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듯 의사들도 이런 슬픈 상황을 예감하고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되면 환자와 보호자는 100%를 잃는 것이다. 그리고 100%를 잃는 건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다. 현장을 목격하며 허탈함을 겪을 의료진, ‘나도 이런 위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불안감을 호소할 환우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이 함께 감당하는 일이 된다. 환자 신뢰를 잃은 의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하루속히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동안 힘겹게 의료체계를 지탱하고 있던 의사들의 노고를 다른 누구보다도 환자 곁에서, 국민에게 인정받는 편이 ‘의사 선생님’들에게도 걸맞다.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며 국민도 필수의료를 지켜오던 한 명 한 명의 의사가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됐다. 그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저 드라마 속 젊은 의사들의 ‘열정’으로만 포장돼 왔던 열악한 전공의 근무 환경을 이제는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 의료의 미래를 걱정하는 의사의 진정성을 이제 환자 곁에서 증명할 때가 됐다. ‘의사 선생님’에게 존경 대신 조롱을 보내는 슬픈 현실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다. 의사가 조건 없이 환자 곁으로 돌아오는 것은 얻는 게 0%인 일이 아니라 100%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김유나 사회부 차장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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