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너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 될 때

2024. 3. 29.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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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굴레 벗고 나아가는 뮤지션의 성장…
그들의 노래 듣는 이들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성장 서사를 좋아한다. 사랑에, 우정에, 가족에, 세상에 부딪혀 구르고 깨지다 삶의 굴레를 벗고 끝내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야 마는 누군가의 이야기. 성장 서사는 흔히 청춘물과 동일시되지만, 이외에도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장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화된 양식이기도 하다. 성장은 심지어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끝없이 이어진다. 배우에서 아이돌까지, 대중 앞에 서는 한 사람의 성장을 목격하고 나아가 응원하는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할 준비가 된 사람이 가장 쉽게 택할 수 있는 몰입 방식이다.

음악가의 성장은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다양한 동료와 힘을 나눠도 결국 그 음악을 이끄는 건 앨범에 이름이 박힌 음악가일 수밖에 없어 더 그렇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음악은 그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한 번 더 자란다.

21세기 음악가 가운데 이러한 ‘성장의 순환’을 가장 직관적으로 전한 아이콘은 단연 아이유였다. 일명 ‘나이 시리즈’로 불리는 노래 ‘스물셋’ ‘팔레트’ ‘에잇’을 통해 자신의 20대를 대중과 촘촘히 나눈 그는 다섯 번째 앨범 ‘LILAC’(2021)으로 파란만장했던 지난 20대에 후련한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박제된 아이유의 시간은 그대로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의 시간과 연결되었다. 유독 깊은 유대감으로 잘 알려진 팬덤 유애나의 응집력은 음악과 함께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 속에서 몇 번이고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 개인의 서사가 모여 만들어낸 굳건한 영토였다.

이것은 비단 특정 팬덤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크고 작은 성장은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발매된 두 장의 새 앨범을 들으면서 또 한 번 ‘성장’을 떠올렸다. 주인공은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디폴트’와 듀오 옥상달빛의 ‘40’이다.

우선 김사월의 ‘디폴트’는 노래 속 화자의 성장이 앞선다. 2014년 동료 김해원과 만든 앨범 ‘비밀’로 정식 데뷔한 그의 노래 속 화자는 환상 같은 낙관과 악몽 같은 비관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오직 사랑만을 갈구해 왔다. 도무지 풀릴 생각이 없어 보이던 김사월과 사랑 사이 꼬인 운명의 붉은 실은 ‘디폴트’에 이르러 비로소 복잡한 타래를 푼다. 막 태풍이 지나간 들판처럼 고요한 상태. 극한의 기쁨이나 궁극의 절망도 흔들지 못할 꼿꼿한 자세로 ‘사랑 없는 세상이 디폴트’(‘디폴트’)라고 처연하게 노래하는 김사월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반면 옥상달빛은 노래 밖 음악가의 성장이 먼저다. 앨범 제목 ‘40’부터가 그렇다. 두 멤버가 올해 맞이한 나이를 뜻하는 숫자는 인트로 ‘옥탑라됴6’에 이어지는 첫 트랙 ‘자기소개’의 가사에도 자연스레 녹아 있다.

‘체력은 약해지고/ 소화도 늦어졌죠/ 예쁜 걸 봐도 감동이 줄었어요/ 살은 안 빠지고 /이젠 밤도 못 새.’ 마흔 줄에 들어선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솔직한 노랫말은 옥상달빛을 이루는 김윤주 박세진 두 사람의 성장 곡선과 일치한다. ‘수고했어 오늘도’ ‘없는 게 메리트’ 같은 대표곡이 전한 옥상달빛 특유의 정겨움 그대로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의 하루가’(‘다이빙’) ‘약속할게 난 죽지 않아’(‘약속할게 난 죽지 않아’) 같은 흔하다면 흔한 말이 전과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건, 그를 부르는 이들의 삶도 그만큼 묵직해졌기 때문이다. 과연 자신들의 이야기를 순도 높게 음악에 녹여 전하던 위로의 귀재다운 폼이다.

그렇게 각자의 성장을 담은 옥상달빛의 ‘다이빙’과 김사월의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을 듣다가 울컥했다는 나를 보며 ‘너도 나이 들었다’고 놀리는 친구들의 손가락질이 하나도 얄밉지 않다. 이런 음악가, 이런 음악을 곁에 두고 같이 성장해 갈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은 삶 아니겠나. 너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 되는 기적이, 음악에 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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