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안의 시시각각] 방치될수록 위험해지는 공수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정치권에 핵폭탄을 투척했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통해서다.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이 수시로 취해온 출국금지 조치는 통신 조회와 함께 고질적 인권 침해 요소로 꼽혀왔다. 법원의 영장 없이 진행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더욱이 공수처는 출범 초기 야당과 언론에 대한 통신 조회를 남발해 인권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선 전력이 있다. 이번 수사를 두고서도 “공수처의 장기간 출국 금지는 심각한 인권 침해”(전직 검찰 간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출금은 전직 국방부 장관이 대상자로 확인되면서 사뭇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도중 순직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과 관련해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의 혐의를 두고선 “군에는 사망 사건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직권 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전직 고위 군법무관)는 반론이 나온다. 그러나 유·무죄를 차치하고 수사가 안 끝난 그를 대사에 임명한 인사가 합당했느냐 하는 논란으로 번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즉시 귀국”을 요구할 정도로 정부가 궁지에 몰렸다. 공수처의 출금 하나가 던진 파문이다.
이종섭 대사 출국금지로 핵폭탄
공수처만큼 논란을 몰고 다닌 기관도 드물다. 수사 대상인 실세 검찰 간부를 차로 모셔온 ‘황제 조사’ 논란이 대표적이다. 미숙한 헛발질을 연발하던 공수처가 지난 1월 검찰 내 엘리트로 꼽히는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에 대해 1심에서 유죄를 받아냈다. 포렌식을 동원한 치밀한 수사를 통해서였다. 검찰을 비롯해 공직자 비리를 감시하라는 설립 취지에 걸맞은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수처가 생기기까지 국회에서만 20년 넘는 숙성기간을 거쳤다. 각종 문헌은 우리나라 공직 수사의 역사가 1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관료의 죄목에도 유사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고려 시대인 1146년에 어사대가 압록강 수군 익사 사고의 책임을 물어 병마사를 처벌했고, 조선 시대에도 1615년 사헌부가 조직을 비호한 의금부의 고관을 기소한 기록이 나온다. (강효백 『공수처』 등)
어렵게 설립한 공수처의 취지를 퇴색시킨 건 문재인 정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여야 합의를 깨고 정권에 유리하게 바꿔 강행 처리했다. “공수처장 임명이 집권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정웅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과 제도의 이해』)이라는 해석이 따랐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초창기 어설픔을 극복하고 굵직한 공직 관련 이슈를 사회에 던지기 시작했다.
수장 공석에 리스크 관리 어려움
정상화 미루면 정권 부담 더 커져
하지만 지난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퇴임한 이후 처장은 물론 차장까지 공석인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가 판사 출신 오동운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 변호사를 추천한 게 한 달 전이다. 두 사람 모두 우파 성향이라는 평가다. 오 변호사와 함께 근무했던 전직 고위 법관은 “보수 성향으로 극우는 아니며 합리적인 성품”이라고 말한다. 이 변호사를 잘 아는 전직 검찰 간부는 “특수수사통은 아니지만 다양한 수사 경험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누가 돼도 무리 없다는 평판이니 윤석열 대통령이 한 명을 선택해 절차를 밟으면 된다. 당장 이 대사 수사 처리를 위해서도 정상화가 시급하다. 여권에선 “공수처 수사에 문제가 많다”고 비난하지만, 수장이 와야 해결될 사안이다.
고위 공직자만을 겨냥하는 조직이 정부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공수처였으나 ‘1호 사건’으로 진보 성향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혜 채용 의혹을 골랐다. 2심까지 징역형이 나왔다. 공직자 비위를 수사하는 기관의 숙명이다.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고 해서 비정상적인 상태를 오래 방치하면 위험은 계속 자라난다. 누구에게 또 어떤 공격이 들어갈지 두렵지도 않은가.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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