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공시가격 현실화보다 중요한 것

김원배 2024. 3. 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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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A X B = C라는 간단한 곱셈 공식이 있다. 공시가격을 내는 방법이다. 시세(A)가 있고 여기에 현실화율(B)이라는 수치를 곱하면 공시가격(C)이 나온다. 그런데 현실화율이라는 수치가 들쭉날쭉하다. 2020년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40%대 중후반부터 85% 정도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이를 2035년까지 90%로 맞추겠다는 게 2020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다. 내용을 보면 공동주택(아파트)과 단독주택의 도달 시기가 다르다. 아파트 중에서도 고가 아파트가 2025년으로 제일 빠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실화 로드맵을 재검토한다고 했다가, 급기야 최근 윤 대통령이 로드맵 폐기까지 언급했다.

「 들쭉날쭉한 비율 고르게 해야
인위적 차별 적용은 부당 증세
정확한 시세 산정이 기본이다

공정 과세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논란이 됐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연구 용역을 줬다며 올여름 이후에나 개편 방향을 알리겠다는 입장이다. ‘폐기’라는 단어로 궁금증만 키웠고 구체안이 나오려면 몇 달이나 남았다. 대통령과 주무 부처가 뭔가 역할 분담이 안 된 느낌이다. 주요 정책을 알리고 소통하는 방식은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화 로드맵은 문제가 많다. 왜 그런가. 부동산 소유주는 매년 이때가 되면 공시가격(C)을 열람한다. 그런데 C의 부모 격인 A와 B는 알지 못한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실화율은 공시가격의 오류를 덮는 베일”이라고 표현했다. A를 제대로 산정해 공개할 수 없으니 B라는 장치로 납세자의 눈을 가린다는 뜻이다.

일부에선 로드맵 폐기를 두고 ‘부자 감세’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실화율이라는 불투명한 도구로 고가 아파트에 부당한 증세를 했거나, 그렇게 하려 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0년 시세 9억원 미만 아파트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68.1%, 15억원 이상은 75.3%였다. 격차는 7.2%포인트인데 로드맵에선 올해 14.2%포인트로 벌어지는 것으로 설계했다. 원래 차이가 있었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확대했다. 현실화율이 높아지면 공시가격이 오르고 보유세 부담이 늘어난다.

이는 조세 법률주의에도 어긋난다. 세금은 법률로 정하며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비싼 집에 세금을 더 부과하려면 세율을 높이는 등 투명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 당사자도 모르는 현실화율이라는 숫자를 차별적으로 적용해 세 부담을 높인 것을 어떻게 조세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이는 고가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단독주택은 거래가 드문 비싼 집보다 거래가 많은 저가 단독주택의 현실화율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개별 현실화율이 공개되지 않으니 누가 불이익을 받았는지 알 수도 없다.

2022년 한국지방세연구원이 펴낸 ‘부동산 세제 쟁점 분석 및 정책 제언’에선 로드맵을 평가하며 “보유세 부담의 강화 차원에서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현실화가 추진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동산 유형, 가격대 등에서 발생하는 현실화율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국민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는 노력을 우선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 로드맵을 그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일부 학자들은 시세를 공시가격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현실화율은 단번에 100%가 된다. 지난해 11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주요국의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운영현황 및 시사점’엔 미국 뉴욕시의 재산세 고지서가 나온다. 고지서엔 ‘추정 시장가치(estimated market value)’가 표시돼 있다. 한국에선 알려주지 않는 A에 해당한다.

그런데 국토부는 이렇게 하긴 어렵다고 한다. 현실화율 적용 이전의 산정가(시세)를 공시가격으로 발표했는데, 실거래가가 그 아래로 떨어지는 역전현상이 생기면 혼란이 온다는 이유에서다. 이러면 정부가 실제보다 높은 공시가격으로 과세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시가격은 보유세 납부와 여러 가지 제도의 기준이 된다. 공시가격이 제대로 나오려면 무엇보다 '시세'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고 공평하게 산정하는 게 기본이 돼야 한다. 그래야 현실화율도 형평성 있게 맞출 수 있다. 현실화율은 납세자의 수용성을 높이는 완충 장치로 써야지, 불투명한 시세를 가리는 ‘변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산정 시세도 공개해야 한다. 이의 신청과 민원이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이를 듣고 보완해야 장기적으로 더 정확한 시세와 신뢰받는 공시가격을 낼 수 있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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