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조각가’ 리처드 세라 별세

이은주 2024. 3. 2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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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파리 라데팡스에 재설치된 1984년작 ‘슬랫(slat)’ 앞에 선 리처드 세라. [AP=연합뉴스]

미국의 세계적인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26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외신들이 27일 보도했다. 세라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녹슨 강철을 구부린 곡선 모양의 작품으로 세계 곳곳에 압도적인 규모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193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세라의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배관사로 일했다. 그는 “네 살 때 거대한 유조선의 진수식을 본 기억이 평생 내 창작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예일대에서 회화를 공부한 그는 1960년대 중반 유럽에 체류했다. 본래 화가를 꿈꿨으나 파리에서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1876~1957)의 작품에 매료되면서 그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고무와 네온관, 납 등의 재료로 추상 조각을 만들었고, 1970년대 들어 거대한 철판을 재료로 공간을 구성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조각가로서 그의 주된 관심은 강철이라는 재료 본연의 힘을 최대한 살리고, 작품을 통해 공간을 형성하는 데 있었다. 공업 재료인 강철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선호했다.

세라의 초기 공공미술 작품은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게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1981년 완성한 ‘기울어진 호(Tilted Arc)’다. 뉴욕 페더럴 광장에 설치된 이 작품은 가로 길이가 36m로 녹슨 철판이 기울어진 벽처럼 휜 상태로 광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그러나 작품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이 청원을 냈고, 뜨거운 찬반 논쟁 끝에 1989년 철거됐다.

이런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미술계에서 인기를 더 얻어 갔다. 1986년과 2007년에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두 번 회고전을 열었고, MoMA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이퀄’(2015)에 영구적인 전시 공간을 내줬다. 2005년 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된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도 대표작이다.

그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는 2014년 카타르 브루크 자연보호구역에 1㎞에 걸쳐 세워진 14~16m 높이의 네 강철기둥 ‘동-서/서-동(East-West/West-East)’이다. 세라는 “내가 한 것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고시언 갤러리의 래리 가고시언 회장은 27일 “세라는 조각과 그림의 정의를 바꿔 놓은 거인이었다”며 “그는 단순하면서도 숭고한 경험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켰다”고 추모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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