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의 새 산문집… ‘글 없는 그림책’에 담은 생각들

김남중 2024. 3. 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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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만질 수 있는 생각
이수지 지음
비룡소, 344쪽, 2만5000원
그림책작가 이수지가 지난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산문집 ‘만질 수 있는 생각’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비룡소 제공


2022년 ‘그림책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50) 작가의 그림책에는 대개 글이 없다. 대표작 ‘파도야 놀자’를 비롯해 ‘그림자 놀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여름이 온다’ 등 예술성과 실험성이 높고 글이 없는 그림책을 만들어왔다. 글 없는 그림책에 대해 그는 “굳이 텍스트를 덧붙일 이유를 찾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거나 “그림으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의 경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해왔다.

글이 없는 이수지의 그림책은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다. 세계 독자들과도 즉각적으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수지 산문집은 반갑다. 2011년 출간한 ‘이수지의 그림책’이 작업노트 성격의 글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새 산문집 ‘만질 수 없는 생각’은 편안한 일기체로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며 한 작가에게서 삶과 작품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보여준다.

이수지는 지난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흔히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저는 작가가 많은 이야기를 해줄수록 세계가 더 풍부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서 “작가의 환경과 상황, 맥락에서 작업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도 전해지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다. 또 제 얘기가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책 낸 이유를 밝혔다.

‘만질 수 있는 생각’은 이수지가 그동안 개인 블로그에 써온 글들을 정리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수지의 그림책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려준다. 한 예술가가 어떻게 자기의 장르를 발견하고 개척해 나갔는지, 한 여성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떻게 작업을 계속해 나갔는지 보여주는 예술가 에세이로도 읽을 수 있다.

책에는 ‘엄마들은 어떻게 작업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 두 편 있다. “확실한 것은, 애들 보면서도 일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고유한 리듬이 있는데, 그 리듬을 타려면 어찌 되었든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유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작업이 나아가지 못할 때가 그에게도 많았다. 그럴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참 아이들이 어릴 때, 손이 많이 갈 때, 작업 못 해 허탈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하필 그때가 아이들이 가장 예쁠 때이기도 하다. 마음의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생각하곤 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나를 찌르지만, 결국은 삐죽, 나올 그것.”

그는 “제한과 조건이 없는 일은 없다”면서 “만드는 것을 놓지 말고 계속하라고 말하고 싶다. 계속하는 사람이 계속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책은 이수지가 대표해온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 동화작가, 아동문학가 등으로 불리기를 거부하고 ‘그림책작가’로 자신의 업을 규정했으며, 어린이책이나 아동문학과는 구별되는 그림책만의 독특한 입지를 구축해왔다.

그는 “나는 그림이면서 책이고, 책이면서 예술의 언저리에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림책의 세계에 들어섰다. 그는 그림책을 “어린이를 위해 예술가들이 만든 책”으로 규정한다. 또 “우리가 대충 알고 얼버무리면서 밀어 놓았던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어린이책”이라고 설명한다.

이수지는 기자간담회에서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만나는 첫 번째 책이고, 첫 번째 예술”이라며 “그림책이 유아 카테고리 안에서 교육적 목표만 쫓아가면서 소비되기보다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고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예술 장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수지의 산문집은 그의 그림책이 그렇듯 내용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하나의 물건으로서 우선 아름답게 다가온다. 표지부터 종이와 활자, 본문 레이아웃, 사용된 흑백의 그림과 사진들, 꿰맨 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책등까지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명확한 이유를 가지며 내용을 향해 섬세하게 봉사한다. 이수지의 글은 그의 그림처럼 자유로우면서도 정확하다. 책에는 “아름다움이란 바로 정확성의 결과다”라는 이탈리아 예술가 브루노 무나리의 말이 나온다. 정확성은 이수지가 만들어낸 아름답고 독창적인 세계의 비밀을 풀어줄 또 하나의 열쇠처럼 보인다.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음 달 23일부터 이수지 그림책 전시회를 연다. 9월 22일까지.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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