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대로 하라”는 이 구호, 정말 만능일까

양민경 2024. 3. 28. 18: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사디어스 윌리엄스 지음/윤종석 옮김/두란노
“마음 가는 대로 하라”라는 경구가 영어로 적힌 노란 표지판. 게티이미지뱅크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경구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인생 지침으로 등극한 지 오래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말한 경구로도 유명하다. ‘내면에서 답을 찾아라’ ‘자신에게 충실하라’ 등으로 변주되는 이 표현은 이제 각종 연설과 대중가요 후렴구, SNS에서 흔히 발견되는 단골 문구다.

미국 탈봇신학교 조직신학 조교수인 저자는 이들 문구에 “신과 인간 본성, 죄와 구원 등에 대한 잘못된 주장이 담겨 있다”고 본다. 일견 전혀 문제 될 게 없어 보이는 이들 표현에 “성경에 어긋나는 내용”이 내포됐다는 것이다. 그가 이들 구호에서 문제 삼는 부분은 ‘자아 숭배’ 사상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를 휩쓴 이 사상을 저자는 유행이 아닌 ‘종교’로 본다. 미국에선 이미 “가장 급성장하는 인기 종교”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자아 숭배교’로 발전한 이 사상엔 일종의 성인(聖人)과 선지자, 십계명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로마의 네로 황제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그가 꼽는 이 종교의 성인 축에 속한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은 '명연설'로 손꼽힌다. 이 연설에서 잡스는 “내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기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는 자아 숭배 논리는 전혀 새롭지 않다. 성경 첫 책인 창세기에도 감정의 끌림 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아담과 하와가 등장한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기독교는 죄에 물든 마음과 행실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를 강조한다. 마음을 질서 있게 다스릴 것을 과제로 삼는 건 주요 철학과 종교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의 절도’를, 석가모니는 애착심(愛着心)을 초월하라고 가르쳤다. 이슬람교 역시 내면의 과욕을 경계한다.

반면 자아 숭배교는 모든 감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신념으로 마음이 기울어 역사를 피로 물들인 경우도 적잖다. “백인 우월주의자와 제국주의자, 테러리스트도 자신의 마음을 따른다.… 어떤 집단 최면에 걸렸기에 우리는 마음을 도덕 가치의 절대 기준으로 생각하는 걸까.”

현대 사회 10가지 인기 구호. 두란노 제공

이들 종교인의 행실이 자아를 숭배하는 이보다 무조건 낫다는 건 아니다. 저자는 “종교인 역시 인류에게 몹쓸 짓을 많이 해왔으며 그리스도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사람이 불의를 저지르는 걸 나 역시 목격한 바 있다”고 증언한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건 개인의 자결권(自決權)을 위협하지 않으며 세상엔 진리와 보편적 선악이 실존한다”고 강조하는 건 기독교 신앙을 진리로 믿고 역사를 바꾼 이들이 엄연히 존재해서다. 나치 정권에 항거한 백장미단과 노예제 폐지에 앞장선 윌리엄 윌버포스는 분명한 선악 개념을 바탕으로 거악에 맞섰다. ‘절대로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상대주의 사상을 진리 삼았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용어의 재정의에 대해선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인용해 비판한다. 저자는 “이제 낙태는 태내 인간을 죽이는 행위가 아니라 단지 ‘자궁 내용물의 적출’이 됐다”며 안타까워한다. ‘사랑은 사랑이다’란 미명 아래 생활 방식과 정치 성향을 강요하는 행태도 지적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별 구분이 사회의 자의적 개념보다 더 심오하며 남녀 구분을 없애면 소중하고 생명력 있는 뭔가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시대는 변증 가능한 이 신념을 아예 배제하면서 ‘그건 편견이나 혐오, 공포일 수밖에 없다’라고 우긴다.”

책은 현대 사회의 주류 인생관을 해부하며 이에 대척점에 선 기독교의 가르침을 낱낱이 분석했다. 세속 학문과 문화를 싸잡아 악마화하지 않되 자아 중심 문화의 한계를 여러 종교·철학적 관점에서 면밀히 따져본 게 이채롭다. 저자의 마지막 일갈이다. “사랑은 ‘지금의 너대로 좋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본연의 네가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디 모든 해시태그(#) 선전에 놀아나는 봉이 되지 말라. 당신의 타락한 마음 대신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라.”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