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신발, 손바닥... 온 몸으로 그린 그림들

이혁발 2024. 3. 2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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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예술의 흔적, '퍼포먼스 설치 드로잉' 전시 4월 14일까지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열려

[이혁발 기자]

모방의 기술이 아닌 개념미술의 '행위' 끝에 남겨진 '회화'는 또 다른 차원의 미적쾌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지난 23일 한국행위예술가 협회 소속 회원 23명이 기린미술관(전주)에서 행위미술을 통한 드로잉 작품을 만들어냈다.
 
▲ 임택준 < I LOVE YOU >
ⓒ 이혁발
 
행(행위)과 미(미술)의 만남, 온 생이 담긴 회화

임택준이 화면에 비켜서서 빗자루로 쓰윽쓰윽 그리고 손바닥으로도 그렸다. 작품명이 < I  LOVE  YOU ❤>다. 빗자루 흔적, 그 가늘고 칼칼한 선 맛은 달콤하지만 쌉쌀한 '사랑'을 물씬 생각나게 한다. 행위의 결과물인 이 작품은 층층이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수준 높은 추상 작업이 되었다.

박시학은 <푸른 깃발>이라는 자작곡을 틀어놓고, 손바닥을 활용한 몇 번의 문지름으로 강렬한 <푸른 깃발>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어떤 이상적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파하고픈 깃발이겠지만 기자는 메시지보다 행위의 결과물인 회화가 주는 강렬한 색감에 압도당한다.
 
▲ 배달래 <관조>
ⓒ 이혁발
 
배달래가 켄트지 위, 미리 뿌려둔 목탄 위에서 춤추듯 감각적인 움직임을 펼치니 발바닥으로 짓이겨진 화면은 격렬한 소용돌이를 품은 듯한 검은색 회화가 되었다. 즉흥 몸짓으로 도출된, 파도의 난무 같은 화면이었다. '지금, 여기', 현재, 살아있음을 증명한 자리였다.

존재의 중심에 자각하며 '있은(존재)' 것이다. 또한 혼신을 쏟은 행위의 결과물이므로 이 작품 안에는 작가의 전 생애(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가 통째로 담기게 된다. 이러하기에 어느 대가의 작품에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묵직하면서도 격 높은 성취감을 풍기게 되는 것이다.

'그린다'의 원초적 즐거움을 묻다
 
▲ 김용수 <내가 발로 그려도!>
ⓒ 김용수
김용수의 <내가 발로 그려도!>라는 작품은 발로, 정확히 말하면 신발로 그린 작품이다. 신발을 신은 채로, 신발 바닥에 묻은 때로 그림을 그렸다. 기존 그림에 대한 통렬한 일갈이다. 액자처럼 권위화되고 상업화되고 있는 그림 시장에 대한 시원한 일갈인 것이다.

또한 "그림을 왜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화가는 인간이 가진 '그린다'는 원초적, 본능적 쾌감을 즐기는 것이 항시 우선이 되어야 한다. 놀랍게도 신발 바닥과 신발 바닥 옆면을 이용한 이 작품의 결과물, 그 위엄은 굉장하였다. 발바닥을 비비는 회화를 창출한 배달래도 발바닥이 주는 감각의 쾌감을 즐겼을 것이다.

행위의 흔적으로 내 삶을 돌아보다
 
▲ 심홍재 <흔적 20240323>
ⓒ 이혁발
심홍재는 먹 묻힌 발바닥으로 화선지 위를 걸어서 발바닥 흔적을 남겼다. <흔적 20240323>이다.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시각화시킨 것이다. 심홍재는 발자국을 남긴 후 앉아 참선하듯 한참 앉아 있었다. 관객들도 함께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봤을 것이다.
 
▲ 유지환, , 방그레, <그림자 이야기> 유지환, 방그레 두 작가의 합작 행위가 끝난 후
ⓒ 이혁발
 
유지환은 방그레의 몸 그림자를 그렸다. 좌우의 조명에 의해 여러 개의 그림자가 생겼다. 그 그림자 선을 따라 그리고, 그 그림자의 회색 공간에 총천역색 색깔을 칠하고, 문질러 환상적 추상화를 빗어냈다. 온갖 찬란한 색으로 칠해져 있는 우리 삶을 그림자에 투영한 것이다. 이렇게 예술은 우리 삶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 발언, 그 상징과 흔적들
 
▲ 성백 <Messenger_03232024>
ⓒ 성백
성백의 <Messenger_03232024>는 붉은 천이 달린 공에 붉은 물감을 묻혀 벽면을 향해 힘차게 던져 붉은 자국을 남긴다, 그 몇 개의 붉은 점을 연결한 나뭇가지를 그리니 그 붉은 점은 매화가 돼버렸다. 폭력, 전쟁, 상처를 의미하는 붉은 점(덩어리)가 꽃으로 치환된 것이다. 이제 전쟁, 테러는 그만두고 모두가 행복한 꽃 같은 세상으로 가자는 것이다.
 
▲ 김석환 <Win-Win 2401>
ⓒ 이혁발
 
김석환은 모형 기관총 끝에 붓을 달아 그림을 그렸다. 총에서 폭죽이 터지고 불꽃이 튀는 사이에 기관총 탄피가 그림 위로 던져졌다. 그리고 그 기관총 탄피로 "WIN WIN"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세상 여기저기 터지는 전쟁을 멈추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잘 사는, 상생하는 세상으로 가자고 행위미술작품으로 발언하는 작품이다.
윤해경은 나뭇가지로 또 발바닥과 손바닥, 온몸으로 태극 문양을 만들며 <다시 독립>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 윤해경 <다시 독립>
ⓒ 이혁발
 
허공 드로잉, 무소유의 자유로움을 즐기다
미술의 상품성을 거부하며, 탈물질과 무소유의 자유로운 영혼이고자 하는 행위미술가들의 본령을 수행한 작품은 조은성의 <한 곡 드로잉>이다. 한 관객을 불러 노래 한 곡을 선택하게 하고 그 신나는 노래에 맞춰 향 하나를 들고, 춤추며 향 연기로 허공에 드로잉을 했다. 행위의 어떤 물질적 흔적도 남기지 않는 진정한 행위미술이었다. 드로잉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 향은 코 끝에서 살랑거렸다.
  
▲ 조은성, <한 곡 드로잉>  조은성이 관객 한 명과 함께 행위하고 있다. 사진의 중앙 먼 벽면에 성잭의 행위 결과물이 걸려 있다.
ⓒ 이혁발
 
성백이 붉은 점(덩어리)을 생기게 공을 힘차게 던질 때, 그 공에 붙어있는 붉은 띠가 움직이면서 허공 드로잉을 하였다. 변영환이 10원 짜리 동전을 철판으로 된 사각바구니에 넣고 켜 켜듯이 하는 행위는 시청각적 즐거움을 주는 허공 드로잉이었다. 허공 드로잉은 행위미술가들이 아니면 실행하지 못하는 개념이다.

예술은 일상의 신선한 환기이다

행위가 펼쳐진 1관에는 그 행위의 흔적, 즉 드로잉 작품이 바닥에 그대로 있거나 벽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2관에는 현장 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행위미술가들의 드로잉 작품과 현장 참여 작가가 가져온 작품이 함께 걸려 있다.
 
▲ 변영환, <놀아봐> 10원 짜리 동전을 켜 켜듯이 하여 시청각적 감각을 고조시킨다.
ⓒ 이혁발
 
자신의 행위 작업을 할 때 입었던 작업복을 작품으로 걸어놓은 유지환 작품처럼 통상적 시각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품이 여럿 있다. 새로운 감각의 자극을 받고, 일상에 신선한 환기를 가져오고 싶은 이들은 행위의 에너지가 곳곳에 녹아 있는 총 30명의 작품들을 만나보시길 권한다. 80평의 전시공간에 여기 다 소개 못한 작품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4월 14일까지 기린미술관(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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