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덕연 수사 검사 "영화 '작전'은 옛말, '기업형'으로 진화"[주가조작과의 전쟁]
'기업형' 불공정거래 사건 관련 역대 최다 인원 기소
해외보다 미흡한 수사 인프라 확충 필요
#국내 주가조작 범죄 '사상 최대' 규모. #'꾼'에서 '기업형'으로 진화한 주가조작. #'기업형' 불공정거래 수사 중 최다 인원 기소.
모두 지난해 4월 말 발생한 '라덕연 게이트' 수사에 대한 수식어다. 라덕연 사건은 증권 범죄사로도, 수사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기소 인원 56명. 주가조작 수사 중 최다 인원이다. 7305억원, 시세조종 단일 사건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부당이득액이다. 무엇보다 주가조작 수법이 단순히 조직적인 것을 떠나 '기업형'으로 진화한 점이 눈에 띈다.
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은 수사에 참여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박수(43·사법연수원 39기)·허성호(37·변호사시험 5회) 검사를 직접 만나 중간수사 결과의 의미와 불공정거래 범죄 근절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수사당국의 이야기는 마치 범죄 스릴러 영화를 연상케 했다. 수사 검사들은 주가조작 범죄에 대해 '일벌백계, 패가망신'을 강조했다.
선릉팀·공덕팀 '기업형' 주가조작으로 진화…영화 '작전'은 구식
라덕연 게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주가조작 일당이 '기업형'으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주가조작 범죄자들은 영화 '작전'처럼 사무실을 빌려 짧은 기간 한탕 하는 '꾼'에 불과했다. 박 검사는 "이번 사건의 특징은 단순히 가담자가 많은 게 아니라 기업형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라며 "가담자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다"고 강조했다. 허 검사도 "시세조종 방식에 차이가 있다기보다 구조 자체가 특이하다"고 부연했다. 허 검사는 "시세조종 자금을 모으고, 나중에 수익이 났을 때 정산해가는 방식으로 발전했다"고 짚었다.
박 검사는 라덕연 사건을 '조직적'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잘 알려진 '매매팀', 투자 유치만 하는 '영업팀', 수익을 정산하는 '정산팀', 중요한 투자자를 관리하는 'VIP 관리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핵심은 '이동매매'이다. 이상 거래를 감시하는 한국거래소에 들키지 않으려고 투자자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그 휴대전화를 들고 투자자 집과 사무실 근처로 이동하면서 매수 주문을 넣었다.
"기업이 기획팀, 영업팀, 마케팅팀으로 조직화한 것처럼 라덕연 일당은 시세조종 매매를 위해 공덕팀, 선릉팀, 청라팀, 여의도팀이 존재했다. 상부에서 '오늘 이 종목을 해당팀이 매수해야 해'라고 지시하면 이동매매 팀원들은 투자자 집 근처로 가서 매수했다. 당연히 이동매매 팀원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처럼 사무실 하나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투자자가 늘면서 팀이 생기고 조직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박수 검사
박 검사는 "이동매매 수법 때문에 조직원도 많아졌다"며 "투자자 주거지에서 IP가 잡히도록 매매하려면 단순히 가담자 몇 명이 아니라 '매매팀'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 범죄 합동수사부는 라덕연의 범죄를 무겁게 보고 있다. 박 검사는 "라덕연은 투자일임업 등록만 안 했을 뿐 자신은 투자일임업을 했다고 주장한다"며 "조직원들이 모두 역할을 분담해 주가조작 행위를 했기 때문에 죄질이 불량하다"고 꼬집었다.
피해자와 가담자 경계 모호…檢 "김익래 전 회장 수사 진행 중"
라덕연 사건의 또 다른 특징은 피해자와 가담자의 구분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 전 금융당국 조사 과정에서도 이 부분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팀이 기소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담자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묻자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원칙적인 답변을 했다. 허 검사는 "투자자(피해자)와 가담자를 구분할 때는 자본시장법상 공모 관계에 대한 법리, 일반 법리에 따라 시세조종을 인식했는지, 실질적으로 투자자라고 해도 시세조종 행위에 대한 분담이 있었는지 등을 본다"고 부연했다.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증거관리나 법리에 따라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일부 투자 피해자는 라덕연에 대한 '사기' 혐의 기소를 희망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계획을 묻자 박 검사는 "실제 사기로 고소장이 접수되어 있어 이 부분도 검토 하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장대로 투자했어도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사기죄 적용이 어렵다. 물론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것도 수사 중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키움증권과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 등 대한 수사가 늦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선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검사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라덕연에겐 가장 큰 손해를 끼치고 이익을 가져갔다고 보이는 사람이 김 전 회장일 것"이라며 "하지만 검찰은 모두를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를 한다. 지금까지 56명을 기소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덕연 일당이 시세조종한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사건 처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사할 사람과 증거도 많은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라덕연 일당에 의해 주가가 상승한 부분, 그리고 이후 폭락한 부분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주가 상승 과정에서 시세조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수사가 계속 이뤄졌던 것이고, 이후 폭락 부분에 대해서도 사회적 의혹 해소 차원에서 필요한 경우 진행 과정과 법적 문제를 당연히 들여다봐야 한다. 라덕연은 주가 폭락 전과 후를 함께 주장하는데, 지금 재판을 받는 것은 주가를 끌어올리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허성호 검사
허 검사는 자본시장의 존재 목적에 대해 모두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시장과 주식시장에 대해 '투자와 수익'부터 떠올리는 분들이 많지만 본질은 기업의 자금조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식시장의 신뢰가 국가와 경제의 신뢰를 반영하는 지표가 될 수 있는데, 라덕연 사태는 특정 집단에 의해 주가가 좌지우지되면서 '주식 시장의 신뢰지수가 높지 못하다'고 평가할 여지를 줬다"고 설명했다.
불공정거래 범죄 '일벌백계' 강조…수사 인프라 확충·신속한 재판 필요
최근 불공정거래 수법의 현대화·지능화는 검찰의 새로운 해결 과제다. 앞서 검찰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 범죄 합동수사부를 지난해 5월 정식 부활시켰다. 그해 7월 신설된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은 코인 유통 활성화에 따른 신종 범죄를 전담한다.
허 검사는 "라덕연 사태 외에도 영풍제지 사태, 5개 종목 하한가 사태 등도 합수부 체제에서 같이 진행됐다"며 "실제로 재출범 이후 기소 건과 추징보전액이 늘었다. 디스커버리 펀드, 라임 펀드 사태 등 과거에 마무리되지 못한 금융·증권 범죄도 합수부 체제에서 신속히 정리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빠른 초기대응과 수사역량 투입이 증권·자본시장 범죄 고도화의 해결책이라고 검사들은 입을 모았다. 박 검사는 "아무리 범죄자들이 첨단화된 방법을 써도, 이는 수사팀의 의지와 역량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라덕연 조직도 전화기를 급하게 버리거나 텔레그램 이용내역을 폭파하려다 워낙 급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화기를 흘렸다"고 전했다.
허 검사는 "결국 현장성 있는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바로 사건을 해결해야 주식시장에 미치는 혼란도 줄고, 매각 및 처분으로 범죄수익이 현실화하는 것도 빨리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검사는 "지난해 영풍제지 사건도 금융감독원과 사전에 긴밀히 협조해 주식 거래정지 조처가 내려지면서, 관련 일당의 추가 수익 실현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 개정도 불공정거래의 엄벌 기조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올해 1월19일부터 시행된 개정 자본시장법과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내부자거래, 시세조종, 부정거래행위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행위에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부당이득이 없거나 산정이 어려우면 40억원까지 가능하다. 개정안 이전엔 '유죄가 확정돼도 범죄수익이 크면 이익'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박 검사는 "처벌을 강화하고 그 부당이득을 철저하게 박탈해야 범죄 예방효과도 극대화될 수 있다"며 "불공정거래 행위가 절대 남는 장사가 아니며, 정말 '많이 많이 많이 밑지는 장사'라고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검사도 "다른 강력범죄와 달리 자본시장 범죄는 '계획적'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손익 계산을 할 때 범행으로 인한 이익보다 처벌로 인한 손실이 커야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므로, 엄벌이 예방의 최선이라는 기조에 동의한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이원석 검찰총장은 사상 처음으로 거래소를 방문해 불공정거래 사범에 대한 패가망신과 일벌백계를 강조한 바 있다.
신속한 재판 절차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박 검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재판을 지연시키려고 하는데, 1심 구속 기간은 6개월이다. 범죄 규모가 커지고 수법이 복잡화돼서 재판이 6개월 만에 끝나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다"며 "재판 결과가 한참 뒤에 나오면 처음 사건이 이슈화가 됐을 때보다는 아무래도 처벌 수위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사이 증인이나 증거가 희석되기도 한다"며 "수사도 물론이지만, 재판도 신속하게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편집자주 - 주가조작 관련 범죄 중 역대 가장 큰 규모(부당이득 합계 7305억원)의 '라덕연 게이트'가 발생한 지 1년(2023년 4월24일)이 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 시장에 실효성 있는 피해자 방안은 없습니다. 소송밖에는 답이 없으나 비용 부담과 피해입증 어려움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라덕연 게이트'로 형사처벌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실효성 높은 금전적 제재를 도입한 자본시장법 개정은 의미가 크지만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서 증가하는 증권 범죄를 근절하려면 이를 효율적으로 적발·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속·엄정한 제재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경제 증권자본시장부 특별취재팀은 해외 자본시장 선진국의 제도를 살펴보고, 증권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시장의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봅니다. 또한 지능적·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만큼 투자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시세조종, 보고의무 위반 등 각종 불공정 거래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할 예정입니다. 자본 시장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lsa@asiae.co.kr)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황윤주 차민영 김대현 기자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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