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충돌 직전 “메이데이”…경찰, 차량 통제해 큰 참사 막아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1시간여를 달려 볼티모어에 들어서자 저 멀리 내려앉은 다리의 참담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너진 철근 밑에 깔린 컨테이너선 달리도 초유의 교량 충돌 사고 직후 모습 그대로였다. 사고 현장으로 가는 진입로는 통제돼 있었다. 여러 번의 검문을 거쳐 접근한 2.6㎞ 길이의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는 처참하게 구겨진 채 무너져 있었다.
초유의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달려온 수백 명의 취재진 앞에 선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는 실종자 6명을 여전히 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고 당시 다리 위에서 도로 보수를 하던 근로자들이었다. 총 8명의 작업자 중 2명만 구조된 상태다. 실종자들은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멕시코 등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다. 섭씨 9도에 불과한 수온을 고려하면 실종자들의 생존 확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무어 주지사는 “경찰이 다리로 진입하려는 차를 막았다. 생명을 구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선원들이 메릴랜드 교통부에 ‘배를 통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고 당국이 출동 전에 (교량) 출입을 차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 컨테이너선은 충돌 당시 동력을 상실하고 조종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선원들은 무전으로 조난 신호 ‘메이데이’를 보내면서 충돌에 대비해 차량의 교량 통행을 통제할 것을 요청했다. 선박은 이와 함께 닻을 내리는 비상 조치도 취했다. 경찰은 선박의 충돌 경고에 따라 교량 양 끝을 통제했다.
경찰 무전에 따르면 이 가운데 경찰 한 명이 다리 중간 지점에서 작업 중인 인부들에게 대피할 것을 경고하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하겠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러나 이 경찰관은 수초 뒤 무전으로 “전체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다리 전체가 붕괴했다”고 다급하게 외쳤다. 당시 다리 위에는 포트홀(도로 파임) 작업을 위해 8명의 인부가 있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작업용 무전에서 누군가가 ‘선박이 통제를 상실해서 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인부를 대상으로 한 후속 대피 명령은 없었다. 30초 뒤에 다리는 붕괴했고 무전은 조용해졌다.
선박 전문가들은 달리호가 충돌 직전 급하게 우회를 시도한 것과 관련해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를 근거로 사고 원인을 엔진이나 조향장치의 고장 또는 정전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이가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달리호가 지난해 6월 칠레 산안토니오 항구에서 실시한 검사에서 ‘추진 및 보조 기계’와 관련된 시스템 결함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엔진 작동 및 운항과 관련된 부분이다.
미국토목학회 구조공학연구소 회장인 제롬 하자르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미국 전역에는 붕괴된 다리와 같은 방식인 철골 트러스 다리가 많다”며 “교각 사이가 넓은 구조의 다리에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충돌할 경우 과도한 압력이 가해져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이후 가동을 중단한 볼티모어항이 지난해 처리한 국제 화물은 총 5200만t으로, 미국 전체 항구 중 9번째로 많다. 특히 미국 내 자동차 하역량이 가장 많아(지난해 84만7000대) 자동차 공급에 차질을 빚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볼티모어항을 이용하는 자동차 업체는 닛산·도요타·제너럴모터스(GM)·볼보·재규어랜드로버·폭스바겐 등이다. 한국의 현대·기아차는 볼티모어항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볼티모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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