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가 신약 개발 효과 누릴 때…5대 제약사 중 녹십자만 웃지 못했다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3. 2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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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위 제약사들이 한껏 웃었다. 유한양행, 종근당,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 5대 제약사 중 4곳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런데 단 한 곳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GC녹십자다. 전통 제약사 ‘빅4’가 신약 개발 효과를 누릴 때, 녹십자는 믿었던 백신에서 뒤통수를 맞았다. 매출 2위 자리도 종근당에 내줬다. 녹십자는 지난해 말 조직 10% 통폐합이라는 전례 없는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실적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오너 3세로 지휘봉을 잡은 지 10년 차에 접어든 허은철 녹십자 사장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국내 상위 제약사들이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GC녹십자만 5대 증권사 중 유일하게 실적이 하락했다. 사진은 GC녹십자 본사와 허은철 사장. (녹십자 제공)
경쟁사 역대 최고치 기록

녹십자만 ‘나 홀로’ 역성장

녹십자 입장에서는 경쟁사 실적에 배가 아플 만하다. 4개사 모두 역대 최대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8590억원을 기록했다. 2013년 이후 10년째 제약사 매출 1위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1425억원으로 전년 대비 57.4% 늘었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8년 존슨앤드존슨(J&J)에 렉라자를 12억5500만달러 규모로 기술 수출했다.

종근당은 지난해 매출 1조6694억원, 영업이익 2466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12%, 124% 증가한 수치로 창사 이래 최고다. 매출은 사상 처음 GC녹십자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5대 제약사 중 1위다. 신약이 효자였다. 지난해 11월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신약 후보물질인 ‘CKD-510’의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이전하며 총 13억500만달러(약 1조7302억원) 계약을 체결했다. 선급금으로 8000만달러(약 1061억원)를 수령했고 실적에 반영됐다.

OCI와의 합병으로 시끄러운 한미약품 역시 실적은 A학점이다. 매출 1조4909억원, 영업이익 2207억원을 거뒀다. 미국 제약사 MSD에 기술 수출한 MASH(대사 질환 관련 지방간염) 치료제 ‘에피노페그듀타이드’의 임상 2b상 진입으로 기술료(197억원)가 유입됐다. 여기에 자체 개발한 개량·복합신약의 성장세가 실적을 이끌었다.

대웅제약은 위식도 역류 질환 신약 ‘펙수클루’, 당뇨병 신약 ‘엔블로’ 등 전문의약품이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매출 1조3753억원, 영업이익 1226억원이다. 지난해 체결한 기술 수출 계약 규모는 1조3600억원에 달한다.

백신 안 팔리고 SK에 밀려

‘효자’ 헌터라제 매출 ‘뚝’

함박웃음을 짓는 4개사와 달리 GC녹십자는 유일하게 실적이 떨어졌다. 지난해 매출액 1조62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 가까이 줄었다. 한때 영업이익이 1000억원에 육박했으나 지난해 344억원으로 전년보다 57% 넘게 감소했다. 2019년(영업이익 417억원) 이래 영업이익이 500억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4년 만이다.

주가도 무너졌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2월 53만8000원을 찍었던 GC녹십자 주가는 지난해 10월 20일 9만3000원으로 만 3년 만에 6분의 1토막이 됐다. 최근 주가 역시 12만원대로 최고치에 한참 못 미친다.

GC녹십자의 실적 부진은 지난해 초부터 예견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독감 백신의 내수 감소가 실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5월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3년 4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엔데믹을 선언했다. 백신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며 백신 접종에 대한 피로도가 점차 높아졌고 민감도는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백신 시장에서 경쟁사에도 밀렸다. GC녹십자는 2023~2024년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입찰에서 점유율 15.5%를 기록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21.6%), 사노피(17.8%), 한국백신(15.6%)에 이어 네 번째로 뒤처졌다. 특히 자체 개발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를 내놓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에 크게 밀리는 모양새다.

GC녹십자는 민간 부문에서 실적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이마저 쉽지 않을 듯 보인다. 최근 민간 시장 내 독감 백신 물량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GC녹십자보다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이 유리하다는 평이 나온다. GC녹십자 독감 백신은 유정란 배양 방식(유정란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배양하는 방식)이다. 세포 배양 방식(동물 세포를 활용해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방식)의 SK바이오사이언스 독감 백신보다 생산 기간이 길어 대유행 등에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고 알려졌다.

또한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의 해외 매출 감소 영향이 컸다. 헌터증후군은 ‘2형 뮤코다당증’으로 불리며 남아 10만~15만명 중 1명 비율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으로 골격 이상, 지능 저하 등 예측하기 힘든 각종 증상을 보이다 심할 경우 15세 전후에 조기 사망하는 유전병이다.

헌터라제는 전 세계 시장에서 단 2종밖에 없는 헌터증후군 치료제다. 연 투약 비용이 3억원을 넘을 정도로 약가가 비싸다. 러시아, 이집트, 튀르키예, 브라질, 일본 등 해외에서 판매 중이다. 헌터증후군 치료제 세계 시장 규모는 1조원대로 파악된다. 헌터라제는 마진율이 높은 상품인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판매가 부진하며 GC녹십자 실적에 악영향을 끼쳤다.

일각에서는 R&D 파이프라인을 보면 GC녹십자를 구할 구세주가 엿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올해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한 산필리포 타입A(MPSIIIA) 치료제 ‘GC1130A’와 파브리병 치료제 ‘LA-GLA’가 그나마 연구가 진전된 후보물질이다. 다만 통상 전임상 단계의 후보물질이 최종적으로 상용화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뿐 아니라 성공 확률도 낮아 갈 길이 멀다.

혈액제제 ‘알리글로’ 기대

2028년 매출 3억달러 목표

GC녹십자의 타개책은 ‘혈액제제’다. 혈액제제는 백신과 함께 GC녹십자 매출을 이끄는 두 축 중 하나다. GC녹십자는 지난해 12월 알리글로(액상형 면역글로불린제제)의 미국 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았다. 알리글로는 국산 혈액제제로는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입했다. 미국은 알리글로의 적응증인 1차성 면역결핍 질환의 최대 시장으로 시장 규모는 13조원에 달한다.

회사는 올해 하반기를 알리글로 미국 출시 시기로 정했다. 연간 매출 목표는 5000만달러(약 660억원)로 녹십자 혈액제제 연간 매출의 7분의 1이다. 수익성도 잡는다는 계획이다. 녹십자는 고가의 특수의약품을 취급하는 전문 약국을 주요 공급 채널로 정하고 높은 약가 취득을 통한 고마진 전략을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녹십자 측은 “알리글로는 연평균 50% 성장률로 오는 2028년까지 매출 3억달러 창출이 목표”라며 “하반기 알리글로 미국 시장 진출 등 신규 사업 확대를 통해 매출 한 자릿수 중반대 성장과 수익성 제고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MO 사업도 커졌다. GC녹십자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춰 CMO 사업에 뛰어들었다. 충북 오창에 백신,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항체 의약품, 메신저리보핵산(mRNA) 의약품 등을 생산할 수 있는 통합완제관을 갖췄다. GC녹십자에 따르면 충북 오창 공장의 생산능력은 10억도즈에 달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2호 (2024.03.27~2024.04.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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