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유학길이 30년으로… 나윤선 “30년쯤 하니 존재 이유 알겠더라”

정진영 2024. 3. 2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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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의 뱅앤올룹슨 매장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나승열 제공


맑고 청아한 칼림바(아프리카 민속악기) 소리와 그의 목소리만으로 넓은 공간이 꽉 찼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지난 1월 발매한 정규 12집 ‘엘르’에 첫 번째 트랙으로 실린 ‘필링 굿’을 부르던 순간이다. 칼림바 소리 위에 목소리를 얹기도 하고,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나윤선을 보고 있자니 목소리가 또 하나의 악기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다.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처음 무대에 섰던 나윤선은 올해로 데뷔 30년차 뮤지션이 됐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의 뱅앤올룹슨 매장에서 만난 나윤선은 “‘지하철 1호선’을 하면서 노래를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김민기 선생님은 제 평생의 은인”이라며 “뭘 하면서 먹고 살까 고민하는 상태로 유학을 갔다. 3년 만에 돌아올 줄 알았는데 30년이 됐다”고 말하며 웃었다.

나윤선은 친구가 보낸 데모 테이프가 김민기 학전 대표의 눈에 들어 무대에 선 일을 계기로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재즈 보컬로 무대에 올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한국 재즈 보컬리스트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 훈장인 슈발리에(2009년)와 오피시에(2019년)를 모두 받았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의 뱅앤올룹슨 매장에서 '필링 굿'을 부르고 있다. 나승열 제공


그렇지만 ‘나윤선의 음악’을 스스로 받아들인 건 10여 년밖에 안 됐다. 나윤선은 “늘 스스로 만족을 못하고 ‘더 잘해야 되는데’ 하는 생각에 갇혀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며 “30년쯤 되니 내가 왜 태어났는지 존재 이유를 알게 됐다. 음악에만 전념해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인지 나윤선은 2~3년에 한 번은 꼭 앨범을 낸다. 그에겐 공연이 일상이라, 그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새 음반을 계속해서 만든다고 했다. 그 가운데서 ‘변화’는 나윤선의 음악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나윤선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사랑의 블랙홀’이다. 똑같은 날이지만 주인공에겐 매일이 다르지 않나”라며 “저도 같은 공연이지만 계속 달라지고, 그 순간만이 주는 기쁨이 있다. 그게 딱 한 번이라, 그때만 가능해서 좋다”고 말했다.

이처럼 같은 곡으로 다른 무대를 꾸며내는 건 기본이고, 앨범을 구성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보 직전에 발매했던 ‘웨이킹 월드’(2022)는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웠던 반면, 신보 ‘엘르’는 전곡을 다른 여성 가수의 곡으로 채웠다. 프랑스어로 ‘그녀들’을 의미하는 이번 앨범엔 니나 시몬, 비요크 등 그의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여성 음악가들의 노래를 재해석해 담았다. 그는 “내 음악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들에 대한 헌정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의 뱅앤올룹슨 매장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나승열 제공


“니나 시몬이나 비요크는 두 음만 들어도 누군지 알잖아요. 이렇게 되는 건 힘들겠지만, 제 목소리를 1분 듣고서라도 알 수 있게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목소리로 기억되고 싶다는 나윤선은 우리말로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저희 아버지는 우리말 합창을 위해서 합창곡 레퍼토리 개발에 평생을 바치셨는데 저는 계속 다른 나라 말로 노래를 하고 있다”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말로 같이 소통할 수 있는 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윤선의 아버지는 지난 2일 별세한 ‘한국 합창계의 대부’ 나영수 한양대 성악과 명예교수다.

나윤선은 다음 달 1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엘르’를 연다. 국내외에서 매년 100회에 이르는 무대에 오르는 그지만, 여전히 즐겁다고 했다. “전 음악만 했지만, 그동안 지루할 새가 없었고 앞으로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아직도 너무 많아요.”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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