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추천 영상에 홀린 인간, AI에 자유를 넘겼다" 철학자의 일침 [인간다움을 묻다③]
AI·기계 과도한 의존, 인간다움 위협
인문학·토론식 교육, 확증편향 예방
지난해 11월말 출간된 철학서『인간다움』(21세기북스)은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65)의 40년 철학 인생을 담은 책이다.
그는 오랜 기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자문했고 이 책에 그 답을 정리했다. 책은 이성과 철학의 역사를 짚으며 ‘인간답다’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지, 인간다움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신해 모든 선택을 내리는 미래,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결합할 때 나타나는 딜레마 등에 대한 우려도 담겼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A :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3요소는 공감, 이성, 자유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공감이다. 그런데 공감은 가까운 사람에게는 강하게, 먼 사람에게는 약하게 작용한다는 약점이 있다. 멀리 떨어진 사람의 아픔에는 덜 공감하는 것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성이다. 내 가족, 내 친구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일반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세뇌나 강요가 아닌 자유 의지에 의해 일어나야 한다.
Q : 인간다움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A :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과 기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자유 의지, 즉 주체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지금은 '선택의 외주화'가 일어나고 있다.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추천한 드라마, 멜론 등의 음원플랫폼이 추천한 음악, 유튜브가 추천한 영상만 소비하는 거다.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인류 역사 전체를 보면 인간이 자유롭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권위주의를 겪었고 비싼 대가를 치르며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는 자유를 다시 기계에 넘겨주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Q :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A : '대체'보다 '개편'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19세기 초반 방직기가 발명되자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한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다. 그때 많은 직업이 사라졌지만, 기계를 다루고 관리하는 직종은 세분화하며 늘었다. 산업 발전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사라지는 직업만큼 새 직업이 생길 것이다. 오래된 직업 중에서 끝내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도 있다. 간호사 같은 직업이 그렇다.
Q : 고용 시장이 개편되는 과정에서 인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A : 우리가 지능 내지는 능력이라고 여긴 것들을 재정의해야 한다. 답을 내놓는 것은 기계의 몫이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어떤 뚜렷한 과제가 있을 때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던질 것인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는 인간의 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본다. 이걸 잘 해내는 것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사회는 복잡해지고 욕구는 다양해지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갈등이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그걸 조정하는 능력도 중요해진다.
Q :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인간다움의 요소인 '공감' 능력이 퇴화할까.
A : 이제는 전화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대화하지 않아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각종 앱을 통해 얼마든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문자 관계' 안에 갇히기 쉽다. '문자 관계'는 기능적으로 편리하지만 정서적인 교류를 차단한다. 인간은 서로의 감정을 읽어내는 방법을 배우며 진화했다. 표정, 제스처, 어조와 같은 단서를 통해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은 진화와 학습의 결과인데, 지금은 그런 학습의 기회가 크게 줄었다. 사이버불링(인터넷 상의 집단 괴롭힘)의 증가도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늘면서 다른 사람의 정서를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 데 따른 결과라고 본다.
Q : 인문학 교육이 도움이 될까.
A :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이라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간다움의 요소인 공감과 이성도 철학과 역사, 문학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인간다움에 대한 위협이 커질수록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도 커질 것이다.
Q :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면.
A : 토론식 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 이견을 조율하고 타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의식적으로 이런 훈련을 하지 않으면 자신만의 알고리즘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다. 대면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일수록 그렇게 될 위험이 크다. 영원히 확증 편향에 갇힌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 교육도 중요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길이 맞는지 묻는 과정은 꼭 필요한데 한국 사회는 이런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맹목적인 경쟁 사회다.
Q :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라는 말이 심각하게 들린다.
A :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생산성 만을 좇으며 살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제는 길을 찾을 때다. 그래야만 인공지능을 어디까지 발전시키고 규제할 것인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답을 내릴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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