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精談] 다소 불편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2024. 3. 2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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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소설가

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좋아하는 방식을 소소하게
지키는 데 있지 않을까

지난 회에 두꺼운 소설을 읽으면 삶이 얼마나 윤택해지는지 썼다. 그럼, 내 삶은 풍요롭고 흥밋거리로 넘쳐나느냐고? 그럴 리가. 나 역시 그리 되길 바라며 고군분투할 뿐이다. 두꺼운 소설에는 긴 서사에 필요한 세세한 정보가 많다. 이를 볼 때마다 쌍수를 들며 반기는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작가로서나 독자로서나 매우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대문호가 고심 끝에 결정한 수사와 복선에 무심하게도 눈이 스르르 감겨버리곤 한다. 또 잠시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려다 그 안의 광대한 정보의 바다에 익사해 독서로 귀환하지 못한 일 역시 허다하다.

그럼, 매번 수마(睡魔)에 굴복하고 딴짓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느냐고? 그럴 리가. 명색이 글밥으로 먹고사는 자인데, 생 딴전만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도저히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지하철을 탄다. 여기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꽤 고루한 면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지하철 탑승 문화에 관해서는 약 30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지하철을 매일 탈 필요가 사라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버스로 통근했고 작가가 되니 대부분의 일은 집 근처에서 처리하게 돼 버렸다. 그러니, 지하철을 왕성하게 타던 시기는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이전이었다.

그때는 모두 한 손에 일간지나 스포츠 신문, 잡지나 책을 쥐고 탑승했고 이도 아니면 무가지라도 찾아봤다. 그마저 없으면 옆자리 승객이 넘기는 신문 속에 복권 당첨 번호가 예고라도 돼 있는 듯 애써 무심한 척 눈동자를 흘긋거렸다.

그리하여 독서에 집중할 수 없는 시기가 오면 소설 한 권을 쥐고 지하철을 타는 것이다. 이럴 때는 오전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원고를 쓰고 점심까지 먹고 난 후다. 그러면 가벼운 기분으로 소화도 할 겸 좋아하는 소설 한 권을 들고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마침 독서의 신이 긍휼히 여겨줬는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지하철을 타면 어렵지 않게 자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예전의 학창 시절로 잠시 돌아가 책장을 펼친다.

객차 안에는 적당한 소음이 독서의 배경음으로 깔리고 적당한 진동이 알맞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책에 빠져들기 좋다. 아울러 나라는 개인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지만 지하철에서는 몸을 숙이고 독서할 때 집중이 더 잘 된다.

한데, 이 자세의 독서는 뱃살이 찌면 곤란하다. 그렇기에 몸을 숙였을 때 불편하면 ‘아. 이거 좀 더 걸어야겠군’ 하며 운동을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짐을 실천하기 좋게, 40분 정도 ‘지하철 독서’를 하고 나면 어느새 대학 캠퍼스 부근에 다다른다.

6호선에는 고려대가 있고, 2호선에는 한양대가 있어 그곳에 내려서 30분 정도 캠퍼스 안을 산책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이 학교들과 딱히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집에서 출발해, 적당히 책을 읽다 내리기 좋은 거리에 이 학교들이 있을 뿐이다. 독서 후 캠퍼스 산책을 하면 좋은 점은 명백하다.

분주한 오피스타운이나 유흥가를 걸으면 어쩐지 다시 책을 펼칠 기분이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캠퍼스 안에는 학구적인 공기가 떠돈다. 나처럼 책을 펼치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다니기에, 비록 책장은 덮었지만, 영혼은 여전히 소설 속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듯하다. 그런 분위기 속에 걸으며 몸을 다시 책 읽기 좋은 상태(즉, 숙여도 불편하지 않은 상태)로 만든다.

오후 3시 반쯤 이런 식으로, 두 시간 남짓 취미생활을 한다. 누군가는 따질 수 있다. 차라리 집에서 각성하고 독서에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으냐고. 맞다.

한데, 그 질문에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다소 불편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아하는 방식을 소소하게 지키는 데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최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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