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와 집을 드립니다'... 시골 학교 살린 놀라운 방법

윤찬영 2024. 3. 2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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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이] <시골을 살리는 작은 학교> 에서 배우는 '기적의 원리'

영화나 책, 인물,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합니다. <편집자말>

[윤찬영 기자]

우리 국토 면적의 73%를 차지하는 1182개의 면 지역엔 초등학교가 몇 개나 있을까. 면마다 3개씩만 잡아도 족히 3000개는 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에 한참 못 미치는 1552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넓은 면 지역마다 초등학교가 겨우 한 개(1.3개)씩 있는 셈이다. 이마저도 벌써 6년 전인 2018년 통계다.

1970년 이후 5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문을 닫은 초·중·고등학교가 4000개에 달한다. 마을에 있던 초등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들은 날마다 차를 타고 한참을 오가거나 학교가 있는 도시로 떠나게 된다. 그러니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오래 갈 수 없다.

서하면에 남은 마지막 초등학교, 서하초
 
 서하초등학교의 모습
ⓒ 국토교통부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17개 마을에 1500명이 사는 이곳에도 초등학교라곤 송계마을의 서하초등학교뿐이다. 이웃 은행마을과 본정마을에도 초등학교가 하나씩 있었지만 아이들이 줄면서 두 학교 모두 분교를 거쳐 1995년과 1999년에 잇따라 문을 닫았다.

본정분교가 문을 닫은 지 20년이 지난 2019년 말, 서하초등학교는 6학년 학생 4명이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듬해 입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남아있는 학생은 10명, 만약 1명이라도 전학을 가게 되면 분교로 바뀔 처지였다. 하지만 다행히 서하초등학교는 이웃 초등학교들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시골을 살리는 작은 학교>(2023)에는 그 동화 같은 4년 동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하초의 기적'이라고도 부르는 이 일을 이끈 건 신귀자 서하초등학교 교장과 장원 농촌유토피아연구소 소장이다. 함양에서 나고 자란 신 교장은 1983년 지금은 문을 닫은 서하면 운정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고향에서 교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던 그는 2015년 9월 서하초 '작은 학교 살리기' 공모제 교장에 자원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4년이었다.

그는 서하초를 살려보려고 교과과정을 바꾸고 학생 맞춤형으로 학교 분위기를 바꾸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2년 만인 2017년, 서하초등학교는 전국에서 15개 학교만 뽑는 '교육과정 우수 학교'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다시 2년 뒤인 2019년 학생 수는 처음보다 더 줄어 있었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작은 학교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제 임기가 만료되었다고 그냥 나갈 수는 없었어요... 어떻게든 그것(분교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 신귀자 교장 (36-37쪽)

서하초의 기적을 일군 사람들
 
 책 <시골을 살리는 작은 학교>
ⓒ 남해의 봄날
 
마침 서하초가 '광역통학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학생 수가 100명에 달하는 이웃 안의면의 안의초등학교 아이들도 서하초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신 교장은 이 기회를 활용해 관내 귀촌·귀농 학부모들에게 설명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판을 키운 건 장원 소장이었다. 10여 년 전 귀촌한 농촌 활동가인 장 소장은 학부모들에게 일자리와 집을 제공할 수 있다면 서울에서도 오려는 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함양군 내에서 설명회를 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역 학교끼리 제로섬 게임이 될 뿐이니까요... 할 거면 전국을 대상으로 학교 살리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하와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귀농·귀촌을 꿈꾸는 도시 학부모들의 이목을 충분히 끌 수 있을 거라 확신했어요." - 장원 소장 (40쪽)

둘은 함께 할 관계자들부터 모았다. 이주 가족들이 살 집과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함양군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둘은 서하초 교직원과 학부모는 물론, 총동창회, 서하면 향우회, 함양교육지원청, 함양군청, 함양군의회, 교육장, 군수, 군의원, 면장 등 닥치는 대로 만나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처음에는 모두 믿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국가나 지자체에서도 못하는데, 대체 일자리와 집을 어떻게 준다는 거야'라는 반응이 많았죠." - 장원 소장 (55쪽)

2019년 11월 27일 마침내 서하초에서 첫 모임이 열렸다. 다행히 긴 논의 끝에 그날 '학생모심위원회'가 꾸려졌고, 12월 19일 전국 설명회를 열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제 남은 일은 살 집과 일자리를 구하는 것. 학교 교직원들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빈집을 찾았고, 마을 주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게 비어있던 마을회관을 비롯한 전셋집 7채를 마련할 수 있었고, 1년에 200만 원 정도만 내면 살 수 있도록 했다.

일자리를 찾는 일은 군청이 맡았다. 마침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전기차 생산업체 에디슨모터스가 이주 학부모들을 우선 채용하겠다며 나섰다. 한두 주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직에 월 250만 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학교에선 학생을 위한 혁신적 교육 프로그램과 여건을 마련했다. 주 1회 영어 특성화 방과후 수업, 원어민 영어 교육, 전교생 해외 어학연수, 전교생 장학금 제공 등이 그것이다. 필요한 돈은 학생모심위원회가 모으기로 했다. 목표는 1억 원. 장 소장이 먼저 마중물로 열 달 동안 100만 원씩을 내기로 하자 지역민은 물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졸업생들도 힘을 보탰다.

"농협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차곡차곡 펴서 ATM기에 넣으시더라구요. "할아버지 뭐 하세요"하고 여쭤봤더니, 서하초 기금을 넣는다고 하시더군요. 이 학교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 이주 학부모 승우 씨 (104쪽)

그해 12월 19일 설명회 소식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설명회에는 200여 명이 참석했고, 거의 모든 중앙 언론사가 취재를 왔다. 그러자 설명회가 끝난 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이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신 교장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신청자가 너무 몰리는 바람에 75가구를 끝으로 모집을 중단해야 했다. 

미리 마련해 둔 기준에 따라 일곱 가구가 뽑혔고, 학교엔 17명의 새 아이들이 생기면서 학생 수가 27명으로 늘었다. 학교가 살아나면서 문을 닫았던 마트가 다시 문을 여는 등 마을도 되살아났다.

"아이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죠. 마을 사람과 새로 생긴 카페에서 만나서 수다도 떨어요. 여러모로 학교가 살아나면서 저도, 마을도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이 학생들이 커서도 여기서 보낸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면 더할 나위 없겠죠." - 유태성 이장 (73쪽)

서하초 모델은 오래갈 수 있을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많은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장 소장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찾아가 더 많은 이주민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지어달라고 했고, LH가 이를 받아들였다. LH는 2020년 3월 '농촌 활성화 사업 모델 TF'를 꾸려 이 일에 뛰어들었고, 두 달 뒤 민간건설업자가 지은 주택을 매입해 임대·운영하는 방식으로 서하초 건너편에 12채의 단지형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함양군도 비용의 15%를 대기로 했다. 월 임대료는 56~82제곱미터 기준으로 15~20만 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최대 20년 동안 살 수 있도록 했다.

사업을 책임졌던 정승태 LH 경남지역본부 부장은 "신속한 의사 결정과 지자체의 지원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라면서 조직마다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해 나가는 '키 플레이어'(key player)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LH는 이웃 안의면에도 공동 주택 60호를 짓는가 하면, 훗날 서하초를 졸업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마치고도 계속 함양군에 머물 수 있도록 '일자리형 매입 임대주택'도 지을 계획이다.  
 
 서하초 건너편에 LH가 지은 단지형 주택의 모습
ⓒ 함양군
 
함양군과 LH는 그 뒤로도 지역 맞춤형 농촌 재생 모델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마을 주민과 입주민의 사랑방이 되어 줄 카페, 귀촌 청년을 위한 스마트팜과 창업 공간 플랫폼 '서하다움' 그리고 어린이도서관을 마련했다. 이주민들은 공동 텃밭을 가꾸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준비하기도 한다. 가끔 열리는 마을 장터에선 이주민과 원주민이 함께 어우러진다.

그렇다면 서하초 모델은 오래 갈 수 있을까, 또 다른 시골 학교들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전국 설명회를 거쳐 2020년에 처음 새 식구를 받은 지 3년이 지난 2023년 기준으로 서하초에는 모두 24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1학년 새내기도 2명이 있고, 내년에 1학년이 될 유치원생도 7명이나 된다. LH는 함양군을 '농촌 유토피아 시범 사업 1호 대상지'로 선정하고, 서하초 모델을 주변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경남도와 '경남 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 추진 협약도 맺었다.

이 책을 쓴 김지원 작가는 "시골의 모든 학교가 서하초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합계출산율이 해마다 가파르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걸 막을 도리가 없는 데다, 작은 학교일수록 학생 한 명당 들어가는 교육비가 너무 많다는 게 그 이유다.

유정석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도 "(서하초 모델이) 취지는 좋지만, 당장 폐교를 모면하는 임시방편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입된 인구를 오래도록 머물게 하려면 수도권보다 살기 좋다고 느낄 만큼 다양한 생활 제반 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것.

저자와 유 교수의 말처럼 서하초가 언제까지 학생 수를 이만큼 유지할 수 있을지, 또 서하초 모델이 다른 지역에서도 똑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수년간의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난 3년 사이 학교와 마을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고, 아이들에겐 이곳 송계마을 서하초등학교에서 보낸 시절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없어선 안 될 밑거름이 되어줄 테니 말이다.

시골의 모든 학교가 서하초가 될 수도 없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서하초가 서하초만의 길을 찾아낸 것처럼 다른 학교와 마을도 각자의 길을 찾아야 한다. 신귀자 교장과 장원 소장도 서하초에 어울리는 해법을 찾으려 애를 썼을 뿐 모든 시골 학교에 적용 가능한 보편타당한 해법을 찾으려 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건 서하초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신 교장과 장 소장을 비롯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보여준 태도와 마음가짐 그리고 일하는 방식일 뿐, 그대로 베껴 옮겨심으려 해선 안 된다.

"처음 서하초에서 이런 것들을 해 볼 거라고 주변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어요. 모두가 말리더라고요. 그거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그냥 조용히 있다가 은퇴하지,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냐... 그래도 상관하지 않았어요." - 신귀자 교장 (44쪽)

"관이나 학교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시작하면 계획이 틀어지고 실패하죠. 저는 이런 사례를 수도 없이 많이 봐 왔어요... 이런 일에서 중요한 건 민간의 의지예요. 자발적인 의지로 시작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 장원 소장 (58쪽)

'일 잘하는 지역 일꾼'을 뽑는다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갈수록 큰 담론들에 묻혀 지역 의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우리 마을에 돈 잘 끌어오는 일꾼도 좋지만, 지금처럼 길이 보이지 않을 땐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길을 찾아갈 일꾼이 절실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민간의 대담한 도전을 믿고 힘을 실어줄 그런 일꾼. 부디 이번 선거엔 그런 지역 일꾼들이 많이 뽑혀 지역마다 크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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