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성공 신화 정면 반박한 문제작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2024. 3.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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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책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부와 불평등에 대해 연구하는 프랑스의 경제학자다. 22세에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MIT 조교수로 임용됐다. 3년 뒤 귀국해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파리경제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피케티가 출간한 ‘21세기 자본’은 영문판으로 50만권 이상이 팔렸다. 하버드대 출판부 101년 역사를 통틀어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현재도 과거에도 부의 분배는 불평등하다.’

토마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이 확대되는 자본주의의 근본 원리, 확대된 불평등의 종착점 그리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부의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19세기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경제학자인 리카도는 경제 발전으로 인해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경우, 식량 소요가 더 늘어나는 반면 농지는 한정돼 있다는 점에 집중했다. 지주들이 떼어가는 지대는 끝없이 오르지만, 실제 생산자들이 가져갈 몫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주들이 걷는 지대에 높은 세금을 매겨서 이들의 부, 그리고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리카도가 걱정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대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극단적으로 치솟지는 않았다. 경제의 중심이 농업에서 산업으로 넘어가며, 농지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공산주의를 주창한 마르크스는 부의 불평등이 산업 시대에 더 심해질 것이라 믿었다. 리카도의 논리에서 농지 대신 공장과 기계 같은 산업자본을 대입했다. 자본가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마르크스는 세상을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이 격차를 더 벌릴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극에 달하면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생산 수단을 힘으로 재분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종말이자 공산주의의 시작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공산주의는 동구권 일부 국가에 국한됐을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몰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산주의가 몰락했고, 자유주의와 결합한 자본주의가 더 널리 채택됐다.

공산주의의 실패 이후 ‘성장’이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1970년대, 급격한 경제적 변화가 자본가 계급의 무한한 자본 축적을 제한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할 통계 자료를 내놓은 학자가 197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다. 쿠즈네츠는 자본가와 노동 계급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반박했다. 자본가 계급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었으며, 성장 과실이 노동자에게 분배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쿠즈네츠는 경제 발전 초기에는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지만, 경제가 점점 성숙할수록 빈부 격차가 줄어든다는 ‘쿠즈네츠 곡선’을 정립했다. 이에 경제 성장이 장기적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것이라는 인식이 힘을 얻었고,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대로 ‘성장이야말로 모든 배를 띄우는 밀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눈부신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부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음이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성장만으로는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쿠즈네츠 곡선’이 등장한 지 반세기가 지난 2013년, 그의 이론에 대한 강력한 반박으로서 피케티가 출간한 책이 ‘21세기 자본’이다.

피케티는 훨씬 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쿠즈네츠와 정반대의 결론에 도출한다. 피케티는 18세기 유럽과 미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와 불평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쿠즈네츠 주장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제는 ‘자본 불평등’…글로벌 자본 소득세만이 답

첫째, 쿠즈네츠 자료는 오직 미국 데이터만을 근거로 했다. 따라서 하나의 이론으로 적립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둘째 쿠즈네츠가 사용한 지니 계수는 ‘소득’의 불평등을 나타내지만, 1인당 국민소득(Income per Capita)에는 자본소득도 포함한다. 따라서 지니 계수만으로는 ‘부’의 불평등 완화를 포착할 순 없다. 경제 성장의 분배 효과도 확인할 수 없다. 피케티는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부의 불평등은 근본적으로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 사이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자본수익률이 높거나, 소득 대비 자본이 차지하는 양이 높을수록 전체 국민소득에서 자본의 몫이 점점 커진다. 이것이 경제 내에서 부의 불평등이 늘어나는 구조다. 더욱이 경제성장률은 인구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의 합이기 때문에 인구가 줄어들수록 경제성장률이 감소해 자본의 몫은 더욱 커진다. 결론적으로, 성장이 정체된 경제 체제 아래에선 지금까지 쌓은 부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소득보다 상속된 부가 더 중요해진다. 피케티는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했는데, 전쟁과 대공황을 제외하면 늘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결국 소득 대비 자본비율을 점점 높임으로써 부의 불평등이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특히 소득 대비 자본비율은 195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50년 유럽의 소득 대비 자본비율은 300% 미만이었던 반면, 현재는 500%를 넘어섰다. 19세기 세습자본주의가 만연하던 유럽은 소득 대비 자본비율이 700%에 가까웠는데, 피케티는 지금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세습자본주의가 다시 나타나 지금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피케티가 제시하는 대응 방안은 무엇인가? 그의 연구 결과에서 중점이 되는 것은 소득 불평등이 아니라 재산 불평등이다. 그리고 이 격차는 점점 심화되며 사회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가고 있다. 따라서 피케티는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하자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세율을 적용받는 누진 소득세처럼 누진 자본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 나라에서 자본세를 도입하면, 부자들은 옆 나라로 재산을 옮기면 그만이라는 것. 그리고 부의 이런 대규모 해외 도피는 해당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힌다. 그렇기에 누진 자본세를 도입하려면 한 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동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내용적으로도 흥미롭지만, 불러일으킨 논쟁들로 더 유명하다. 부의 불평등은 그만큼 열띤 논쟁을 불러오는 주제다. 심지어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출판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는 ‘애프터 피케티’라는 제목으로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에세이 모음이 출판되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제안이 현실적인 논쟁을 촉발하다

대중과 정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그리고 학계에서 격렬한 논쟁을 유발한 만큼 피케티의 주장에는 많은 반박이 달렸다. 그중 가장 강한 비판을 하나만 소개하면 먼저 불평등의 정의에 대한 비판이다. 피케티는 재산 격차를 불평등으로 봤지만, 비판자들은 단순히 재산의 차이가 아니라 계층 이동의 가능성도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격차가 클지라도, 만약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른 사람이 수시로 교체될 수 있다면 이는 기회의 평등을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기회의 평등을 통해 고착화된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강점이라는 논리다.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피케티는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는 “불평등이라는 오래되고 진부해 보이는 주제에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이라는 단순한 지표들을 갖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왔다”고 평가했으며,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논의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중대한 학문적 업적”이라고 치켜세웠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1호 (2024.03.20~2024.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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