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셀프출석' 비난했던 한동훈, 공수처 이종섭 수사엔 이중잣대

법무부 장관 시절엔 '검찰 시간표' 따르라던 한동훈... 송영길도 귀국 후 소환까지 228일 걸려

[김종훈 기자]

▲ 2023년 8월 21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수사는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마음이 다급하시더라도 절차에 따라 수사에 잘 응하면 될 것 같다."

지난해 6월 7일,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셀프 출석'을 시도하자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말이다. 피의자의 사정을 내세우지 말고 검찰의 수사 시간표를 따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종섭 호주대사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상황을 놓고 태도를 바꿨다. 지난 22일 한 위원장은 공수처가 수사 일정상 당분간 이 대사를 조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자 "총선을 앞두고 정치 공작에 가깝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민심에 순응하기 위해 이종섭 대사가 귀국했는데 조금 전 (공수처에서) 조사 준비가 안 됐다고 이야기하더라. 잘 못 본 줄 알았다. 선거 직전에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력하게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은 선거 개입이고 정치질이다."
 

▲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19일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을 나경원, 장진영 후보와 함께 방문해 상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한 위원장을 비롯해 이 대사 측으로부터 연일 소환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공수처는 22일 "해당 사건의 압수물 등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및 자료 분석 작업이 종료되지 않은 점, 참고인 등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위 사건관계인에 대한 소환조사는 당분간 어렵다"면서 "협의 절차를 거쳐 해당 사건관계인에게 소환조사 일시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으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한 수사를 벌이던 당시 검찰도 공수처와 같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민주당 돈봉투 의혹'이 터지자 그달 23일 프랑스에서 급히 자진 귀국한 송 전 대표가 검찰에서 제대로 된 첫 조사를 받은 것은 귀국 후 정확히 228일이 지난해 12월 8일이 되어서다.

그 사이 송 전 대표는 '나를 소환하라'며 검찰에 두 번이나 자진 출석했지만 검찰은 때마다 '사전에 조사 일정이 조율되지 않았다'며 송 전 대표를 청사 로비에서 그냥 돌려보냈다.
  
송영길 소환까지 228일 소요... 공수처 수사는 이제 석 달째
 

▲ '도피 출국' 논란에 휩싸인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지난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해제를 둘러싼 비판 여론이 매우 커지자 윤석열 정부는 '방산협력 주요공관장 회의'라는 명분을 만들어 이 대사를 귀국시켰다.

이 대사는 21일 오전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체류 기간 동안 공수처와 일정이 잘 조율돼 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이 대사 변호인 김재훈 변호사도 '소환조사 촉구서'를 이례적으로 공수처에 제출하면서 "(이 대사는) 공수처에 모든 국내 일정을 공개하고 소환조사를 요청했다"면서 "공수처가 출금을 연장 및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왔고, 충분한 조사 준비기간이 있었으니 이번에는 당연히 공수처가 소환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공수처가 이번 사건 첫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지난 1월이다. 공수처는 현재 사건과 관련해 이 대사의 지시를 받고 이행한 의혹이 있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 관계자들에 대한 압수물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종합하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를 따지기 위해서는 그의 지시를 이행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직접 조사가 끝난 뒤에야 가능하다는 게 공수처의 입장이다. 

송영길 전 대표가 귀국 후 첫 소환조사를 받을 때까지 7개월 이상 소요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대사의 경우 지난 1월부터 강제수사가 들어간 것을 고려하면 이제 두 달 정도 지났을 뿐이다.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있어서는 검찰의 시간표를 따르라고 했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수사의 생리를 잘 알면서도 공수처에 대해서는 피의자의 요구대로 조사를 진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래는 송 전 대표와 이 대사의 수사 일정 관련 타임라인을 정리한 내용이다.

[타임라인] 송영길 전 대표 수사 관련
 

▲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과정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가 2023년 5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자진 출석이 거부되자, 기자들 앞에서 서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2023년]

4.12. 검찰, '돈봉투 사건' 수사 개시... 윤관석, 이성만 등 피의자 압수수색 
4.23. 송영길, 인천공항 통해 파리에서 조기 귀국
4.29. 검찰, 송영길 자택 및 '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 등 압수수색
5.1. 검찰, 송영길 경선 캠프 관계자 추가 압수수색
5.2. 송영길, 서울중앙지검 1차 자진 출석... 조사 무산
5.3. 검찰, 송영길 전 보좌관 박용수 소환조사
5.8. 법원, 강래구 구속영장 발부
5.26. 검찰,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강래구 구속 기소
6.7. 송영길, 서울중앙지검 2차 자진 출석... 조사 또 무산
6.12. 검찰, 송영길 컨실팅 업체 '얌전한고양이' 압수수색
7.3. 법원, 송영길 전 보좌관 박용수 구속영장 발부
7.21. 검찰,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박용수 구속 기소
8.22. 검찰, 정당법 위반 혐의 윤관석 구속 기소
9.27. 검찰, 송영길 주거지 압수수색
10.13. 검찰, 캠프 식비 대납 기업인 소환조사
11.3. 송영길, 검찰수사심의원회 소집신청서 제출
11.20. 검찰시민위원회, 송영길 사건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 기각
12.8. 검찰, 송영길 피의자 시분 소환 조사... 입국 후 228일 만
12.13. 검찰, 송영길 불법 정치자금 수수 및 돈봉투 제공 혐의 구속영장 청구
12.19. 법원, 송영길 구속영장 발부
2024년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송영길 공판 진행 중

[타임라인] 이종섭 대사 수사 관련
  

▲ 2023년 9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3년]
7.19. 해병대 채 상병, 경북 예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활동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
7.31. 이종섭,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 수사단 수사기록 회수 지시
9월 민주당, 이종섭 고발
9.11. 민주당, 이종섭 탄핵 추진 발표
9.12. 이종섭, 사의 표명
10.7. 이종섭, 신원식에게 장관직 이임
12월 법무부, 공수처 요청에 따라 이종섭 출국금지 조치

[2024년]
1월 공수처, 채상병 책임자 수사 과정 외압 의혹 수사
3.4. 윤석열 정부,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3.5. 이종섭, 법무부에 출국금지 이의 신청
3.7. 대통령실, '공수처 수사상황 및 이종섭 출금 관련 인지 못했다'고 발표
같은날. 공수처, 이종섭 4시간 소환조사
3.8. 법무부, 이종섭 출국금지 해제
3.10. 이종섭, 취재진 피해 호주 출국
3.13. 이종섭, 호주 외교부에 신임장 사본 제출
3.15. 민주당, 이종섭 출국 및 부임 관련 윤석열 대통령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 직권남용 및 범인 도피죄 혐의로 공수처 고발
3.17. 한동훈, 이종섭 즉각 귀국 및 공수처 즉각 소환 조사 촉구
3.18. 대통령실, 이종섭 관련 공수처 소환시 즉각 귀국 방침 발표
3.21. 이종섭, 출국 11일 만에 자진 귀국
3.25. 이종섭, 방산협력 공관장회의 참석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