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무기 거래 정황 상세 기술했지만…여전히 결론 못낸 유엔

박현주 2024. 3. 2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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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20일(현지시간) 북·러 간에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무기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을 상세히 기술한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공개했다. 다만 회원국이 제공한 정보에 따라 이러한 의혹을 기술했을 뿐 제재위 차원에서 "제재 위반"이라는 최종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영향력 행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연 모습. 연합뉴스.


거래 정황 상세히 담았지만…


대북제재위는 이날 공개한 615쪽짜리 보고서에 위성사진을 근거로 앙가라호, 마리아호 등 4척의 러시아 선박이 지난해 8월에서 12월 사이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실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두나이항까지 드나드는 정황을 담았다. 이는 지난해 10월 위성 사진을 근거로 한 백악관 설명과 일치한다. 제재위는 "컨테이너 속 내용물은 확인되지 않지만 북한산 포탄의 존재를 인정한 러시아 군 관계자의 소셜 미디어 게시글이 있었다"는 회원국의 전언도 명기했다.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에 첨부된 나진항과 나진역 근처 철도를 구글 어스로 캡처한 장면. 보고서 캡처.
제재위는 이날 보고서에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러 기간 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산 최고급 소총과 우주복 장갑 등을 선물 받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다만 제재위는 이러한 북·러 무기 거래 정황을 보고서에 적시하면서도 "여러 의혹에 대한 러시아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해 10월 중간보고서에서 처음으로 "북한의 무기와 포탄 수출 혐의에 대한 다수의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힌 뒤 관련 정황을 보다 상세하게 기술했지만 여전히 뚜렷한 결론은 내지 못한 셈이다.

제재위는 이스라엘 측이 제기한 북한과 하마스 간 무기 거래에 대한 의혹도 적시했지만 "북한은 근거 없는 루머라는 입장을 밝혔고 팔레스타인에도 서한을 보냈다"고만 언급했다.
지난해 10월 백악관이 공개한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을 제공하는 경로. 해당 경로는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에도 담겼다. 백악관.


여전히 수억 달러 버는 해외노동자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1월 26일까지 조사 결과를 근거로 작성됐으며 총 23개 권고 사항을 담고 있다. 특히 유엔 안보리 결의가 금지한 북한의 해외 노동자를 통한 외화벌이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재위는 "10만여명의 북한 노동자가 40여 개국에서 식당 종업원이나 재봉, 건설, 의료, 정보기술(IT)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며 "국경 재개방 시 대규모 해외노동자 추가 파견이 예상된다"는 한 회원국의 보고 내용도 언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IT 분야 노동자는 연간 약 2억 5000만∼6억 달러, IT 이외 분야 노동자는 연간 약 5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또 중국, 러시아, 라오스 등 5개국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연간 7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정보도 담겼다.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에 포함된 북한이 해외에 운영 중인 식당 중 한 곳에 대한 유튜브 영상 등. 보고서 캡처.


앞서 유엔 안보리는 2017년 채택한 결의 2375호와 2397호를 통해 회원국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게 했고, 자국 내 북한 노동자들을 2019년 12월까지 모두 송환하도록 했다. 북한은 유엔 제재 전에도 노동자 해외 파견을 통해 연간 약 5억 달러의 외화벌이를 하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오히려 제재 이후 규모가 더 늘어난 셈이다.


외화 수익 절반 사이버로 벌어


사이버 공간에서 불법 행위를 통한 수익 창출도 계속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보고서에는 한 회원국이 제공한 정보를 근거로 "북한은 악성 사이버 행위를 통해 총 외화 수익의 50%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자금의 40%를 조달하고 있다"는 지적도 담겼다. 또한 북한의 불법 행위의 주요 사례로 지난해 8~9월 북한의 해킹 조직이 국내 주요 조선사에 공격을 시도한 사건을 기술했다.

한편 제재위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군사정찰위성 발사, 전술핵 공격잠수함 진수 등 안보리 결의 위반을 지속했다"며 북한의 불법 핵·미사일 개발과 사이버 활동 등에 관여한 개인 1명과 단체 6개를 안보리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할 것을 권고했다.

또 제재위는 "북한 지도부가 결의 상 금지돼있는 고급 승용차와 명품 가방 등 사치품을 반입했다는 점이 빈번하게 포착됐으며 제3국을 우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북한 관영 매체는 최근 김정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지난달 선물 받은 '러시아판 롤스로이스'인 아우루스 전용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버젓이 공개했다. 북·러의 선 넘은 밀착을 과시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에 '제재 무용론'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됐다.

제재위는 이번 보고서 작성에 앞서 크리스찬 디올과도 지난해 10~11월 서신을 주고받았다. 지난해 9월 김여정 부부장이 김정은과 함께 러시아 전투기 공장을 찾았을 때 들고 있던 검은색 가방이 7000달러(약 925만원) 상당의 디올 제품으로, 반입 금지 대상인 사치품에 해당한다는 의혹이 일었기 때문이다. 디올 측은 "자사 핸드백 모델(Sac Lady Dior Large cuir de veau cannage ultramatte noir)인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데, (사진만으로는) 진품인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제재위에 답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시의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방문했을때 동행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명품 브랜드 제품으로 추정되는 가방(붉은 원)을 든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제재위 운명도 불투명 지적


한편 일각에선 유엔 대북제재위의 존속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9년 신설된 유엔 안보리는 매년 3월쯤 연장 여부에 대한 표결을 거쳐 결의안을 채택해 임기를 1년 주기로 늘려왔다. 올해의 경우 오는 22일(현지시간)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대북 제재를 둘러싼 러시아·중국과 미국·영국·프랑스의 이견으로 인해 표결이 부결될 경우 제재위의 활동이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NK뉴스는 20일(현지시간) 러시아가 패널 연장에 반대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제재위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끝나면 유엔 제재 이행에 대한 추가적인 유엔 보고도 중단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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