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 칼럼]진융 탄생 100년, 홍콩 독특한 문화 소중히 여겨야
중국에서 ‘무협 판타지의 대가’라고 불리는 진융(金庸·필명)의 최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필자를 포함한 팬들에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초 중국 분위기만 하더라도 무협지는 청소년에게 불건전한 장르로 여겨졌다. 학교에서 진융의 무협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압수당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세간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항상 불법 복제본이 따라다녔다. 필자는 어느 기차역 앞 가판대에서 진융 소설을 처음 접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표지 제목에 해적판(불법 복제물)인 ‘건륭 황제의 비밀 역사’(원작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편집자가 원제보다 더 매력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숙사 불이 꺼진 후 손전등으로 몰래 진융을 읽었던 것이 필자의 사춘기 시절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다. 강호(江湖·무협의 세계)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 역할을 했다.
진융의 소설은 대중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사랑받았고, 결국 공식적인 인정도 받게 된다. 1990년대 후반에는 루쉰(중국 근현대문학의 아버지), 라오서(낙타 상자 저자), 마오둔(중국 현대문학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20세기 최고의 중국 소설가 중 한명으로 꼽히게 된다. 한때 저속하다고 여겨졌던 진융의 소설은 이제 중국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필독서 목록에 포함돼 있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진융은 칭찬과 인정을 받을 자격이 분명 충분하다. 그의 소설은 수많은 드라마 시리즈, 영화, 비디오 게임, 음악으로 승화되며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소오강호(笑傲江湖), 천룡팔부(天龍八部) 등과 같은 걸작은 중국 사대 고전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서유기(西遊記)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독자들에게 있어 진융은 3부작으로 구성된 소설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J.R.R. 톨킨,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 얼음과 불의 노래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명성을 합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진융의 작품은 중국 역사의 변혁적인 순간, 명소, 고대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만큼 본질적으로 중국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일례로 그의 책에 묘사된 무술 동작은 종종 중국 철학과 고전 텍스트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진융 소설은 어느 정도 중국인 정체성의 핵심이자 중국 사회를 하나로 묶는 문화적 힘이 됐다는 평가다. 중국인임에도 진융의 무협 세계를 모른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홍콩도 진융을 자랑스럽다고 할 만한 이유가 있다. 진융은 15편의 무협 소설에서 홍콩을 언급한 적은 없지만, 사실 그의 일생 대부분을 홍콩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홍콩은 무협 문화를 발전시키고 이를 지켜낸 진융과 같은 거장들을 배출하는 데 있어 대체할 수 없는 도시다.
진융은 1940년대 후반 빈손으로 홍콩에 정착했다. 이후 뛰어난 작가이자 신문사를 창간한 언론인이 된다. 만약 그가 소설을 쓰고 출판하던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중국 본토에 머물렀다면 천재성과 창의성은 빛을 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상상력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문화와 상업적 자산으로 만든 홍콩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없었다면 그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작았을 것이다.
홍콩은 앞으로도 독립적인 아이디어와 담론이 존재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 명소로서의 가치를 존중받아야 한다. 영광스러운 과거를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성대한 리셉션을 개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융과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계속 번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의 관용적인 문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저우 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테크 에디터
이 글은 SCMP의 칼럼 'Hong Kong should cherish literary legend Jin Yong and the city’s unique cultural role that allows his works to shine'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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