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숨겨서 데려온 필리핀 불법체류 가정부, 위험한 선택

김성호 2024. 3. 2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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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68] <레이징 그레이스>

[김성호 기자]

'상식'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한국 인구가 5000만 명을 넘고 서울 인구가 1000만 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상식이지만,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22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의 여러 산업이 합법·불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대중의 무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토록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평균적 한국인의 시선엔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도심보단 외곽에, 어엿한 택지보단 외딴곳에 모여 사는 이들이 많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분업화된 자유주의 노동의 영역 가운데 격리되고 고된 노동을 이들이 도맡고 있는 영향이 크다.

수년 전 어느 재벌 오너 가정에서 불거진 갑질 논란이 세간의 화제로 떠오른 일이 있었다. 당시 그들이 필리핀에서 건너온 입주가정부만 써온 점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필리핀인을 쓰는 이유는, 이들이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민감한 대화를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영어를 잘해 소통이 편하며, 유순한 성품으로 대하기에 좋다는 등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한국에서도 필리핀 가정부는 완전히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필리핀 가정부들이 어떻게 바다 건너 먼 나라까지 와서 가정부로 일하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알려들지도 않는다. 누구도 묻지 않아 감춰진 서사, 그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가 없었던 탓이다.
 
 영화 <레이징 그레이스> 포스터
ⓒ 이놀미디어
 
아이를 지켜야 하는 불법체류 가정부

<레이징 그레이스> 속 그레이스(제이든 페이지 보아디야 분)는 아직 어린 여자아이다. 학교도 가지 않고 종일 엄마와 붙어 있어야 하는 대여섯 살 그레이스를 곁에 달고 엄마 조이(맥스 에이겐만 분)는 종일 일만 한다. 그레이스가 유치원에도 가지 못하고 엄마 옆에만 있는 건 조이가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거처 없이 가사도우미가 필요한 집을 떠돌며 일하는 가정부로 일하는 조이는 돈을 모아서 위조된 비자를 사는 것이 꿈이다.

저와 딸의 비자를 구하기까지는 아직도 한화로 수백 만 원이 부족하다. 매일을 정신없이 일하지만 아이를 맡아줄 곳은 찾을 수 없다. 결국 생각한 건 주인이 없는 집에 아이와 함께 들어가는 것, 주인이 있는 동안은 저 홀로 일하는 척 아이를 숨겨두지만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아이와 함께 지낸다. 그래도 일 만큼은 억척스럽게 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어떻게든 비자만 구할 수 있다면 이들의 삶도 조금은 더 나아질까.

어느 날 조이 앞에 매력적인 제안이 날아든다. 대저택에서 병상에 누운 삼촌을 돌보며 사는 캐서린(리앤 베스트 분)에게 입주 가정부 제안을 받은 것이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덜컥 수락하는 조이, 그로부터 이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혹여 잘릴까 두려워 딸이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듯 그레이스는 캐서린의 눈을 피해 집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 워낙 큰 대저택이니 눈에 띄지 않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한 그레이스라 방심은 금물이다.
 
 영화 <레이징 그레이스> 스틸컷
ⓒ 이놀미디어
 
혼수상태 노인과 저택의 비밀

영화는 차츰차츰 대저택의 비밀을 보여준다. 캐서린이 돌보는 숙부 개릿(데이비드 헤이먼 분)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던 듯, 병상에만 누워있다. 숙부를 병원에도 보내지 않고 전문 의료인에게 치료받게 하지도 않는 캐서린이 어딘가 이상하지만, 조이는 감히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한다. 집주인의 마음을 거슬렀다가 쫓겨나는 건 금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실은 조금씩 드러난다. 캐서린은 개릿을 마음 다해 돌보지 않는다. 약을 먹이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다. 필요한 약이 아닌 수면제를 먹일 때도 자주 있다. 캐서린의 눈에 띄지 않게 그레이스를 보살펴야 하는 조이의 상황과 캐서린의 손에 놓여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개릿의 상황이 절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보는 이의 추측을 연달아 부수어내며 전진한다. 대저택과 미묘한 초상화들이 주는 기묘한 긴장에 더해 계급과 상황의 격차로 다가설 수 없는 서로의 비밀이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봉준호의 <기생충>을 보듯, 집주인과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 사이엔 저마다의 사회가 있어 서로 닿을 수는 있어도 온전히 이해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 <레이징 그레이스> 스틸컷
ⓒ 이놀미디어
 
거듭된 반전, 드러나는 진실

<레이징 그레이스>는 그저 어느 한 개인이 겪는 상황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머무는 저택엔 오래 묵은 사연들이 있고, 그 사연 안엔 제국주의와 식민지, 인종적 우월주의와 자본주의 계층, 백인 사회 안에 깃든 편견과 몰이해,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의 설움 어린 삶 등이 틈틈이 스며들어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극은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고, 관객들은 그 가운데 제 삶을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머니를 응원하기에 이른다. 세상 무엇도 가족 간의 순수한 애정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조이는 필리핀에선 간호학을 공부한 간호사다. 그런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영국으로 이주해 가정부로 일한다. 코로나19 확산 가운데 서방 국가 환자들을 간호하는 인력으로 필리핀 등 외국 노동자들이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는 제법 알려져 있다. 조이 또한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캐릭터로 한국인에게도 남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레이징 그레이스> 스틸컷
ⓒ 이놀미디어
 
그럼에도 마음을 지킨다는 것

왜 아니겠는가. 과거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외화를 벌기 위해 정책적으로 한국인을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파견했다. 독일로 건너간 한국 여성 중 상당수는 독일 간호사들이 기피하는 업무에 투입되었다. 노인과 장애인, 정신병력이 있는 환자를 다루는 일에 투입된 아시아 출신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고충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그럼에도 조이는 끝끝내 저를 지키는 신념을 잃지 않는다. 간호사로서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낸다. 그것이 제게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지라도 말이다. 그 결과로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레이징 그레이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도 여기에 있다. 신념과 사랑, 책임을 위해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는 조이의 모습 말이다. 저를 해치고 저로부터 제 이익만을 챙기려는 이들 앞에서 조이는 자신과 그레이스를 지켜내려 분투한다.

억압 없는 삶은 없다. 압제 없는 삶 또한 없다. 캐서린에게도, 어쩌면 게릿에게도 저를 억압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산적해 있을 테다. 그러나 그와 맞서 용감히 저를 지켜내는 노력은 귀하기 짝이 없다. 타협해선 안 되는 것에 타협하지 않고 정말 중요한 것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영화에서 가장 약한 자가 해낸다. <레이징 그레이스>는 바로 그래서 마음을 움직여낸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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