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구하기 회의 급조했나"…의심받는 출국 11일 만의 귀국

박현주, 김하나 2024. 3. 21. 10: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귀국해 "체류하는 동안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일정이 조율이 잘 되어서 조사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대사 임명 발표, 8일 고(故)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관련 출국금지 조치 해제, 10일 출국 등 속전속결로 부임 절차가 진행됐는데, 불과 11일만에 귀국한 것이다. 방산 협력 관련 회의 참석이 공식적인 이유이지만, 외교가에선 총선을 앞두고 여론 무마용 조기 귀국을 위해 억지로 명분을 만든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 대사는 이날 오전 9시30분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는 입국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와 관련해 제기됐던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서는 이미 수 차례에 걸쳐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7월 채 상병 사망과 관련, 해병대 수사단이 사건 조사 결과를 경찰로 이첩하는 것을 보류하도록 지시한 것과 관련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해외 도피'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10일 호주대사로 부임한 이 대사는 지난해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조사에 외압을 행사했단 의혹을 받고 정치권으로부터 '도피성 출국'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김현동 기자


외교부는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25일부터 호주를 비롯해 주요 방산 협력 대상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카타르, 폴란드 등 6개국 주재 대사가 참석하는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외교부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 주관하며 "현지 정세와 시장 현황, 기업들의 기회 요인, 장기적인 시각에서 수출 수주 여건, 정책적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특정 현안이나 급박한 정세 변화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일부 공관장을 불러 모으는 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호주를 포함한 방산 협력 공관장 회의는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K-방산의 중요성이 커지는 추세와 맞닿아 있을 수 있다.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차량에 오르고 있다. 김현동 기자

다만 소집 방식과 시기를 두고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해 9월에도 외교부와 국방부는 중동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권역별 방산수출 네트워크 회의'를 개최했지만, 당시 재외 공관장들은 귀국하는 대신 현지에서 화상으로 참석했다.

게다가 전 재외공관의 공관장이 일시 복귀하는 연례 재외공관장회의가 다음달 22일로 예정돼 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있는 게 아니라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공관장회의 때 6개국 공관장 회의도 하는 게 자연스럽다. 지난해 재외공관장 회의 때에도 귀국한 공관장 중 방산 관련 60여 개국 대사들이 따로 모여 '방산물자 수출전략회의'를 진행했다.

지난해 9월 국방부와 외교부가 공동으로 주재하는 중동지역 대상 '권역별 방산수출 네트워크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또 이 대사는 지난 10일 출국했다. 그 사이 돌발상황이 생겼다면 몰라도 꼭 다룰 방산 현안은 출국 전에 논의했어야지, 굳이 출국했다가 11일만에 다시 불러들이는 것 역시 쉽사리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정부 소식통은 "방산 수출 거점국을 중심으로 국내 부처와 공관장이 합동으로 회의를 열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논의가 돼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일정이 확정된 회의였다면 이 대사의 출국 시기를 회의 이후로 늦춰 회의에 참석한 뒤 부임하도록 하는 게 통상적이다.

또 회의 날짜만 공개됐을 뿐 개최 장소나 시간, 구체적 의제는 모두 비공개다. 외교부는 통상 장관이나 차관급 주요 일정 정도만 사전 공지하는데, 이번 회의는 닷새 전부터 사전 보도자료를 낸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오전 경기도 안양에서 열린 현장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이 대사가 곧 귀국할 것"이라고 밝히고 나서 약 30분 뒤인 오전 11시12분 외교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주호주 한국대사관 홈페이지 이종섭 대사 인사말. 주호주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정부가 해당 회의를 사실상 '급조'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 대사 관련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공적 인력과 자원을 유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외교부는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는 과정에서 예산이 줄며 최근까지도 상당수 험지 근무 재외공관원들이 연 1회 이뤄지던 의료 목적 귀국도 하지 못 했을 정도로 출장비 고갈 문제가 심각하다. 통상 공관장은 항공기로 이동시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한다.

또 주재국에서 국익을 대표하기 위해 파견된 공관장의 귀임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이뤄지는 걸 원칙으로 한다. 이와 관련, 이 대사는 "(2주 뒤에는) 한국과 호주 간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2+2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제6차 한-호주 외교·국방(2+2) 장관회담은 4월 말이나 5월 초로 예상되는데, 양국 간 안보 분야에서 가장 큰 이벤트인 만큼 통상적이라면 주재 대사가 현지에서 한창 관련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국내적 상황으로 인해 신임 대사가 이런 식으로 논란이 되는 부임과 귀임을 이어가는 건 상대국인 호주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호주는 시종일관 한국 및 이 대사와의 협력을 기대한다는 '외교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례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