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경기장을 가다②] 경기장 넘어 '혁명적인' 장소…김부자 대형사진 위압감

김현기 기자 2024. 3. 21. 10: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여자아시안컵 예선 평양 원정 당시 한국취재진은 중국에서 평양을 들어갈 땐 중국국제항공, 나올 땐 고려항공을 타기로 예정했다. 대북제재로 고려항공 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권유가 있었으나 비행기 스케줄이 맞지 않아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오는 비행기는 고려항공을 이용했다.

국경선을 정확히 모르더라도 어디부터 북한인지를 알 수 있을 만큼 북한은 민둥산이 굉장히 많았다.

기내에서 민둥산을 한창 내려다보던 중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직선 거리로 불과 250km 남짓인데, 일본 언론 표현대로 '우주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상하고 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 긴장감을 풀었던 소재가 바로 미세먼지였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세먼지가 순안공항을 뿌옇게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마중 나온 북한 요원들과도 "남쪽처럼 먼지가 많다", "이거 다 중국에서 오는 것"이라는 대화를 통해 가까워졌다.

이어 25인승 소형버스를 타고 양각도국제호텔로 향했는데, 가는 길은 무슨 평양시 쇼케이스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버스는 김일성 광장과 당시 북한이 선전하던 고급주택 단지인 여명거리 등을 휘감아 돌고 숙소에 왔다. 한 외신기자가 이번 대회 취재를 위해 서울에서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왔다면서 한국 언론을 '역취재'한 것에서 이번 대회 의미가 적지 않게 느껴졌다.

이튿날 여자대표팀이 첫 훈련 취재를 나섰다. 낯선 곳이어서 긴장할 법도 했지만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어디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고요한 김일성경기장에서 웃고 떠들며 온화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의 웃음을 통해 힘든 평양 원정에 세계적 수준 북한 축구를 상대해야 하지만 조1위를 해서 여자아시안컵 본선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김일성경기장은 4만2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트랙이 있지만 축구전용경기장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경기장이 광활하기보다는 압축된 느낌이다. 관중석 모든 방향에 지붕이 있다보니 북한을 상대하는 원정팀 입장에선 응원에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기장 시설은 손색이 없었다. 북한 요원들과 함께 경기장 곳곳을 탐방했는데 라커룸이나 회의실, 각종 시설들은 최신식이었고 곳곳에 북한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 냈을 때 사진을 걸어놨다. 그 중엔 2013년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북한이 우승하고 돌아간 사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북한 역도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을 때 사진, 그리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누르고 8강에 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을 때 사진 등도 있었다.

김일성경기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조잔디다. 사실 A매치를 치르는데 천연잔디가 아닌 인조잔디에서 하는 것이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당시엔 인조잔디를 교체한지 6개월밖에 되질 않아 국제대회 개최엔 큰 문제가 없었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이나 현장에 나와 있던 아시아축구연맹(AFC) 관계자도 인조잔디가 아주 좋다고 호평했다. 다만 AFC 측은 "2~3년 계속 쓰다보면 경기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번 26일 북일전에서 인조잔디를 바꿨는지 궁금하게 됐다.

본부석 상단에 걸려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역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둘의 대형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어떤 경기장에서도 나올 수 없는 홈 이점이 보인다. 

사실 김일성경기장은 북한 역사에서 경기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해방 뒤 소련에서 돌아온 김일성이 대중을 모아놓고 처음 연설을 한 곳이 지금의 김일성경기장, 당시 평양종합운동장으로, 북한에선 혁명유적지다.

그래서 경기장 들어가는 초입에 김일성의 당시 연설 모습이 커다란 벽화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김일성경기장에서 200m 정도를 걸어나오면 프랑스 파리 개선문보다 더 크게 지었다는 평양 개선문이 있다. 취재 당시 37년간 개선문 소개만 했다는 해설사가 한복을 차려 입고 나와 개선문의 의미, 김일성이 13살때부터 항일 운동을 시작했다고 주장한 1925년이 개선문에 새겨진 배경 등을 설명했다.

북한은 김일성경기장에서 2005년 이후 A매치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 기록은 이어져오고 있다. 일본도 2011년 평양 원정에서 졌다. 그 만큼 원정팀을 까다롭게 하는 환경에서 대한민국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뛰어나와 2017년 4월7일 북한과의 한판승부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일성경기장을 배경으로 북한 개선문 해설사가 해설을 하고 있다. 김현기 기자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Copyright © 엑스포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