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정관장의 PO, '이소영 변수'가 가른다
[양형석 기자]
지난 17일 IBK기업은행 알토스와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의 경기를 끝으로 도드람 2023-2024 V리그 정규리그 일정이 모두 마감됐다.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첫 통합 우승을 차지했던 2010-2011 시즌 이후 13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챔프전에 직행하는 기쁨을 누렸다. 반면에 막내구단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는 V리그 여자부 역대 최다인 23연패의 굴욕적인 성적으로 창단 후 세 시즌 연속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즌 막판까지 현대건설과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28승8패로 리그에서 가장 높은 승률(.778)을 기록하고도 승점 1점이 부족해 챔프전 직행을 아쉽게 놓쳤다. 2016-2017 시즌 이후 6시즌 연속 봄 배구 무대를 밟지 못했던 정관장은 정규리그 3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4위 GS칼텍스 KIXX와의 승점 차이를 10점으로 벌리며 준플레이오프 없이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79-61. 18점의 정규리그 승점 차이가 말해주듯 오는 22일 시작되는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플레이오프는 많은 배구팬들이 흥국생명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특히 정관장의 주장 이소영이 시즌 막판 발목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 출전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흥국생명의 우위를 예상할 수 있는 근거다. 하지만 지오바나 밀라나와 메가왓티 퍼티위로 구성된 리그 최고의 쌍포를 보유한 정관장도 7년 만의 봄 배구 무대에서 쉽게 물러날 마음은 전혀 없다.
▲ '여제' 김연경은 지난 2020년 국내 복귀 후 준우승만 2번 기록했다. |
ⓒ 한국배구연맹 |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김연경을 1년 총액 7억7500만 원의 최고 연봉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김연경의 절친이자 국가대표 출신 미들블로커 김수지를 영입하면서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평가 받았던 중앙까지 강화시켰다. 많은 배구팬들은 이번 시즌이야말로 흥국생명이 지난 시즌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에게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아쉽게 놓쳤던 우승컵을 들어올릴 적기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 선두를 달리던 흥국생명은 3라운드부터 외국인 선수 옐레나 므라제노비치의 부진에 주춤했고 그 사이 9연승을 내달린 현대건설에게 선두 자리를 빼앗겼다. 흥국생명은 고민 끝에 전반기가 끝난 후 외국인 선수를 윌로우 존슨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마침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쿼터 레이나 토코쿠의 컨디션이 살아나면서 흥국생명은 자연스럽게 김연경-윌로우-레이나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를 완성했다.
5라운드에서 전승을 기록하는 가파른 상승세를 통해 선두자리를 탈환했던 흥국생명은 6라운드에서 정관장과 페퍼저축은행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현대건설에게 정규리그 우승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양 팀의 승점 차이가 단 1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 8일 최하위 페퍼저축은행에게 당한 1-3 패배가 대단히 아쉬웠다. 결과적으로 정규리그 2위가 된 흥국생명은 플레이오프를 통과해야만 현대건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시즌 모든 구단과의 상대전적에서 앞서 있는 흥국생명은 정관장에게도 4승2패로 우위에 있다. 다만 1라운드 패배 후 4연승을 기록했다가 중요했던 6라운드 맞대결에서 1-3으로 패했던 것이 아쉬웠다. 물론 정관장에서 이소영의 출전이 불투명하다는 점은 흥국생명에게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흥국생명 역시 주전세터 이원정이 시즌 막판 부상으로 2경기에 결장한 바 있어 최상의 컨디션으로 플레이오프에 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흥국생명의 마지막 챔프전 우승은 이재영과 베레니카 톰시아가 활약했던 2018-2019 시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흥국생명은 김연경 복귀 후 두 차례 챔프전에 올랐지만 각각 GS칼텍스와 도로공사에 막혀 준우승에 머문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시즌 챔프전 우승에 대한 흥국생명의 열망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과연 흥국생명은 정관장이라는 관문을 넘어 두 시즌 연속 챔프전 무대를 밟을 수 있을까.
▲ 정관장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이소영의 자리를 대신할 박혜민의 활약이 매우 중요하다. |
ⓒ 한국배구연맹 |
지난 4월 정관장이 아시아쿼터로 인도네시아 출신의 아포짓 스파이커 메가를 선발할 때만 해도 6시즌 연속 하위권에 머물렀던 정관장의 독특한 실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한국이 국제대회에서도 거의 만난 적 없는 아시아 배구의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잡을 쓰고 경기에 나서며 배구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던 메가가 실력으로 배구팬들을 사로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관장은 메가와 지아로 구성된 쌍포가 정규리그에서 1426득점을 합작하는 맹활약을 펼친 끝에 20승16패로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며 알레나 버그스마가 활약하던 2016-2017 시즌 이후 7년 만에 봄 배구 티켓을 따냈다. 외국인 쌍포가 공격을 주도한 가운데 염혜선 세터가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팀을 이끌었고 미들블로커 정호영과 박은진도 블로킹 부문에서 각각 3위(세트당 0.65개)와 7위(세트당 0.53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3라운드까지 중위권을 맴돌던 정관장이 4라운드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비결은 어깨수술 후 재활에 주력했던 '캡틴' 이소영의 복귀와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이소영은 2라운드에 코트로 돌아와 4라운드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약했고 이번 시즌 26경기에서 37.95%의 성공률로 215득점을 올렸을 뿐 아니라 43.8%의 리시브 효율로 수비에서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정관장 공수의 핵심인 이소영은 22일부터 시작되는 흥국생명과의 플레이오프 출전이 불투명하다. 지난 7일 GS칼텍스와의 경기에서 발목이 꺾이는 부상을 당하며 인대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활까지 최소 4주가 필요한 부상이라 사실상 이번 봄 배구에서 복귀가 쉽지 않다. 만약 무리해서 출전을 강행하더라도 점프력과 체공력을 활용하는 공격이 장기인 이소영이 정상적인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결국 정관장은 시즌 초반 이소영 대신 주전으로 출전했던 박혜민이 플레이오프에서도 이소영의 자리를 메울 확률이 높다. 정관장으로서는 박혜민이 수비에서 이소영의 공백을 잘 메워주길 기대하고 있다. 물론 정관장은 7년 만의 봄 배구 나들이 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관장에서 챔프전을 목전에 두고 주장의 부상을 핑계 삼아 흥국생명에게 져도 괜찮다는 안일한 마음을 가진 선수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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