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또 대형사고...이건 조세정의 흔드는 폭거

이태경 2024. 3. 2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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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민생토론회에서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약속... 부자감세 '매표 행위'

[이태경 기자]

총선만 생각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또 대형사고를 쳤다.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들이 추진해오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부동산 부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윤 대통령의 폭주는 기실 조세정의의 근간을 허무는 폭거와 같다.

조세정의가 없는 나라에 정의가 설 자리는 없다. 부자감세나 다름없는 윤 대통령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천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합의이자 달성돼야 할 목표다.

사실상 표 달라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우리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께서 마음 졸이는 일이 없도록 무모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영등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 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이같이 언급하면서 "법을 개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법 개정 전이라도 여러 가지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하여튼 폐지와 같은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오르자 이를 징벌적 과세로 수습하려 했다. 특히 공시 가격을 매년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소위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시행했는데 곳곳에서 엄청난 부작용이 드러나고 국민의 고통만 커졌다. 지난 정부에서 5년간 공시가격을 연평균 10%씩 총 63%까지 올렸다. 결과적으로 집 한 채를 가진 보통 사람들의 거주비 부담이 급등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건 "법을 개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이란 대목이다. 공시가격 현실화를 폐지시키는 법률을 개정할 수 있도록 여당에게 표를 몰아달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와 건강보험료·기초연금 등 67개 행정·복지제도의 기준이 되는 지표다. 

윤 대통령의 이번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발언이 민생토론회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전국을 돌며 총선용 공약을 남발 중이란 비판 속에서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까지 나왔다.

대통령이 말한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엔 예산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조세정의라는 지고의 가치가 손상되는 손해가 대한민국에 발생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눈에는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공약에 환호작약해 여당에 표를 던질 '부동산 부자'만 보이는 것 같다.

그가 공시가격을 원수 보듯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윤 정부는 지난해 11월 21일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와 동일한 69.0%(공동주택 기준) 수준으로 동결한다고 발표했었다.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발표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셈이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조세정의의 출발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잠실 일대 아파트의 모습.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과는 달리 공시가격 현실화는 조세정의의 출발이자 한국 사회의 오래된 합의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는 부동산 유형별·지역별 세 부담의 공평성·형평성을 제고하고, 과표와 시세간의 간극을 좁혀 공정 과세를 구현함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정부라면 반드시 달성해야 할 정책과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공시가격 현실화의 속도에 대해 이견이 있었을 뿐, 공시가격 현실화를 반대하는 정부는 없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사실상 사회악으로 규정하며 없애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 정부가 입만 열면 소환하는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간략히 살펴보자. 2020년 도입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현실화율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 2035년(공동주택 10년, 단독주택 15년, 토지 8년으로 달성연도가 상이함)까지 90%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문 정부가 이 로드맵을 임기 중에 수립한 것은 기존의 부동산공시가격 제도가 시세와의 간격이 너무 커 사실상 감세를 위한 장치로 기능하는 데다 부동산 유형별·지역별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내장돼 있었기에 이를 개혁하기 위함이었다.

가령 부촌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의 시세 반영률은 40∼50% 선에 그치고, 지방 저가 주택은 70∼80%라 형평성에 어긋나는 등 서울과 지방, 아파트와 단독주택, 고가와 저가주택 등 지역별·유형별·가격대별로 벌어진 시세 반영률을 공평하게 보정해야 한다.

한편, 윤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를 폐지하겠다고 천명함에 따라 당장 기존 공시가격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던 형평성 제고는 물건너갔다. 일례로 주택 유형 등에 따라 시세 반영률을 동일하게 맞추려던 형평성 작업은 어렵게 됐다. 올해 공동주택 평균 현실화율은 69%, 표준(단독)주택은 53.6%가 적용됐다. 9억 원 미만 아파트 현실화율은 68.1%, 9억~15억 원 미만은 69.2%, 15억 원 이상은 75.3%다.

19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국토부 관계자는 "유형·지역 간 시세 반영률의 '키 맞추기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통령의 앞선 발언으로 신뢰도를 보장할 순 없을 것 같다.

부자감세-공동체 파괴 매표행위
 
 총선주거권연대, 주거권네트워크 회원들이 2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지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산정의 기반이 되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지를 발표한 것은 도를 넘은 매표행위가 아닐 수 없다’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 권우성
 
윤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때문에 부동산 관련 세금이 폭증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폐지하겠다는 거다. 물론 공시가격이 현실화되면 과표가 오르기 때문에 세부담이 늘어난다. 하지만 근래 부동산 관련 세금이 폭증한 주된 이유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 때문이었다. 윤 정부는 현재 원인과 결과를 의도적으로 전도시키고 있다.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또 있다.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는 고사하고 공시가격 현실화를 동결시켰을 때조차 수혜는 '부동산 부자'에게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을 2020년 수준(69%)으로 되돌리면서 한국도시연구소가 진행한 분석에 따르면, 2020~2023년 공시가격 3억 원 미만 아파트 보유세는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15억 원 이상 아파트 보유세는 1270만 원에서 536만 원으로 감소했다.

변동하는 시장가격과 과표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 지역별·유형별 부동산 간의 현실화율에 형평을 도모하는 것은 조세정의와 공정과세의 기초다. 하지만 윤 정부는 기초를 허물려 하고 있다.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이자, '부동산 부자들'의 세금 감면을 통한 매표행위란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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