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명 늘리자…“폭주기관차” “파시스트 정부” 의사 쇼크

권남영 2024. 3. 21.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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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1일 전공의 처우개선 토론회 개최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근무 현장을 이탈한 지 한 달이 넘은 가운데 20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증원분 2000명 배정안을 공식 발표하자 의료계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분위기다. 의대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의사단체는 저마다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 한편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방재승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의대 증원 발표로)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며 “교수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병원을 지키고 있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다. 대학병원이 줄도산하고 대한민국 의료가 너무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 위원장은 “의대 교육에는 여러 실습 기자재와 첨단장비, 고도의 숙련된 교수진이 필요하다”며 “오전, 오후, 야간반 의대를 하자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증원 숫자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예정대로 오는 25일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는 그는 “정부가 너무나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다”며 “어떻게든 협상 테이블에 다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 전공의들이 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정부를 ‘파시스트’로 표현한 원색적 비난도 나왔다. 의협 차기 회장 후보이기도 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성명에서 “의사들은 파시스트적 윤석열정부로부터 필수의료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모든 의사들이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멍청한 정치인들아, 이게 의사 숫자로 해결될 문제로 보인다는 말이냐”고 쏘아붙였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충으로 기존 142명에서 200명으로 전북대 의대 정원이 늘어난 20일, 전북대 의대 및 전북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이 대학 본부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연세대 의대와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교수 일동은 이날 ‘정부는 의대생 2000명 증원 배정안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내고 “의대 증원 졸속 정책은 우리나라 의사 교육을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시켜 흑역사의 서막을 열 것”이라며 “사직서를 내고 휴학계를 제출한 (전공의·의대생 등) 후속 세대 1만5000명을 포기하며 진행하는 의대 증원은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국대의대 교수협의회도 성명을 통해 “전공의와 학생들에 대한 불이익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일정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수십년간 수십조원의 국가재정을 투입하고도 현재의 인구 감소를 해결하지 못한 보건복지부에서 폭력적인 의대 정원을 전문가 집단과 상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것을 개탄한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도 입장문에서 “정부에 다시 간곡히 호소한다”며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붕괴 정책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조속히 의료가 정상화될 수 있게 지금이라도 현명한 결단을 내려 달라”고 촉구했다.

서울시의사회 역시 성명을 통해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라 마치 대검찰청 특수부를 상대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지방에 의대 정원을 집중 확대하면 지역민이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는 얄팍한 속셈이 있다”고 반발했다. 이어 “정부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군사정권처럼 밀어붙이지만 대한민국 의료는 되돌릴 수 없다”며 “최악의 상황은 이미 시작됐다. 마녀사냥식 개혁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조윤정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고려의대 교수의회 의장)는 이날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 온라인 브리핑에서 “해리포터에 나오는 매직 완드(마법 지팡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걸(시설과 공간) 어떻게 짓고 이 돈을 어디서 만들어오냐”며 “(의대 증원) 문제는 의대교육 현장과 연계돼 있으므로 단순하게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발표한 20일 오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 개혁 4대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다만 “전의교협은 의대생, 전공의, 의협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현명한 해결책과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논의의 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전의교협은 오는 25일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와는 별개의 의대 교수 단체다.

의대생들도 반발하고 있다. 의대·의전원 학생 대표들로 구성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이날 공동성명서를 내고 “증원이 이뤄진다면 학생들은 부족한 카데바(해부용 시신)로 해부 실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실습을 돌면서 강제 진급으로 의사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정책은 협박과 겁박으로 의료계를 억압하고, 이로 인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수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이날 기존보다 2000명 늘어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공식 발표하면서 27년 만의 의대 증원에 ‘쐐기’를 박았다. 정부는 기존에 여러 차례 강조했던 대로 지역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비수도권에 증원분의 82%를 배정하고, 경기·인천 지역에 나머지 18%를 배분했다. 서울지역 정원은 1명도 늘리지 않았다.

의료계는 대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전의교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의대협, 의협은 이날 2시간가량 정부의 의대 정원 배정 결과를 안건으로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으나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의정 갈등 사태 촉발 이후 의료계를 대표하는 4개 단체가 모인 건 극히 드문 일이다.

한편 정부는 21일 처우 개선 토론회를 열어 전공의 달래기에 나선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전공의 처우 개선 논의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 의견을 수렴한다. 토론회에는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외에 임인석 중앙대 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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