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중소기업 지원은 복지정책이 아니다

2024. 3. 2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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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만(연세대 교수·행정학과)

中企에 대한 각종 혜택 노려
자산 규모· 매출 안 늘리는
‘피터팬 증후군’ 만연

연 순이익 100억 넘는 中企
지난해 1300곳 넘어

규모 아니라 혁신 도전하고
전후방 효과 크고 핵심 기술
보유 기업 선별적 지원해야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3년에 법인세를 신고한 법인은 98만개다. 5년 전인 2018년의 70만개에서 4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세금 신고를 하는 법인 수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면 한국 경제의 미래가 매우 밝은 것처럼 보인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법인세를 신고하는 법인은 중소기업과 일반 법인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중소기업이란 조세특례제한법의 적용을 받아 세제혜택을 받는 세무상 중소기업 법인이고, 일반 법인은 중소기업 외 나머지 법인을 일컫는다. 중소기업은 2018년 56만개에서 2023년 91만개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일반 법인 수는 2018년 13만개에서 2023년 7만개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정리하면 2018년을 기점으로 중소기업 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나머지 법인 수는 오히려 매년 크게 감소하고 있다. 도대체 2018년 전후로 어떠한 변화가 있었기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정부는 2017년 7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외청인 중소기업청을 격상시켜 중소벤처기업부를 출범시켰다.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혜택도 비슷한 시기에 많이 증가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시작한 이후 이러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부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중소기업은 소재 및 부품 제조 등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생태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체 고용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수출 실적은 2021년 이후 3년 연속 1100억 달러(약 147조3000억원)를 넘었다. 중소기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현재의 지원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일단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복지가 아니다. 정부가 생존이 어려운 한계기업이나 좀비기업의 생존 연장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산업의 경쟁력과 역동성을 저해할 것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에 돌아가야 할 자원을 이들 ‘정체’됐거나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중소기업 내 한계기업의 증가세가 뚜렷하다.

반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중소기업으로 지정돼 세제혜택을 받는 기업도 존재한다. 2023년 기준으로 순이익이 100억원을 초과하는 중소기업이 1321개다. 순이익이 무려 1000억원을 넘는 곳도 39개나 된다. 중소기업으로 세제혜택을 받으려면 매출액과 자산총액이 일정 규모 이하여야 한다. 같은 이윤을 창출했지만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 제도는 정당화하기 어렵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졸업’해 중견기업에 편입된 기업 상당수가 ‘피터팬 증후군’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터팬 증후군이란 기업들이 자산 규모나 매출액을 키울 수 있는 상태에서도 여전히 중소기업으로 남고 싶어 하는 현상이다. 과반수 응답자들이 중소기업 졸업 후 가장 부담스러운 정책 변화로 ‘조세 부담 증가’를 꼽았다.

정부는 현재처럼 업종별 규모 기준으로 중소기업을 선정하는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신사업 창출에 도전하는 기업,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강소기업,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소재·부품·장비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제조기업 등을 선별적으로 지원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미래 먹거리 발굴의 마중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약자로 규정해 보호하는 정책은 정치적 인기를 보장해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홍순만(연세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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