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조국의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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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방랑자는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문득 이 부조리극을 떠올린 건, 2심까지 실형을 받고도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서는 조국 대표를 보면서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전 정권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명하면서도, 검찰의 직접수사권 축소·폐지를 밀어붙이는 모순.
'조국 사태'는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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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방랑자는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이 기다림이 언제 시작된 건지는 알 수 없다. 고도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타나긴 하는 건지, 실체는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하루해가 다 가도록 고도는 오지 않고, 대신 염소지기 소년이 나타나 “고도씨가 오늘 밤엔 오지 못한다”는 전갈을 전한 뒤 사라지는 것으로 1막이 끝난다. 그러나 2막인 이튿날에도 고도는 끝내 오지 않는다.
문득 이 부조리극을 떠올린 건, 2심까지 실형을 받고도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서는 조국 대표를 보면서다.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반성하지 않는다”는 질책을 받은 그지만 다시 검찰 개혁을 끄집어내 총선 출마 기치로 내걸었다. 마냥 기다리는 중인 지지자들을 향해 내일엔 고도가 올 거라고 외치듯이.
조 대표는 “한 줌의 정치검찰이 쥔 권력을 국민께 돌려드리는 것”을 자신의 마지막 과제라고 했다. 그가 만든 조국혁신당도 제1 강령을 ‘우린 검찰 개혁을 위해 행동한다’로 정했다. 검찰 개혁이 곧 존재 의미라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검찰 개혁은 문재인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였다. 그러나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도 “개혁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황운하 의원).
누구의, 어디서부터의 잘못인가. 이 실패는 검찰에 계속 칼을 휘두를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검찰 손에서 칼을 아예 빼앗겠다고 하는 정권의 이중적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전 정권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명하면서도, 검찰의 직접수사권 축소·폐지를 밀어붙이는 모순. 여기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는 검찰 개혁의 한 축이 무너졌다.
‘조국 사태’는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정권은 ‘쿠데타’라고 발끈하며 검찰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검찰 개혁이 ‘윤석열 축출’로 치환되는 순간, 많은 이들이 지난 정부가 말하는 검찰 개혁의 실상을 보고 말았다. 국민이 기다리는 개혁과 정권이 그리는 개혁의 상이 달랐던 것이다. 이를 드러낸 일등 공신이 누구였던가.
조국당이 비례대표 후보로 배치한 인사들의 면면도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게 한다. 징역 2년의 조 대표를 비롯해 이미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거나 재판 또는 수사를 받는 중인 이들이 다수 이름을 올렸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3년이 나온 황운하 의원도 8번에 배치됐다.
후보 1번 박은정 전 법무부 감찰담당관의 경우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로 해임 처분을 받은 인사다. 성남지청장 재직 시 ‘성남FC 후원금 사건’ 수사 무마 논란으로 부하 검사와 공개 충돌하기도 했다. 이들이 검찰 개혁의 선봉을 자처하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특히 조 대표는 정치 보복 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한동훈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추진도 공언했다. ‘멸문지화’의 원한을 예전 방식 그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원해 갚겠다는 뜻 아닌가.
현재 조국당 지지세가 만만치 않은 건 ‘검찰 정권 심판’ 구호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흐름을 추동하고 결집해 적절히 올라타면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선거 전략 측면에서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다만 검찰 개혁 이슈를 지지자들 의식을 일치시키는 소재로, 자신의 살길을 도모하는 방편으로 쓰는 건 아닌지 씁쓸하다. 사법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을 구하겠다는 태도는 일반인들에게 형사사법 전반에 대한 불신을 심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는 ‘반윤석열’ ‘반검찰’ 구호를 걷어내면 이들이 말하는 검찰 개혁의 실체는 있는 걸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본인들은 내놓은 개혁 방향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여전히 확신하는 걸까. 연극의 막이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고도는 오지 않는다.
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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