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강간통념’을 활용하라는 민주 변호사

2024. 3. 2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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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광운대 교수

박용진 의원이 결국 경선에서 패했다. 정봉주 후보가 낙마하고 박 후보에 대한 동정여론이 높아지자, 30% 감산 룰만으로는 불안했는지, 여성·신인 가산점 25%를 받을 후보를 경쟁자로 내보낸 것이다. 박용진만은 기필코 잘라내겠다는 당 대표의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그렇게 공천장을 받은 조수진 변호사.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사무총장까지 지낸 분이란다. ‘민변’이라 하면 돈 없는 사람, 빽 없는 사람, 억울한 피해자를 돕는 변호사들의 모임으로 아는데, 이분은 아주 독특하게 성폭행 가해자들을 변호해 온 모양이다. 물론 가해자도 법률적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고, 변호사가 가해자의 변호를 맡을 수가 있다. 하지만 어차피 성폭행 가해자의 죄를 덜어주는 것으로 먹고 살 거라면, 최소한 이마에 훈장처럼 써 붙이고 다니는 그 ‘민주’라는 말은 떼고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 박용진 꺾고 민주당 공천 조수진
성폭력 혐의자들 위한 조언 논란
‘민주 인사’의 존재론적 분열 반영
전쟁 된 정치판, 실종된 윤리감각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을 성폭행한 남성, 한 여성을 함께 성폭행한 두 남성, 고등학교 여학생을 추행한 강사. 그가 변호한 성폭력 가해자 명단에는 여성 208명의 몰카를 찍은 남자, 심지어 10세 여아의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학대한 자도 끼어 있다. 이 정도면 가히 ‘성폭행 가해자 전문 변호사’라 해도 되지 않을까? 농담이 아니라, 조 변호사는 작년 9월 제 블로그에 10세 여아를 성 착취한 그 남자의 변호를 맡아 집행유예를 받아냈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렸다. 고객 유치를 위해 홍보까지 한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그 변론의 방식이다. 그가 제 블로그에 올린 글(‘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이 유리하다?’)에는 성범죄 피의자들에게 던지는 해괴한 조언이 등장한다. 배심원들의 ‘강간통념’을 잘 활용하라는 것이다.

‘강간통념’이란 “여성이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관계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말한다.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신고를 못 하고, 설사 신고를 해도 종종 무고로 몰리는 이유가 바로 이 강간통념 때문이라 들었다.

조 변호사 역시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는 강간통념이 “성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기에 바로잡아야 한다”며 건전한 민주시민의 양식을 과시한다. 문제는 다음이다. 이어서 그는 재판을 앞둔 성폭력 혐의자들을 향해 이렇게 조언한다.

“자신이 피의자 입장이고 배심원의 판결을 통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증거자료와 상황이 있다면 이를 올바로 활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배심원들은 대개 강간통념을 갖고 있으니, 이를 재판에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의 인격은 분열한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로서 조수진은 강간통념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폭행 피의자들 시장을 노리는 개인 사업자로서 조수진은 그들에게 이 위험한 생각을 활용하라고 권한다.

이 ‘분열’은 조수진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 존재론적 분열은 한때 나름 순수함을 가지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을지도 모를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사회에서 처한 어떤 보편적 상황의 한 사례일 뿐이다. 또 다른 대표적 사례를 우린 이미 겪지 않았던가. 온갖 문서들을 조작해 딸을 부정 입학시킨 그 사람이 ‘입시기회의 평등’을 공약으로 내건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게 ‘모순’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렇게 망가진 두뇌의 소유자들이 누구를 심판하겠다고 기세를 올리니, 참 어지러운 세상이다.

그 못지않게 해괴한 모순이 여기에도 있다. 조수진 변호사가 박용진 후보를 제치고 공천장을 받은 것은 25%의 가산점 덕분. ‘여성’의 권익을 위한 가산점이, 외려 성폭력과 성 착취를 자행한 남성들에게 강간통념을 활용하라고 권한 이에게 돌아간 것이다.

옛날엔 여성단체에서 비판하면 듣는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이젠 최소한의 거름 장치마저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왜 그럴까? 막 나가도 잠깐 출렁일 뿐 지지율엔 별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새 유권자들마저 윤리적 이슈에 둔감해진 것이다. 하긴,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지도 모를 인물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고, 법원에서 2년 형을 받은 인물이 제 이름을 딴 정당의 수령이 되고, 이미 구속되어 감옥에 들어앉은 인물이 창당하는 ‘아사리판’에, 법보다 약한 윤리나 도덕을 따져서 뭐하겠는가.

정치는 전쟁이 되었다. 전장에는 원래 법도 없고,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는 법이다. 그곳에 필요한 덕목은 오직 하나, 불타는 적개심뿐. 그것이 정치공동체 내에서 제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갖춰야 할 유일한 시민적 덕목이 되었다. 이 도덕적 둔감함 못지않게 답답한 것은 그 불타는 적개심에 기름이나 부어대는 대통령실의 정치적 둔감함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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