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차라리 한국은행에 개혁을 맡겨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을 봤다. 눈길이 간 것은 간병 대책이다. 양당 모두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추진을 내걸었다. 반가운 이야기지만, 결국 재정 문제다. 복지부 추산 연간 간병비는 최소 15조원이다. 막대한 사업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양당의 설명은 두루뭉술했다. 다른 지출을 줄이고 매년 늘어나는 재정수입을 활용한다고 했다. 말뿐인 공약(空約)이 되기 십상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간병과 관련해 보다 손에 잡히는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해 월평균 간병비(추정치)는 약 370만원. 40~50대 중위소득(588만원)의 63%다. 간병비 부담 등의 사정 때문에 가족이 직접 돌보는 가족간병 규모가 2042년엔 212만~355만 명에 이르고, 그에 따른 노동 손실 비용이 46조~77조원으로 그 시점 국내총생산(GDP) 예상치의 2.1~3.6%가 되리란 추산이다. 국민에겐 ‘간병 지옥’이고, 나라엔 ‘국가적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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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은, 간병 노동 외국인 활용 제시
수도권 집중 완화 같은 해법 눈길
돈 써서 문제 풀자는 주장은 하책
」
한은은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 간병 같은 돌봄 서비스에 외국인 노동자를 투입하고, 대신 간병비 부담을 낮출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간병비에 시달리는 한국인도, 자국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도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업종별 차별과 최저임금 하락을 우려하는 노동계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과연 노동자들의 속마음도 그럴까. 저소득층일수록 간병비 체감 고통은 더 커지고, 간병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그간 최저임금 차등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간병비 문제 해결에 진심이라면 외국인 노동자 활용부터 진지하게 추진할 일이다.
양당은 저출생 대책도 내놨다. 국민의힘은 한 달 유급 아빠휴가와 육아휴직급여 인상을 제시했다. 이 정도로 출산 기피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지금도 제도가 없어 육아휴직을 안 하는 게 아니다. 눈치 보여 안 쓰고, 잘릴까 봐 겁나서 못 쓴다. 그래서 한국의 육아휴직 사용률(19.8%)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민주당은 모든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 1억원 대출을 약속했다. 첫째 자녀를 낳으면 무이자 대출로 전환, 둘째 출생 시 원금 절반 감면, 셋째 출생 시 원금 전액 감면 내용이다. 그럼 재원은? 지난해 혼인 건수 19만4000건을 단순 적용하면 연간 대출 재원만 19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양당 모두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저출생 원인은 얼추 나와 있다. 일자리, 주거, 양육이 주요인이다. 한은은 작년 말 보고서에서 이런 여건을 OECD 평균으로 개선하면 출산율을 0.85명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중엔 도시인구집중도를 OECD 평균으로 낮추면 출산율이 0.41명이나 올라간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사람도, 돈도 수도권으로 몰리는 바람에 집값이 뛰고 경쟁이 심해져 출산을 더 꺼리기 때문이다. 청년 고용률을 OECD 평균으로 높이면 출산율이 0.12명 높아진다는 항목도 있다. 물론 월급과 복지가 좋은 직장에 다닐수록 결혼과 출산에 좀 더 적극적이다. 현실적으론 주로 대기업 일자리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 일자리 비중은 14%로 OECD 중 가장 낮다(한국개발연구원, 고영선). 미국(58%)의 4분의 1, 프랑스(47%)의 3분의 1이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대기업 억제 정책의 결과다.
돌봄도, 저출생도 한국 사회의 숨통을 죄는 문제다. 돈으로, 국민 세금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것은 하수(下手)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 수도권 집중 완화, 대기업 일자리 늘리기 등 생각만 고쳐먹으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사회적 타협을 통한 구조개혁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국민을 설득하고 대타협을 이뤄내는 것이 정치다. 지금은 영 보기 힘든 모습이 됐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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