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의 퍼스펙티브] 의료 가성비 악화의 공범…자기부담금 50% 이상으로 올려야
실손보험이 대한민국 의료체계 개혁의 주요 과제인 이유
실손보험 유무로 치료 달라진다고?
병원에서 받은 첫 질문은 “실손 보험 있으세요?”였다. 의학적 필요가 아닌 실손보험 유무로 치료를 다르게 하겠다는 이 말이 경제학자인 내게는 위태로운 대한민국 의료보험체계의 구조 신호(SOS)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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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필요한 의료서비스 줄이는
본인부담금 순기능 잘 살려야
안과·정형외과 등에 혜택 많아
필수의료 부족사태에도 한몫
비급여항목 가격 통제 강화하고
실손 폐지 포함해 담대한 개혁을
」
직원은 “건강보험에서는 비급여지만 각종 검사와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주사 등은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다”며 실손 보험이 없는 40대 중년 남자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물론 그 직원은 주사의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실손 보험이 대한민국 의료를 어떻게 위태롭게 하는지 살펴보자.
가성비 높은 대한민국 의료 체계
우리나라 국민 건강과 의료 서비스의 수준은 경이롭다.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83.6세로 OECD 38개 조사 국가 중 3위다. 사망률도 낮다. 순환기계 질환 사망률은 조사 대상국 중 최저, 암 사망률은 세 번째로 낮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 의료의 영역인 회피 가능한 사망률 역시 다섯 번째로 낮다.
우리는 이러한 눈부신 성취를 비교적 저렴하게 달성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 의료비는 9.3%로 OECD 국가 평균수준(9.7%)에 미치지 못한다. 비교적 적은 돈을 쓰고도 높은 성취를 이루었으니, 한마디로 ‘가성비’가 높다.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은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개인이 입원 시 20%, 외래진료는 병원 종류에 따라 의원 30%, 병원 40%, 종합병원 50%, 상급종합병원 60%를 본인부담금으로 낸다. OECD 국가 평균인 약 20%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래서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막고자 본인부담 상한제를 도입했다. 일정 수준을 넘는 본인부담금은 면제된다. 그 결과 완벽하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의료시스템을 만들었다. 적절한 본인부담금이라는 인센티브의 마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덕적 해이 막는 적정 본인부담금
사실 본인부담금은 양날의 검과 같다. 적정 수준의 본인 부담금은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보건경제학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막는다고 한다(Einav and Finkelstein, 2018). 그런데 본인부담금이 너무 높다면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마저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너무 낮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공짜거나 싸니까 꼭 필요하지 않아도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다.
일본은 70세 생일이 되면 의료비의 본인 부담이 30%에서 10%로 줄어든다. 소득이 적은 노인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다. 의료비가 싸지니 입원과 외래 진료가 10% 정도 증가했다. 그 결과 목표했던 전체 본인부담 의료비는 줄지 않았다. 사망률, 주관적인 건강, 정신 건강의 변화도 없었다(Shigeoka, 2017). 본인 부담금을 낮춘 것이 별 소용이 없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노인의 태어난 달에 따라 약값 본인부담금이 크게 차이 나는 제도의 허점이 있었다. 이를 분석해보니 본인부담 약값 100달러가 증가하면 고지혈증 및 고혈압 치료제의 사용이 줄고, 노인 사망률이 13.9% 증가하기도 했다(Chandra, 2021).
우리나라는 “복지 줬다 뺏기”의 고난이도 개혁을 관철시켜 본인 부담금의 순기능을 강화한 역사가 있다. 과거 의료급여 1종 대상자는 외래 진료와 약국이 공짜였다. 그 결과 의료 과소비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막기 위해 2007년 7월 1000~2000원의 본인부담금을 신설했다.
홍콩과기대 최윤지 박사는 이들과 비슷하게 가난하지만 본인부담 수준의 변화가 없었던 의료급여 2종 대상자를 의료급여 1종 대상자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작은 본인부담금 도입으로 외래 진료가 10% 가까이 줄어들었고, 물리치료는 16.3%가 감소했다. 경증치료만 줄어들었고, 꼭 필요한 만성 질환의 치료는 변화가 없었다(Choi, 2023).
13조원 넘어선 실손보험 청구액
우리나라 의료의 가성비는 급격히 악화하는 중이다. 한국의 GDP 대비 총 의료비 증가 추세는 OECD 국가 중 1위다. 의료비가 많이 늘어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령화와 소득 증가다. 그런데 그 공범이 바로 실손보험이다. 2016년 이미 7조원이었던 실손보험 청구액은 2021년 13조 2000억원이 됐다. 같은 해 건강보험의 총진료비 93조 5000억원의 14% 수준이다.
실손보험은 2003년 도입돼 계약 건수가 2006년 1000만 건, 2009년 2000만 건, 2022년엔 4000만 건을 넘어섰다. 처음엔 의료비가 사실상 공짜였다. 2009년 이전까지는 자기부담금이 없었다. 의료이용이 급증했고, 보험사의 손해는 가파르게 커졌다.
본인부담금의 마법이 사라진 공간에 전 국민 ‘실손보험 타 먹기’ 경쟁이 불붙었다. 큰 사회적 비용이 들지만, 국민의 후생 증가는 제한적이었다(Ko, 2020).
결국 2세대 실손보험이 나왔고 10%의 자기부담금이 도입됐다. 자기부담금은 2017년엔 급여 10%, 비급여 20%로 조정됐고(3세대), 2021년엔 급여 20%, 비급여 30%로 올랐다(4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부담금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가령 병·의원 외래 이용 시 건강보험에서 30%의 본인부담금이 발생하는데, 여기서 80%를 실손보험이 보장해주면 실제 본인부담금은 6%(=30%의 20%)에 불과하다.
보호 필요한 환자와 노인 가입은 적어
실손보험은 의사 수입의 전공과목별 불평등에도 일조했다. 실손보험 이용 실적에 따라 의사 수입 증가 폭이 크게 달라졌다. 2021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기과(피부과·안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의 평균 연봉은 2020년 기준 3억 8579만원이다. 반면 필수의료인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는 평균 2억 3396만원이다. 이들의 격차는 지난 10년 동안 급격하게 벌어졌다. 인기과의 수입은 2010년에 비해 1.9-2.4배 상승했으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연봉은 오히려 16% 줄었다. 안과는 시력 교정술 및 백내장 수술, 정형외과는 관절 수술, 재활의학과와 마취통증의학은 도수치료와 비수술 척추치료 등으로 실손보험의 혜택을 본다. 필수의료 부족 문제에도 실손보험이 한몫하는 셈이다.
정말 보호되어야 할 환자와 노인층은 정작 실손보험에 가입하기 어렵다. 20~40대의 가입률이 80%를 넘지만 70대 이상의 가입률은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과소비로 실손 보험사의 누적 손해액은 2021년에 이미 3조원을 넘어섰다. 실손보험은 팔면 팔수록 보험사의 손해가 커진다.
금감원에서 복지부로 관리 주체 이관을
실손 보험을 악용한 사례는 많다. 가령 강남의 한 안과 병원은 브로커들에게 알선비를 주고 실손보험이 있는 백내장 진단 환자를 찾아내서 최대 1200만원인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 수술을 유도했다. 브로커는 실손보험 판매원이다. 이 중 일부 비용은 건강보험에 청구되므로 실손보험이 건강보험 재정 악화에도 기여하는 셈이다.
이번에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의 일부로 실손보험 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첫째가 급여/비급여 혼합진료 금지다.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하지만 구체성이 없으니 논란만 낳았다. 나머지 방안도 아직은 선언적 수준이다.
많은 비급여 항목이 병·의원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있어 실손보험 남용의 주된 대상이다. 독일과 같이 민영 건강보험과 의사 조합 간의 협상으로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 또 실손보험의 자기부담금을 50% 이상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
이와 더불어 실손보험의 관리 주체를 전문성이 부족한 금융감독원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것도 고려하자. 그래야 건강보험과 실손보험을 상호보완하는 개선이 수월해진다.
마지막으로 실손보험을 대체할 보충적 공적 보험의 도입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무엇보다 실손 보험이 국민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과연 투입 대비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기반으로 실손 의료보험의 폐지까지도 고려한 담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의사
Reference
Einav, Liran, and Amy Finkelstein. "Moral hazard in health insurance: what we know and how we know it." Journal of the European Economic Association 16.4 (2018): 957-982.
Chandra, Amitabh, Evan Flack, and Ziad Obermeyer. The health costs of cost-sharing. No. w28439.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2021.
Shigeoka, Hitoshi. "The effect of patient cost sharing on utilization, health, and risk protection." American Economic Review 104.7 (2014): 2152-84.
Choi, Yunji. “Does $1 matter? Healthcare demand response to a small copayment.” Doctoral dissertat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2023).
Ko, Hansoo. "Moral hazard effects of supplemental private health insurance in Korea." Social Science & Medicine 265 (2020): 11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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