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연평도의 포문은 늘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철재 2024. 3. 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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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지난 14일 가봤던 대연평도 서남쪽의 평화공원은 절경으로 유명하다. 평화공원 언덕에서 높이 40m의 병풍바위가 보였다. 병풍바위는 영화 ‘빠삐용’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한 절벽과 비슷하다고 해서 ‘빠삐용 바위’란 별명이 붙었다. 병풍바위 아랫단부터 알록달록한 자갈과 굵은 모래의 가래칠기 해변이 펼쳐졌다. 무엇보다 평화공원에서 즐기는 낙조(落照)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평화공원의 조기역사박물관에 입장하면 한때 조기잡이로 서울의 명동 못잖게 번성했던 연평도의 과거를 살펴볼 수 있다. 조금만 걸으면 등대가 나온다. 북한 간첩선의 길라잡이로 활용될까 우려해 가동을 중단했던 1974년까지 불을 밝혔던 등대다. 문재인 정부 때 9·19 군사합의를 계기로 남북 공동어로구역을 추진하고 서해 야간조업이 활발해졌다는 이유로 2019년 5월 17일 재점등했다. 현재 북측 창을 가려놔 북한에선 등대 불빛을 볼 수 없다.

「 서해수호의 날 맞는 대연평도
연평도 포격전 흔적 곳곳 생생
북 협박에도 날 선 해병의 눈빛
5분내 초탄 반격의 결의 넘쳐

해병 연평부대의 K9 자주포. 북한의 도발에 5분 내 반격하도록 포신의 방향은 늘 북쪽으로 둔다. [사진 박영준]

이 같은 관광명소가 평화공원으로 불린 까닭이 있다. 이곳이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평화공원 앞바다는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의 격전지였다. 대연평도는 2010년 11월 북한으로부터 기습적 포격을 받았다. 그래서 평화공원엔 제2연평해전 때 숨진 해군 6명과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해병대원 2명을 추모하는 시설이 들어섰다.

이날 잔뜩 낀 바다 안개는 대연평도 북쪽의 망향 전망대에서 북한 석도와 갈도의 자취를 숨겼다. 석도는 4㎞, 갈도는 4.5㎞가량 각각 대연평도에서 떨어졌다. 북한은 2010년대 무인도였던 갈도에 병력과 방사포를 배치했고, 장재도(7㎞)·대수압도(15㎞) 등 연평도 주변의 다른 무인도들도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100년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대연평도의 숲은 가끔 듬성듬성했다. 연평도 포격전에 불탄 소나무를 베고 새로 심으며 생겼던 ‘흉터’였다.

“중국 어선 많아도, 적어도 걱정”

22일은 제9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서해를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기념일이다. 1999년부터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서해5도를 대상으로 벌인 무력 도발로 군인 54명이 전사하고, 1명이 순직했으며,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평화공원에서 내려다본 서해에 무심한 너울만 일었다. 수많은 생명을 걸고 지킨 서해는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을까.

해군작전사령관을 지낸 박기경 예비역 해군 중장은 “서해 NLL과 서해5도가 없다면 북한은 해상에서 수도권을 바로 노릴 수 있다. 유사시 북한판 ‘인천상륙 작전’이 가능하다”며 “그래서 서해 NLL은 수도권의 방화선, 서해5도는 수도권의 방파제”라고 설명했다. 박기경 전 사령관은 “경기도 넓이만 한 황금어장을 확보할 수 있는 건 덤”이라고 덧붙였다. 서북도서(서해5도) 방위를 책임졌던 김태성 전 해병대 사령관은 “북한 입장에선 서해5도는 자신들 목에 들이댄 비수(匕首)”라고 말했다. 김 전 사령관에 따르면 서해5도는 황해도와 멀지 않기 때문에 각종 정보자산으로 북한 내륙의 동향을 속속 들여다보며, 유사시 북한 후방으로 반격할 수 있는 거점이다.

특히 백령도는 150㎞ 안팎 거리의 평양에 한 방 먹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통일 이후 중국의 북해함대와 항공모함 기지가 있는 산둥(山東)반도를 견제할 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을 동쪽(한반도 방향)으로 밀어붙여 서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안칠성씨는 연평도 포격전 피해 지역에 세워진 연평도 안보교육장에서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안 씨는 “포격전 당시 북한은 먼저 해병대 기지가 몰려 있는 섬 북쪽을 공격했고, 1시간 후 민가가 밀집한 남쪽을 때렸다”며 “많은 사람들이 배를 기다렸던 여객터미널로 방사포탄이 날아와 다들 황급히 엎드렸는데, 다행히 살짝 빗나가 바다로 떨어졌다”고 기억했다. 그는 “어업으로 주로 먹고사는 연평도에선 중국의 불법 조업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그런데 중국 어선단이 많이 몰려도 걱정, 요즘처럼 드물어도 걱정”이라며 “북한이 또 뭔가 일을 꾸미려고 최근 중국에 조업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는가 싶다”고 우려했다.

꽃게 조업기를 노려 도발한 북한

안씨의 기우(杞憂)로만 여겨선 안 되는 게, 북한의 발언이 심상찮아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과 지난달 두 번이나 ‘북방한계선’은 북한의 해상주권을 침해하는 불법적 경계선이며, 한국이 북한의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전쟁 도발로 간주하고 무력을 행사하겠다고 협박했다. 북한은 먼저 엄포를 놓고 나중에 도발하는 패턴을 그동안 보여왔다.

제1연평해전부터 연평도 포격전까지 서해 일대에서의 북한 무력 도발은 5번 있었는데, 그중 4번이 꽃게 조업기와 겹친다. 서해에서 꽃게는 매년 4~6월과 9~11월에 많이 잡힌다. 천안함 피격만 3월에 일어났고, 나머지는 모두 6월과 11월에 발생했다. 올해도 다음 달 꽃게잡이가 시작한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은 김정은의 발언을 가볍게 보지 않고 서해에서의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초부터 비상과 훈련이 이어졌지만, 해병 연평부대 포7중대의 장병은 날이 바짝 섰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포화를 뚫고 북한에 되받아쳤던 부대다. 부대 구호는 ‘우리는 승리했다’. 14일에도 주특기 훈련으로 부대 전체가 분주한 분위기였다. 포7중대의 K9 자주포 포문은 늘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5분 안에 북한의 목표 지점으로 초탄을 날리기 위해서다. 명령만 떨어지면 자주포로 달려가 사격준비를 마치는 훈련을 불시에 연다. 자다가도, 샤워 중이라도 이 훈련의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이성환 해병 대위(포7중대장)는 “저놈들이 한 번 더 (연평도로) 쏘기만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자신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눈빛이 이글거렸다. 마음이 절로 든든해졌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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