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두 국가론’이 대남 적화 노선 폐기는 아니다

2024. 3. 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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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Two Koreas)론’으로 남북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대남노선 자체의 변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대남노선은 한반도의 공산화이고, 이를 위한 두 정책적 수단은 북한식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이다.

북한식 평화통일방안은 고려연방제와 통일전선전략이다. 고려연방제는 ‘1민족·1국가·2체제’를 의미한다. 통일전선전략은 한국사회에 친북세력을 확산시켜 연방제 상황에서 북한으로 흡수 통일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북한, 남북 관계 전환 선언했으나
무력통일 노선의 변화는 아닌듯
언제든지 군사 도발할 우려 커져

시론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북한과 극명하게 상반된다며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단정했다. 통일전선부 등 대남사업부문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고, 투쟁 원칙과 방향의 전환을 주문했다. 고려연방제와 통일전선전략의 폐기를 지시한 셈이다. 하지만 지난 18일 서울을 겨냥한 초대형 방사포 발사 훈련에서 보듯 여전히 무력통일방안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역을 평정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남반부의 전 영토를 평정한다는 표현도 사용했다.

남조선과 남반부는 한반도를 하나로 인식하는 개념이다. 평정은 반란이나 소요를 진압한다는 의미로 완전한 타국 관계에 적용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전쟁 시 대한민국을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하는 문제’를 언급했는데, 완전한 타국을 편입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다.

북한이 2022년 9월 제정한 ‘핵 무력 정책법’은 핵 무력의 사명 중 하나로 ‘영토 완정’을 규정했다. 완정(完整)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완전히 정리해 통일함’이다. 1949년 당시 김일성 주석도 정권 수립 이후 첫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을 반동세력으로 규정하고 “멀지 않은 장래에 국토의 완정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1년 반 뒤 북한은 남침을 단행했다. 따라서 두 국가 선언은 대남적화라는 기본노선의 변화는 아니다. 실현 불가능한 북한식 평화통일방안인 고려연방제와 통일전선전략의 폐기를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지만,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점에서 무력통일방안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오히려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김 위원장의 두 국가론이 지니는 위험성이다. 김 위원장의 주장은 평화공존론이 아닌 교전 중인 두 국가론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교전국 관계로 전환될 경우 전시체제에 상응하는 고비용 구조가 형성되고,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진다. 분단체제가 장기간 지속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 고정간첩과 북한 동조세력이 잔존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교전국 관계 선언으로 이들은 자동적으로 ‘전시 요원’으로 전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에 의한 주체와 원점이 불분명한 회색지대 도발이나 ‘외로운 늑대’를 가장한 테러와 교란 행위가 있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남쪽 국경선이 군사분계선(MDL)이라며, 북방한계선(NLL)을 ‘불법무법’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하면 전쟁 도발로 간주하겠다”고 위협했다. 대한민국은 NLL이 확고한 해상 경계선이며, 절대 수호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서로 배치된다.

물론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과 러시아에 대한 대량의 탄약공급 등을 고려할 때 전면적인 무력도발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4대 세습 의지를 보이는 김 위원장이 전면도발의 위험성을 감수할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남북을 교전국 관계로 전환한 북한의 전략에 따라 무력충돌 가능성이 현저하게 커졌다고 봐야 한다. 특히 북한이 ‘핵 지렛대 전략’을 구사할 우려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은 평화가 일순간에 깨질 수 있으며, 자주국방과 안보적 대비 태세를 확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일본은 북한과 물밑 접촉을 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피즘’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 앞에 대한민국이 외롭게 서 있다. 냉혹한 외교·안보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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