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포크 공사의 소설 같은 사랑과 죽음
조지 포크(1856~1893·사진)는 미국 아나폴리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인물 좋고 성적도 우수했던 그는 생도 시절 일본어 학습에 몰두했다. 사관학교를 마친 포크 중위는 아시아 함대사령부 근무를 신청해 일본 나가사키에 배속됐다. 그때 나이가 27세였다.
젊은 장교들은 주말이 되면 일본의 풍물을 즐겼다. 그들이 즐겨 찾는 곳은 언덕 위의 전통 찻집이었다. 찻집 주인의 딸 가네 무라세(金村瀨)는 미인에다 영어도 유창했다. 그런데 찻집 주인인 노부부가 그 딸을 대하는 태도가 부모 자식 사이 같지 않고 마치 하인이 상전을 대하듯 했다.
그 찻집에서 포크 중위가 단연 스타였다. 찻집 딸과 포크 중위는 곧 사랑에 빠졌다. 포크가 애인에게 부모의 비밀을 물어봤더니 자기는 본디 사쓰마(薩摩) 사무라이의 딸이었다고 고백했다. 내란 와중에 부모는 피살되고 자기만 살았고, 집안의 하인이었던 지금의 부모가 어린 자기를 안고 도망쳐 나가사키에 숨어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 무렵 루시어스 푸트(1826~1913)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사임하자 무관인 포크가 1885년 대리공사로 조선에 부임했다. 포크는 아내와 함께 조선에 살고 싶었으나 박봉에 따른 생활고로 공사직을 사임했다. 당시 고종 임금은 봉급을 대신 지급할 터이니 한국에 남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포크는 공인의 몸이라 그럴 수 없었다. 1887년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현지에 정착해 아내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학 교수로 일하던 포크는 일본으로 귀화한 지 7년 뒤 닛코(日光)의 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심장마비 사망설도 있지만, 처가를 겨냥한 사무라이의 복수살인이란 주장(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을 나는 신뢰한다. 줄거리는 조금 다르지만,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게 아닐까.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륜녀 신음 소리만 들렸다…몰래 녹음했는데 괜찮다고? [당신의 법정] | 중앙일보
- "통장에 50억원 있어야 발급"…아이유 쓰는 신용카드 뭐길래 | 중앙일보
- “한국 호구냐”“스벅보다 낫다” 캐나다 국민커피 마셔본 후기 | 중앙일보
- "열나 짬뽕나" 그 개그우먼, 무속인 됐다…"반신마비 신병 앓아" | 중앙일보
- "활어회 무료로 드세요"…'바가지 논란' 소래포구 파격안 내놨다 | 중앙일보
- 조수진, 아동 성폭행범 변호하며 "아버지가 가해자일 수도" | 중앙일보
- "가족 오면 여행비 절반 준다" 70억 쏟는 강진군 초유의 실험 | 중앙일보
- 모두가 말린 전시 대박낸 남자 "돈 될 작품? 여기 가라" | 중앙일보
- 류준열 환승연애→그린워싱 논란…"북극곰 살린다더니 골프광" | 중앙일보
- 공사 중에 돌연 잠적…'인테리어 먹튀 사기' 속출하는 까닭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