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의 과학 산책] 직관의 자유
“‘벌써 리허설 시간인가요. 내 곡이 뭐였죠. 드보르자크인가요?’ 그러고는 드보르자크를 연주해요. ‘아니면 엘가인가요?’ 하며 그 곡을 연주하죠. 뭐든 상관없었어요. 재키는 마치, 곡을 다 알고 태어난 것 같았거든요.”
영국의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1945~1987)에 대한 한 음악가의 회상이다. 19살 뒤프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녹음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해석한 엘가에 매료됐다. 음반사 그라모폰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세 명의 첼리스트 중 하나로 그녀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뒤프레와 친밀하게 교류했던 여러 음악가는 “작곡을 해 나가면서 연주하는 것 같다”고 그녀의 재능을 극찬했다. 뒤프레의 마음에는 음악이 가득했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손의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수학자에게서 ‘직관의 자유’를 목격한다. 나이테처럼 압축된 결과를 보자마자 이해하는 능력이다. 마치 그 정리를 알고 태어난 사람 같다. 심지어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정확하게 추측해 내기도 한다. 그들의 직관은 상상의 나래만큼이나 자유롭지만, 천체 망원경보다 정확하다. 미로를 보자마자 어떻게 바로 길을 떠올리고, 지름길만 찾아다니는 걸까. 대가들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그들 역시 모든 시행착오를 다 생각해 보았다는 것이다. 놀라운 성실함으로 말이다.
논문에 남긴 내용은 그들 생각의 깊이와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들 생각의 허점, 빈틈으로 보였던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그 틈새에 깊고 깊은 사고의 조각들이 담겨있다. 생각의 깊이를 속일 수 없어 주어진 그릇에 넘쳐흐를 뿐이다. 안타깝게도, 뒤프레는 젊은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으로 투병을 시작한다. 마지막 연주에서는 손의 감각을 잃은 채 시각만으로 운지를 한다. 흠 많았을 그 연주는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값진 노력으로 얻어진 자유는, 그 자유를 가졌던 사람의 이야기는, 이 땅에 남은 이들에게 오랜 영감으로 남고는 한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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