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로 시작해 오타니로 끝났다…고척을 뒤흔든 서울시리즈 열풍

배영은 2024. 3. 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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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는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20일 서울시리즈 1차전에서 8회 쐐기 적시타를 친 뒤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오타니. 뉴스1


1994년 4월 9일,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MLB) 마운드를 밟았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50)는 남다른 감회를 감추지 못했다. 그 후 30년이 흐른 2024년 3월 20일, 한국의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역사적인 MLB 개막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MLB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20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MLB 서울시리즈 1차전을 벌였다. 올해 MLB 정규시즌 개막을 알리는 '월드투어' 2연전의 첫 경기였다.

서울시리즈는 최근 수개월 간 한국·미국·일본 야구계를 아우르는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올해 다저스와 10년 7억 달러에 사인한 '수퍼스타' 오타니 쇼헤이(29)가 서울에서 이적 후 처음으로 타석에 섰다. 서울시리즈 입장권은 1층 테이블석이 70만원에 달하고, 외야 4층 지정석도 12만원이나 하는 고가였다. 그런데도 1차전 티켓이 예매 오픈 8분 만에 매진됐다. 고척돔 외부에 임시로 만든 공식 머천다이즈 스토어 앞에는 오후 1시 쯤부터 기나긴 '오픈런' 줄이 늘어섰다. 특히 오타니의 등번호가 찍힌 흰색 유니폼은 순식간에 팔려 나가 바닥을 드러냈다.

20일 서울시리즈 1차전에서 8회 쐐기 적시타를 친 뒤 1루로 달려가는 오타니(17번)와 환호하는 동료들. 뉴스1

경기 전 그라운드는 3개국 프로야구 레전드들의 사랑방과도 같았다. 한국의 김하성(샌디에이고), 일본의 오타니·야마모토 요시노부(다저스)·다르빗슈 유·마쓰이 유키(이상 샌디에이고)등이 양 팀에 몸 담고 있기에 더 그랬다.

켄 그리피 주니어, C.C 사바시아, 애덤 존스, 데이브 윈필드 등 전설적인 MLB 스타들이 경기 전 선수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본 프로야구 레전드인 후루타 아쓰야, 마쓰자카 다이스케, 우에하라 고지, 후지카와 규지 등도 자국 취재진들과 함께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관찰했다. 김경문 전 NC 다이노스 감독, 김병현, 류현진(한화 이글스), 황재균(KT 위즈) 부부 등 한국 야구인들과 차은우, 걸그룹 에스파 등 인기 연예인들도 관중석을 지켰다.

그중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손님'은 역시 오타니의 아내 다나카 마미코 씨였다. 서울에서 처음 얼굴이 공개된 다나카 씨는 경기 시작 20분 전 가족들과 함께 1루쪽 내야 관중석에 나타났다. 그 순간 야구장의 모든 시선이 다나카 씨 쪽으로 쏠렸다. 그는 오타니가 타석에 설 때마다 두 손을 모으며 응원했고, 큼직한 타구가 파울라인 밖으로 벗어나자 얼굴을 감싸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오타니는 그런 아내 앞에서 결혼 발표 후 첫 안타를 신고했다. 두 번째 타석이던 3회 2사 후 샌디에이고 선발 다르빗슈를 상대로 우전 안타를 쳤다. 1루를 밟은 오타니가 더그아웃의 동료들을 향해 몸을 흔드는 유쾌한 세리머니를 펼치자 다나카 씨도 함박웃음으로 화답했다. 오타니는 또 다저스가 4-2로 역전한 8회 1사 1·2루에서 좌중간에 떨어지는 1타점 적시타를 쳐 쐐기점도 뽑았다. 최종 성적은 5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였다.

20일 서울시리즈 1차전에서 다저스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하고 남편 오타니를 응원하는 아내 다나카 마미코 씨(가운뎃줄 왼쪽에서 3번째). 뉴스1


샌디에이고 주전 내야수로 자리 잡은 한국인 내야수 김하성도 서울시리즈의 주인공이었다. 4년 만에 고척돔 타석에 들어선 그를 향해 한국 팬들의 커다란 함성이 쏟아졌다. 김하성은 4회 무사 1루에서 볼넷을 골라 선취점의 발판을 놓았지만, 나머지 세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지는 못했다. 대신 자신의 장기인 수비로 두 차례 명장면을 만들어 내 고척 만원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날 시구는 다저스에서 9년, 샌디에이고에서 2년간 뛰었던 박찬호가 맡았다. 김하성이 특별히 포수 자리에 앉아 박찬호의 공을 받았다. 박찬호는 공을 던지기 전 후배 김하성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존중의 뜻을 전했다. 이어 파드리스와 다저스가 반반씩 섞인 '파저스(Podgers)' 유니폼을 걸쳐 입고 깨끗하고 정확하게 공을 던졌다. 손에는 30년 전 MLB 데뷔전에서 썼던 글러브가 들려 있었다. 다저스 더그아웃에 있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박찬호의 시구가 끝나자 머리 위로 박수를 보내며 예우를 표현했다.

20일 서울시리즈 1차전에서 파드리스와 다저스가 반반씩 섞인 '파저스(Podgers)' 유니폼을 걸쳐 입고 시구하는 박찬호. 뉴스1


경기는 접전 끝에 다저스의 5-2 역전승으로 끝났다. 다저스는 1-2로 뒤진 8회 초 무사 만루에서 희생플라이와 상대 실책으로 승부를 뒤집었고, 무키 베츠와 오타니의 연속 적시타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두 팀은 21일 홈과 원정을 바꿔 서울시리즈 2차전을 벌인다. 다저스 선발은 야마모토, 샌디에이고 선발은 조 머스그로브다.

배영은·김효경·고봉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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