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션 럿’에 빠진 애플, AI 시대에 어쩌다… [경영전략노트]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3. 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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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애플이 전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약 3948조원)를 돌파할 때만 해도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불과 1년 만에 시장 평가는 완전히 돌아섰다. AI(인공지능)가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는 동안 애플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미국 증시 호황세에도 주가는 거꾸로 흘렀다. 올해 1월 마이크로소프트(MS)에 시총 1위 자리를 내줬고, 엔비디아 추격에 2위마저 위태롭다.

올해 들어서만 애플 주가는 12% 빠졌다. 공매도도 쏟아졌다. 애플은 지난 2월 뉴욕 증시에서 공매도 수익이 2번째로 높은 종목이었다. 바클레이즈·UBS 등 일부 투자은행(IB)들은 이미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17년간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던 ‘넘사벽’ 기업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을까.

[1] AI 홀대, 대가는 컸다

‘올인’ 애플카는 실패

‘테슬라 잡으려다 MS에 뒤졌다.’

애플의 부진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매달리다 AI를 놓쳤다는 얘기다. 지난해 오픈AI가 챗GPT를 선보인 이후 글로벌 빅테크 성장 테마는 AI로 바뀌었다.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경쟁사는 AI에 올인했다. 하지만 애플은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애플이 매달린 건 AI가 아닌 최근 프로젝트를 중단한 ‘애플카’였다.

시계추를 2008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애플은 금융위기 여파로 파산 위기에 몰린 제너럴모터스(GM) 인수를 검토했다. 하지만 당시 CEO(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최종적으로 GM 인수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아이폰에 집중하며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다.

6년이 지난 2014년, 아이폰과 애플워치 이후 차기 ‘폼팩터’를 고민하던 애플은 다시 자동차로 눈을 돌렸다. 당시 테슬라가 자율주행 상용화 가능성을 보였고, 구글 역시 자율주행 테스트를 단행하던 때였다. 잡스 사망 이후 애플 지휘봉을 잡은 팀 쿡 CEO는 애플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애플 임원 사이에선 ‘삼성과 GM 중 어느 쪽과 경쟁해야 하나’라는 자조적인 농담까지 오갔다. 지난 2월 내려진 최종 결과는 실패였다. 10년간 100억달러(약 13조원)라는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지만 허사였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했다. 제품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명확히 설정한 뒤 연구에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집중했다. 예를 들어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맥북 등 ‘휴대용 IT 기기’를 선택했고 집중했다. 그러나 AI 대신 자율주행을 선택한 건 오판이었다. 애플이 기술 우위를 나타내기 힘든 영역이었다는 뒤늦은 후회도 소용없었다. 결과적으로 MS가 AI에 집중해 성과를 내는 동안 제2의 테슬라, 아니 테슬라를 넘는 자율주행차를 꿈꿨던 애플은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잃었다.

‘기회비용’을 날린 애플은 AI 사업에서 여전히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본업인 스마트폰에서 삼성전자와 구글은 이미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폰을 출시했지만, 애플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2월 주주총회에서 팀 쿡 CEO는 AI 투자를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인지 설명은 없었다.

이는 2011년 시리가 첫선을 보일 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아이폰4S에 음성 서비스인 ‘시리’를 탑재했을 때만 해도 애플은 AI 선구자였다. 그러나 잡스가 시리를 세상에 소개한 다음 날 사망하며, 애플 내부에서 시리 사업이 갈 길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폰이 널리 보급되며 시리가 아마존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보다 많이 사용되는 것 같지만, 정확성과 유용성 면에서 경쟁 모델보다 한참 뒤처진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자사 기기 간 연동을 강화하고, 경쟁사 기기를 배제하는 애플 특유의 ‘폐쇄적 생태계’가 AI 혁신에 독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AI는 데이터를 학습시키기 위한 열린 생태계가 기본이라, 폐쇄적인 애플의 기업 문화와 전략과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 애플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포함한 생성 AI 기술 연구 성과를 선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이폰이나 맥북 등 자사 기기를 대상으로 AI를 적용하는 데 몰두했다. 예를 들면 애플의 운영체제(OS) 내에 사진 파일을 AI로 인식해 자동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기술, 채팅하면 추천하는 단어를 AI가 자동으로 완성하는 기술 등이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틀에 박힌 혁신(Innovation Rut)’에 빠졌다는 혹평이 나온다. 주력인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에서도 전혀 ‘폼팩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다.

길 루리아 DA데이비슨 애널리스트는 “경쟁사가 폴더블폰에 이어 AI 스마트폰을 내놓고 초고화질 카메라로 화제를 모으는 동안, 아이폰과 애플워치의 혁신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기대주였던 MR 헤드셋 ‘비전 프로’ 성적도 부진하다. 애플이 2015년 워치를 출시한 지 9년 만에 내놓은 신제품으로 주목받았으나 시장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아이폰 등장 같은 혁신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3500달러(약 460만원)에 달하는 고가로 접근성이 낮은 데다 무게, 눈부심, 시야각 등 문제로 초기 반품이 줄을 이었다.

세계 최고의 IT 기업 애플이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성장 테마인 AI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며 주가는 하락세다. 사진은 애플 강남 매장. (애플 제공)
[2] ‘벽에 싸인 애플 정원’ 한계

EU 앱스토어 독점 포기…과징금 부담

애플 수익에서 효자 노릇을 해온 앱스토어 독점도 끝나간다.

애플은 지금까지 하드웨어부터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까지 독자 생태계를 고집해왔다.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앱을 다운받고 애플 결제 시스템만 이용하고 애플 제품끼리만 호환되도록 하는 식이다. “소비자를 우리 생태계에 가둬야 한다”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에 따랐다. 일명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월드 가든·Walled Garden)’ 전략이다. 이는 이용자들이 애플 외 기기를 사용하거나 삼성 갤럭시 등 타 생태계로 이동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구글이 초창기부터 제3자 앱마켓을 쓸 수 있도록 한 것과 다른 길을 걸었다.

앱스토어 출시 당시에는 중소기업과 1인 개발자도 앱스토어를 통해 전 세계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애플에도 좋은 선택이었다.

애플이 인앱 결제에 부과하던 최대 30%의 수수료는 매년 서비스 부문(앱스토어 외 애플뮤직, 아이클라우드 등 포함)에서 수백억달러의 수익을 일궈냈다. 원가가 적어 이익률이 70%에 달했다. 실물 제품 이익률의 2배가량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공급망 차질에 따른 하드웨어 매출 부진을 상쇄한 것도 서비스 부문이다. 번스타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앱스토어 매출은 약 241억2000만달러(약 31조6647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 3월 7일 유럽연합(EU) 27개국이 디지털시장법(DMA)을 전면 시행하며 상황이 돌아섰다.

DMA는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한 규제다.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지정해 이들이 제공하는 OS, SNS, 검색엔진 등 20여개 서비스에 의무를 부여했다. 애플과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 MS, 메타 등이 지정됐다.

이들 기업은 외부 앱과 대체 앱스토어 설치 등 자사 플랫폼과 제3자 서비스 간 상호 운용을 허용해야 한다. 또한 자사 서비스를 경쟁 업체보다 더 잘 보이도록 하는 ‘우대 행위’도 해선 안 된다. 이런 의무를 위반하면 전 세계 연간 총매출의 최대 10%가 과징금으로 부과된다. 반복적으로 위반 시 비율이 최대 20%로 상승한다.

DMA 시행은 단순 과징금 위험을 넘어 애플의 성장동력이었던 ‘폐쇄적 생태계’를 포기하도록 압박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드 가든 전략은 지난 십수 년간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줬지만 규제기관이 뛰어들면서 파트너들은 이탈하고 경쟁자들로 둘러싸이게 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지난 3월 4일에는 음원 스트리밍 앱 시장에서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EU 경쟁당국이 18억4000만유로(약 2조642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애플 전 세계 매출의 0.5%에 달하는 금액이다. 당초 예상치였던 과징금 5억유로(약 7181억원)의 3배가 넘고, EU 반독점법 위반 관련 과징금 액수로는 세 번째 규모다.

법적 리스크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애플이 폐쇄적 생태계로 제한을 가해 시장 경쟁을 방해했다며 반독점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해 말 애플이 의료기술 기업 마시모의 혈중 산소 측정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며 해당 기술이 들어간 핵심 상품 애플워치의 미국 수입을 금지했다. 이에 애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애플워치에서 혈중 산소 측정 기능을 제거했다.

[3] 중국만 바라보다 뒤통수

로컬 브랜드에 점유율 4위 추락

중국은 애플에 특별한 시장이다. 애플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한다. 중국인의 아이폰 사랑은 애플을 키워온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해 4분기 중국 매출이 전년 대비 13% 감소하며 기대 이하 성적을 냈다. 올해도 중국 소비자의 ‘애플앓이’는 보이지 않는다. 이례적으로 새해 가격 할인까지 나섰지만 올해 첫 6주 동안 중국에서 아이폰 판매량은 전년 대비 4분의 1가량 쪼그라들었다(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

그 자리는 중국 토종 브랜드가 꿰찼다. 올해 첫 5주 동안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첨단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 메이트60의 애국 소비 물결을 타고 판매량이 64% 폭증했다. 보급형 스마트폰 강자 비보는 전년 대비 15% 줄었으나 같은 기간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팔았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전년 대비 7% 위축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경쟁사 대비 아이폰 판매 부진이 크게 두드러진다. 애플은 중국 태블릿PC 시장에서도 점유율이 떨어져 화웨이에 왕좌를 내줬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4분기 시장점유율 30.8%로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은 30.5%로 2위다.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1년 사이 19%에서 15.7%로 떨어져 4위까지 추락했다. 비보가 17.6%로 1위를 지켰고, 화웨이는 점유율이 16.5%까지 급상승해 2위를 꿰찼다.

올해 1분기 전망도 밝지 않다. 중국 시장 부진으로 올해 1분기 애플의 매출이 전년 대비 4%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 낙관론자로 유명한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조차 최근 애플 전망을 ‘호러쇼’에 비교하며 “중국 수요가 매우 부진하다”며 비관론으로 돌아섰다.

애플의 기대주였던 MR 헤드셋 ‘비전 프로’ 성적도 부진하다. 고가로 접근성이 낮은 데다 무게, 눈부심, 시야각 등 문제로 초기 반품이 줄을 이었다. (애플 제공)
[4] 자발적 후발 주자 전략?

6월 세계개발자회의 분수령

애플이 이번 위기를 극복할지를 놓고 견해가 엇갈린다. 맥스 바서만 미라마캐피탈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애플은 훌륭한 현금흐름과 대차대조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AI 시대 새로운 리더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리스 월리엄스 웨이브캐피털매니지먼트 최고전략가도 “추진 동력이 없는 애플이 생성형 AI 시장을 선점한 경쟁자들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반면, 애플의 잠재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옹호론도 존재한다.

애플은 후발 주자로 뒤늦게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면서도 시장을 장악해왔던 저력이 있다. 2019년 4월 세계 최초 5G가 상용화되고 삼성 등 글로벌 제조사들이 5G 스마트폰을 잇따라 내놨을 때 애플은 LTE 모델만 고집했다. 이듬해 10월 첫 5G폰인 아이폰12를 선보였는데, 이 제품은 역대 아이폰 중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2014년 출시된 애플워치 역시 최초는 아니었으나, 현재 경쟁사를 누르고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이끌고 있다.

2016년 첫 공개된 에어팟 역시 ‘콩나물’ ‘담배꽁초’라며 조롱받았지만, 압도적 1위로 올라섰다. 이른바 ‘애플빠’로 불리는 충성 고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애플이 삼성전자가 처음 선보인 AI 폰 반응을 충분히 살핀 뒤 시장에 진입하고, 빠른 시일 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팀 쿡 CEO 역시 “생성 AI와 AI를 통해 애플에 엄청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강력한 AI 부문 투자 의지를 밝히고 있다.

벤 레이츠와 닉 먼로 멜리우스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6월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발표할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들은 “아이폰 이후 가장 중요한 제품”이라며 “새로운 AI가 애플의 서비스 비즈니스에 활력을 불어넣고, 2025년 수많은 사용자가 휴대폰을 업그레이드하도록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가 전망도 어둡지만은 않다. 아미트 다리야니 에버코어ISI 애널리스트는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 ‘시장수익률 상회’와 목표주가 220달러를 유지했다. 현 애플 주가 171달러(3월 12일 기준)를 고려하면 30% 가까운 상승 여력이 있다. 월가에서 애플에 대해 투자의견을 제시한 애널리스트는 43명으로 이 중 25명(58%)이 매수(비중 확대·시장수익률 상회) 의견을 보였다. 평균 목표주가는 199.86달러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1호 (2024.03.20~2024.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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