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너무 몰라", "선거 닥치니 돈 풀어"... 아우성치는 '물가 민심'

박수림 2024. 3.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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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르포] '대파 875원 발언' 직후 서울 서초·동작·동대문·용산 시장·대형마트 돌아보니

[박수림, 김화빈 기자]

 지난 19일 찾은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이곳을 찾아 "물가를 내릴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즉각 실행하겠다"고 발표했다.
ⓒ 박수림
 
"이 정권 들어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어요. 그동안 정말, 정말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싶었어요.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할 거예요." -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만난 김성자(68)씨

"지난 설에 차례상을 차릴 때도 부담이 컸는데 그땐 가만히 있다가 선거 직전에야 정부·여당이 자금을 풀고 있어요. 민생을 미리 좀 챙기지 그랬나..." - 남성사계시장에서 만난 강아무개(67)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과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기자의 입에서 "물가"라는 말이 나오자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마트는 전날(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찾아 '875원'인 대파 한 단을 들어 올리며 "합리적"이라고 했던 곳이고, 시장은 1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찾은 곳이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이 두 군데 외에도 동대문구 청량리 종합시장과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을 찾아 '물가 민심'을 살펴봤다. 시장 상인들이 "오늘이 제일 싸다"고 목청을 높여도, 마트 매대에 "농식품부 할인 지원" 표시가 크게 붙어 있어도 시민들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기자와 만난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의 '대파 발언'에 "물가도 모르는 대통령"이라며 분통을 터뜨렸고, 뒤늦은 정부의 대책에 "선거용 민심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일부는 "정부의 농축산물 자금 지원이 도움이 된다"고 했으나, 윤 대통령이 방문한 마트에서 만난 소비자조차 "할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한도가 존재하는지 몰랐다"면서 카트에 담았던 식재료를 도로 매대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윤석열 간 하나로마트 양재점] 30% 할인이라 왔는데... 1만원 한도 넘어 '반납'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2024.3.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지난 15일 정부와 여당은 "높은 농축산물 가격에 대응해 긴급가격안정자금 1500억 원을 다음 주부터 투입하는 것에 협의했다"고 알렸다. 윤 대통령이 찾은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의 '875원 대파'는 이 자금 때문에 가능했다.

윤 대통령이 다녀간 다음날인 19일에도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는 "농식품부 할인 지원"'이라는 문구가 쓰인 농산물이 곳곳에 있었고 사과·배·오이 등 10여 가지 품목은 18일부터 20일까지 30% 할인가에 판매 중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정부가 할인 지원하니까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쭉 할인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서민들한테는 정치인 방문보다 제품 가격 내리는 게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다만 한 매장 직원은 이날 "농식품부 할인 지원 제품이라고 쓰여있는 채소·과일·생선 등을 다 포함해서 (행사기간 3일 동안) 1인당 1만 원까지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날 정상가 8900원인 6개들이 '실속사과' 한 봉지는 30%인 2670원을 할인하고 있었는데, 4봉지만 사도 할인 금액 1만 원을 초과해 더는 할인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1인당 할인 지원 한도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지아무개(75)씨는 "나는 사과를 4봉지 담았는데 그럼 (이미 할인 한도가 초과됐으니) 나한테는 대파가 (30% 할인된) 875원이 아니라 1250원이었네"라며 "아유, 이렇게 물가가 높을 때는 1만 원 한도를 두지 말고 (한도를) 조금 더 풀어줘야 여러 제품을 살 수 있고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지씨 카트에는 농식품부 할인 지원 코너에서 골라온 실속사과 4봉지, 대파 9단, 오이 3봉지, 파프리카 1봉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할인 한도가 이미 다 찬 걸 알고는 오이와 파프리카는 도로 매대에 내려놨다.

지씨는 "정부·여당의 할인 지원과 총선 투표는 별개"라며 "선거는 공약과 공보물을 보고 판단할 거다. 그래도 선거 끝나고도 정부·여당이 물가에 신경을 좀 써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찾은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이곳을 찾아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 박수림
  
구로구에서 할인 소식을 듣고 일부러 양재점까지 왔다는 김성자(68)씨는 "대파 한 단에 875원은 (일반적인 물가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라며 "이번 정권 들어선 후 물가가 너무 비싸다. 정부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이제야 물가 잡는다고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방문한 날에 이어 이틀 연속 양재점을 찾았다는 임아무개(72)씨는 "할인 기간이 3일이라 너무 짧다"며 "할인 기간이 끝나면 또 가격이 팍 올라갈 것"이라고 우려했다(이후 할인을 27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 - 기자 주).

[한동훈 간 남성사계시장] "대파 한 단 4000원인데... 대통령이 진짜 물가 모른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을 방문해 동작을 지역구에 출마한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19일 오후 1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총선에 출마한 장진영·나경원 예비후보(각 동작갑·을)가 남성사계시장을 찾았다. 지지자들은 이들의 이름을 연호했고 몇몇 상인은 반갑게 악수를 나눴으나, 얼굴을 찌푸리거나 "(장사에) 도움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인도 있었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소비자들 사이에도 전날 윤 대통령의 '대파 발언'이 화제였다. 

문윤순(77)씨는 "(윤 대통령이 찾아간) 그 마트를 제외하고 대부분 시장과 마트의 경우 대파 가격은 2500원에서 4000원 사이"라며 "(대파 한 단을 875원이라고 이야기한) 대통령이 진짜 물가를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홍아무개(65)씨도 "요즘 대파 한 단에 4000원 정도"라며 "대통령이 물가를 그렇게 잘못 알면 어떡하나. 시장에 와서 좀 보고 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홍씨는 "정부·여당의 지원 자금도 선거용, 한 위원장이 다녀간 것도 선거용"이라며 "정치인들의 말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또 바뀔 수 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강아무개(67)씨는 "자금을 푼다고 당장 야채 가격이 내려가냐"며 "아직도 체감상 과일 가격이 너무 높다. 오늘도 상인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너무 비싸) 사지 않았다"고 전했다.

민금순(70)씨도 "사과는 (1년에 한 번 수확하고 파는) 저장 과일"이라며 "새 상품들(햇과일)이 나오면 몰라도 (할인 자금을 투입한다고 해서) 저장해 둔 사과 물가가 잡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서 더 일찍 대응했다면 어떻게든 물가가 잡혔을 텐데 현 정부는 서민 물가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청량리 종합시장·이마트 용산점] "지금 돈 푼다고 되겠나... 선거용 아니겠나"
 
 19일 오후 4시 30분께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고물가 속 저렴한 제품 구입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 김화빈
 
다른 시장·마트의 민심도 다르지 않았다. 19일 오후 5시께 이마트 용산점에서 고심 끝에 대파를 카트에 담은 69세 여성 이아무개씨는 "집에 대파가 있지만, 가격이 1980원이라 하나 더 담았다. (기존) 대파 가격은 4000원대"라고 말했다.

이씨는 대통령의 대파 발언에 대해 묻자 "(제 집 인근의 농협하나로마트 용산점은) 대파 가격이 비싸다"며 "예전엔 필요한 물건이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고 구입했는데 요즘은 가계부를 쓴다. 연금만으론 생활이 힘들어 자식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50대 후반 강아무개씨도 "물가가 고점을 찍었을 땐 대파가 8000원이었다. 그때보다 품목 몇 개가 저렴해졌다고 물가가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물가를 잡는다고 세금을 쓴다는데도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선거 때문에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세금을 적절히 잘 쓸지도 믿음이 안 간다"며 "(정부가) 과학자들 예산 깎고 입 틀어막는 걸 보니 눈에 보이는 물가만 내리려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지적했다.
 
 19일 오후 3시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청량리 종합시장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모습
ⓒ 김화빈
 
"채솟값 때문에 청량리 종합시장을 세바퀴 돌았다"는 40대 여성 김아무개씨는 "역대 대통령 중에 윤석열(대통령)이 제일 못한다"며 "이렇게 물가가 비싸서 쓰겠나. 돌아다니느라 다리만 아프고 무엇 하나 마음 편히 살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국민들은 물가가 올랐다고 아우성이었는데 진작 나섰어야 했다"며 "(투표로) 아주 심판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후 3시께 청량리 종합시장 어귀에서 만난 60대 중반 남성 이아무개씨는 "도라지를 사러 나왔는데 기본 반찬값이 올라서 부담스럽다"며 "정부의 대응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물가는 작년부터 올랐는데 초반에 기세를 안 잡고 (대통령은) 뭘 했나. 아주 꼴 보기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60대 남성 김아무개씨도 "육십 평생 살면서 이런 물가는 머리털 나고 처음 본다"며 "품질을 따질 여유가 없다. 먹을 만한 것 중에 가격이 제일 싼 것만 골라서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돈을 푼다고 가격이 내릴지 의문이고 정부가 (고물가) 원인을 잘 파악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선거용 아니겠나"고 덧붙였다.

시장 상인들도 고물가로 장사가 힘겹다고 푸념했다. 청량리 종합시장에서 농산물 상가를 운영하는 이아무개(80대 초반)씨는 "시골은 농사지을 사람이 없고 정부는 농산물을 수입만 한다. 자급자족이 안 되니 당연히 (세계 물가를 따라) 국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우리도 물건을 싸게 구입해야 싸게 파는 것 아니겠나"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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