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감개무량을 말하다 "김하성이 하고 있다…30년 전 내가 못한 일을" [고척 현장]
(엑스포츠뉴스 고척, 김지수 기자)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51)가 한국에서 열리는 역사적인 첫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에 시구자로 나선다. 30년 전 자신이 빅리그 마운드를 처음 밟았을 당시 사용했던 글러브를 끼고 팬들 앞에 선다.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20일 오후 7시5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쿠팡플레이와 함께하는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이하 서울시리즈)'에서 격돌한다. 박찬호는 1회초 플레이볼 선언에 앞서 시구를 실시한다.
박찬호는 시구에 앞서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해 "오늘 아침부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시구를 하는 게 선발등판하는 것처럼 긴장됐다"며 "내게는 너무 뜻깊은 하루가 될 것 같다. 30년 전 메이저리그 무대를 처음 밟았을 때는 이런 일(한국에서 메이저리그 경기 개최)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73년생인 박찬호는 한양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94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계약금 120만 달러의 거액을 받고 태평양을 건너갔다. 1993년 미국 버펄로 유니버시아드에 참가, 강속구를 뿌리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고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메이저리그 데뷔도 빨랐다. 1994 시즌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빅리그 마운드에 올랐다. 1994년 4월 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4이닝 6실점 6탈삼진을 기록했다. 한국 야구팬들이 상상만 했던, 코리안 빅리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박찬호는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오랜 기간 담금질을 거쳤다. 고되고 힘든 생활을 견뎌내고 기량을 갈고 닦은 끝에 1996년 4월 7일 감격스러운 메이저리그 첫 승을 손에 넣었다.
박찬호는 1996 시즌 5승, 1997 시즌 14승, 1998 시즌 15승, 1999 시즌 13승, 2000 시즌 18승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톱클래스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01 시즌는 15승과 함께 메이저리그 탈삼진 3위에 오르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다저스를 상징하는 선수로 우뚝 서며 '코리안 특급'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박찬호는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2002-2005),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005-2006), 뉴욕 메츠(2007), LA 다저스(2008), 필라델피아 필리스(2009), 뉴욕 양키스(2010), 피츠버그 파이리츠(2010)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476 경기를 뛰었다. 124승 98패 2세이브 20홀드의 발자취를 남겼다.
현역 은퇴 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도쿄 올림픽,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해설위원으로 팬들과 만났다. 2019년부턴 샌디에이고 구단 특별고문으로 일하면서 김하성의 포스팅 계약 당시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박찬호는 "마이너리그 생활은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많이 성장했다"며 "그 결실이 이렇게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한국에서 열리는 것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박찬호는 이어 "공주에 있는 '박찬호 박물관'에 전시 중이던 30년 전 메이저리그 첫 등판 때 사용하던 글러브를 챙겨왔다"며 "샌디에이고와 LA 다저스가 한국 팬들 앞에서 최고의 경기력과 승부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그러면서 현재 샌디에이고 간판선수로 성장한 김하성의 행보에 극찬을 보냈다. 김하성은 2021 시즌을 앞두고 KBO리그에서 샌디에이고로 이적, 어느덧 빅리그 4년차를 맞았다.
김하성은 메이저리그 커리어 초창기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매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2023 시즌에는 타율 0.260, 140안타, 17홈런, 60타점으로 빼어난 공격력을 보여준 것은 물론 물샐틈없는 그물망 수비로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플레이어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아시아 내야수 최초로 황금장갑을 끼는 역사를 썼다.
김하성은 2024 시즌부터 본래 포지션인 유격수로 돌아간다. 올해부터 샌디에이고 지휘봉을 잡은 마이크 쉴트 감독은 팀 내 수비 강화를 위해 김하성 유격수 카드가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김하성을 향한 높은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하성은 샌디에이고가 2024 시즌 정규리그 개막전을 한국에서 치르게 되면서 지난주 입국 후 가이드 역할까지 수행 중이다. 최근에는 팀 회식을 소집해 선수단에 올 시즌 선전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박찬호는 김하성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놀라움과 흐뭇함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이 현역 시절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동양인 선수가 리더 역할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와 계약했을 당시 많은 얘기를 해줬다.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에 입단한 이후에는 나도 책임감이 더 커졌다"며 "삼촌처럼 보호자 입장에서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에서 야구를 잘할 뿐 아니라 많이 성숙해지고 내면과 인성이 단단해지는 모습을 봤다"며 "이번 서울시리즈 원장에서도 팀을 이끄는 모습을 봤다. 샌디에이고 회식에서 선수들을 모아 놓고 용기를 주는 멘트를 하는 걸 보고 굉장히 흐뭇했다. 30년 전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팀 리더 역할을 하는 게 흐뭇했다"고 웃었다.
박찬호는 이와 함께 LA 다저스 시절 자신에게 기념구의 의미를 깨닫게해준 故 토미 라소다 감독을 향한 고마운 마음도 나타냈다. 라소다 감독은 1976년부터 1996년까지 다저스 사령탑을 역임했다.
박찬호는 1994년 입단 때부터 1996년까지 4시즌 동안 라소다 감독의 가르침을 받았다. 라소다 감독은 다저스를 1981년, 1988년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견인한 것은 물론 1997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첫 번째 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 들어갔는데 라소다 감독이 앞까지 나와서 나를 안아주고 공을 줬다"며 "사실 그때는 야구장에 통역이 못 들어와서 라소다 감독이 내게 뭐라고 하는 건지 많은 부분에서 이해를 못했다. 공을 주시길래 일단 받았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게임을 마친 뒤 클럽하우스 들어와서 4실점에 대해 안 좋은 마음으로 고개 떨구고 있었는데 라소다 감독이 내게 준 공의 의미를 설명해줬다"며 "(내 야구 인생) 역사에 남는 공이될 거라고 말해줬다. 한국인 빅리거 첫 삼진 공이라는 걸 이해시켜주셨다. 그때 받은 공이 내게 소중한 보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찬호는 라소다 감독의 가르침 덕분에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124승의 승리구를 모두 소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때로는 구원투수들과 신경전이나 회유를 통해 빠짐 없이 124개의 공을 보유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승리투수 된 이후 공을 모은 습관을 가졌다. 때로는 세이브 투수가 게임이 끝난 뒤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공을 자기도 가지고 싶고 나도 갖고 싶어할 때가 있었기 때문에 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웃었다.
박찬호는 그러면서 "124승의 공을 다 모았다. 그게 내 고향에 있는 박물관에 기증되어 있다. 하나씩 공을 모을 때 소중했고 이후에도 관리하는데 신경 쓰고 노력도 하고 있다"고 돌아봤다.
이날 시구에서 사용하는 글러브 역시 30년 전 특별 제작으로 만들어졌다. 투구 습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착용했던, 2024년 현재 기준으로는 다소 촌스럽고 재질도 좋지 않지만 코리안 특급의 손때가 묻은 소중한 한국 야구의 유산이다.
박찬호는 "이 글러브는 메이저리그 데뷔전 때 썼다. 당시 잘 모르고 내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상대하는 타자가 구질을 알 수 있다는 걸 몰랐다"며 "메이저리그 진출 후 한국에서는 던지지 않았던 체인지업, 커브를 배웠는데 그립을 잡을 때 손의 움직임이 컸다. 야구용품 전문 회사에서 만들어줬는데 이 글러브를 30년이 흐른 뒤 이런 자리에서 다시 끼게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한편 2024년 미국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공식 개막 2연전은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개최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야구의 세계화'의 일환으로, 미국 50개 주와 캐나다 이외의 지역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9번째로 열리는 오프닝 시리즈다.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한국 팬들 앞에서 게임을 펼친다.
사진=고척, 김한준 기자/박지영 기자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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