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의대 증원 못 박은 정부…의료계 "철저히 총선용" 반발

황수연, 채혜선 2024. 3. 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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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일 내년에 증원되는 2000명 의대 정원 배분을 확정하면서 의료계는 '대못을 박았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 카드까지 꺼냈지만, 정부가 발표를 강행하면서 증원 규모를 둘러싼 협상의 여지가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계는 정권 퇴진 운동까지 거론하며 극렬 반발하고 정부는 장기전 채비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날 오후 2시 정부가 수도권 18%(361명)-비수도권 82%(1639명) 배분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25년도 의대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하자 의료계는 격한 반응으로 들끓었다. 의사 커뮤니티에선 “철저히 총선용이다”“퇴로를 막았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늘어난 정원을 비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배분한 걸 두고 ‘인서울’ 의대와 지방 의대를 갈라치기 하는 것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20일 서울 소재의 한 의과대학의 모습. 뉴스1


대한의사협회(의협) 간부들은 발언 수위를 높였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은 이날 경찰 소환 조사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에 “오늘부터 14만 의사 의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갈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정치권과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명하 의협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도 “정부가 폭력적으로 밀어붙이는 이유는 지방 의대 정원을 집중 배치하면 지방의 많은 국민이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는 얄팍한 속셈 때문”이라며 “필수의료는 불가역적으로 되돌릴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의대는 의대 증원을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100년 이상 쌓아 올린 대한민국 현대의학의 기반을 송두리째 와해시키고 의사 교육을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시켜 의학교육 흑역사의 서막을 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교육 여건을 철저히 무시한 정치적 구호”라며 “국민건강 위협을 초래할 독선적 결정”이라고 했다.

대한의학회와 26개 전문과목학회도 입장문에서 “정부가 의료계와 합의 없는 독단적 결정을 정의와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라며“정부의 독단적 결정은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체계를 마비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학회와 26개 학회는 의료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그들과 함께하며 지원하겠다”며 “정부는 그간의 모든 조치를 철회하고 대화와 협상으로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의료현장의 파탄을 막아달라”고 촉구했다.

전공의 복귀 가능성이 낮아진 만큼 25일 기점으로 의대 교수 일부 이탈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빅5 병원 한 교수는 “전공의들이 돌아올 다리가 끊어진 것 같은데 계속 이렇게 진료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전략적 판단이라기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어 사직하려는 교수들이 줄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계에선 그간 줄곧 지적해온 부실 교육 우려를 제기했다. 갑자기 늘어난 학생을 교육할 교수나 시설과 장비 등이 부족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배장환 충북대병원·의대 비대위원장은 “의대 교육은 조를 나눠 하는 실습형 강의가 주”라며 “기존 50명 정원에서 6~8명이 8조 정도로 나뉘었을 때도 교수 한 명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늘어난 학생을 어디에 앉히고 교수를 네 배로 늘리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충북대는 정원이 당초 49명에서 200명으로 기존의 4배로 늘어 증원 폭이 가장 크다.

정부가 비수도권 9곳 거점 국립대 의대 전임교원을 1000명가량 증원하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게 의료계 주장이다. 배장환 교수는 “정부는 국립대 의대 교수를 늘린다고 하지만 인력을 늘리는 게 아니라 기금 교수를 전임 교수로 전환한다는 것”이라며“이미 기금 교수와 임상 교수가 교육에 참여하고 있어 똑같은 것이다. 물적·인적으로 다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비수도권 의대 중심으로 증원 인원을 배치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세밀한 후속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졸업생이 해당 지역서 수련을 받고 실제 정착할 수 있도록 인프라 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은 “그 지역에 정착해 지역 의사가 되는 게 중요한데 현재로썬 (유도할) 장치가 불완전하다”라며 “비수도권에서 학생을 배출해도 수도권에서 수련을 받고 수도권에서 개업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신 이사장은 “지역 인재들이 지역 의료를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교하게 가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에 직원이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정부 발표로 사실상 의대 증원을 위한 절차가 일단락되자 의료계에선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의견 모으기에 나섰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등 3개 단체는 이날 오후 8시 온라인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의대생과 전공의, 교수 등이 모이는 건 사태 이후 처음이다.

황수연·채혜선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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